밥 딜런의 노래들

노래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

by Dirk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영화에서였다. 1997년 개봉한 토마스 얀 감독의 ‘Knocking on heaven’s door’은 뇌종양 말기 환자인 마틴과 골수암 말기 환자인 루디의 우정과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탈을 그린 영화다. 둘은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자 병실을 탈출해 바다로 갈 것에 의기투합하고 여러 소동 끝에 바다에 당도하게 된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부목이 늘어져 박혀있는 바닷가에 땅거미가 짙게 내려오고,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태양은 시간의 법칙에 의해 하강하고 바다 역시 태양에 의해 오렌지색으로 물들며 꿈결처럼 일렁인다. 오렌지색 물감을 뒤집어쓴 공을 물에 빠뜨리면 물이 물감을 흡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바닷가를 보며 앉아있던 마틴은 발작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옆에 앉아 있던 루디는 데낄라를 마시며 바다를 응시한다. 아마 곧 자신에게도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를 덤덤히 기다렸을 것이다.

이 장면이 흐르면서 애달픈 목소리로 호소하는 것 같은 기타 소리와 함께 노래가 흐른다. 그 노래가 바로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이다. (영화 제목과 똑같다.) 비록 영화에 나온 노래는 밥 딜런의 목소리가 아니라 ‘Selig’라는 그룹의 목소리였지만 그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노래는 내게 진한 여운과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2016년 10월 13일. 밥 딜런은 대중가수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일랜드의 록 그룹 U2의 보컬이자 리더인 보노가 2005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된 바 있지만 이번 밥 딜런의 수상의 충격과 여파는 보노와는 결을 달리한다. 1901년 제정된 노벨상의 역사상 첫 연예인 수상이자 문학상으로 보자면 역시 역사상 처음으로 노래 가사가 ‘시’로 인정받아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쓴다. 위대한 영어권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라는 스웨덴 학술원의 평가와 함께 밥 딜런의 이름은 역사에 아로새겨졌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 부커 국제상을 수상해 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상승하면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이후 시작된 두 번째 한국인 노벨상에 대한 갈증과 관심이 모아졌고 다시 한번 고은 시인의 수상을 바란 한국 국민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오매불망 기다린 일본 국민에겐 밥 딜런의 수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외신에서도 밥 딜런의 수상에 대한 헤드라인에 ‘이변’이라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니 그 충격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문학계에 있는 종사자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대중 가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였고 그 와중엔 순수문학이 아닌 노래 가사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에 대한 불쾌감도 더러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떡볶이나 순대가 나오는 것 같은, 기대한 것과 내용물이 너무 큰 간극을 보여 느껴지는 불쾌함 말이다. 사실 밥 딜런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에 이미 대중들에게 불쾌함을 준 전과가 있다.


정통 어쿠스틱 포크를 하며 포크 팬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받던 밥 딜런은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이때 대중들과 포크 팬들의 배신감을 대단했다. 엄청난 야유와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트로트 대축제 같은 프로그램에 태진아 씨가 찢어진 청바지와 화려한 선글라스를 끼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힙합에 가까운 트로트를 불렀다고나 할까? 그렇게 밥 딜런은 새로운 변신을 했고 그 사건으로 많은 골수팬들과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그는 이를 통해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영역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2016년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맛보았다.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강의 시간 도중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마 지금도 습관처럼 말씀하시리라고 믿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좋은 영화는 좋은 책을 대신하고, 좋은 음악은 좋은 시를 대신합니다. 좋은 영화 많이 보고, 좋은 음악 많이 들으세요.”

나 역시 이 말을 맹신하고 있다. 책이나 시를 읽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자괴감을 희석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겠지만 넘쳐나는 유희적 이미지와 취업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살다 보면 짬을 내 책이나 시를 읽는 것은 왠지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내가 과연 대학생에 걸맞은 지성을 갖고 있고 지식을 탐닉하는 자세를 갖고 있는지 의심을 하다 보면 고달픈 자아비판이 시작된다. 그럴 때 자기 전에 영화를 한편 보거나 거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불안감과 자괴감이 조금은 해소된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비록 진짜 책이나 시에 비해 짧고, 쉽고, 수동적이긴 하지만 책을 한 권 읽은 것이 되고 시를 몇 편 음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음악프로그램과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음악프로그램은 단순한 멜로디와 진심이 없는 미사여구 혹은 뜻도 모를 외계어가 반복되는 노래로 가득 차 있다. 예쁘고 잘생긴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상의를 벗고 다리를 드러내며 자극적인 춤을 추며 의미도 없고 깊이도 없는 단어를 조합해 몇 마디 문장을 만들고 그걸 반복한다. 물론 그런 것도 의미가 없다고 보긴 힘들지만 노래가 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장면들의 반복은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멜로디와 후렴구들로 채워진 음악은 사람들의 눈을 만족시켜주지만 귀와 정신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해외로 혹은 과거로 그들의 시를 찾기 위해 여행한다.


밥 딜런의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시라고 평가받는다. 서두에 언급한 ‘Knocking on heaven’s door’나 다른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wind’, ‘the times they are a changin’ 등은 그의 대표적인 시 작품이다.

‘Knocking on heaven’s door’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엄마, 이 배지를 떼어주세요.

I can't use it anymore.

난 더 이상 이걸 사용할 수 없어요.

It's gettin' dark, too dark to see.

점점 너무 어두워져서 볼 수가 없어요.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엄마, 내 총들을 땅에 내려주세요

I can't shoot them anymore.

난 더 이상 그 총들을 쓸 수 없어요.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 down.

길고 어두운 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일반적인 해석은 전쟁을 반대하는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쓰인 적 있고 노래 가사나 밥 딜런의 삶의 결을 살펴보면 반전을 부르짖는 노래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의 다른 노래 ‘Blowin’ in wind’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they call him a man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만 할까요?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하얀 비둘기가 모래에서 잠을 청하려면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할까요?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balls fly

Before they are forever banned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난무해야

영원토록 중지될 수 있을까요?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흩날리는 바람만이 알고 있다오.

흩날리는 바람만이 알고 있다오.


그리고 ‘the times they are a-changin’는 다음과 같다.


And admit that the waters around you have grown

그리고 변화의 물결이 다가옴을 보여주자.

And accept it that soon you'll be drenched to the bone.

그 물결이 뼛속 시리게 젖어들 것임을 받아들이자.

For the loser now will be later to win

지금의 패자들은 훗날 승자가 되리니.

Come senators, congressmen, please heed the call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아, 사람들의 부름을 경청하라.

Don't stand in the doorway, don't block up the hall

문 앞을 가로막지 말고 회관을 봉쇄하지 말라.

And the first one now will later be last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은 훗날 말단이 되리라.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Blowin’ in wind’는 60년대 월남전과 흑인 민권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이 노래는 인권탄압, 인종과 계급에 의한 차별, 가난과 폭력 그리고 전쟁이 존재하는 곳마다 불리게 됐고 한국의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준 곡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노래 가사는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사람들을 이어 준 보이지 않는 유대이자 공감대였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는 가사에서 느낄 수 있듯 저항적 가사는 돈 없고 백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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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인문학을 입혔다고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밥 딜런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애플사에서 쫓겨났을 때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애플을 창시했지만 주주들에 의해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고 (And the first one now will later be last.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은 훗날 말단이 되리라.) 훗날 애플사에 복귀해 아이폰을 만들며 역사에 기록됐다. (For the loser now will be later to win. 지금의 패자들은 훗날 승자가 되리니.)

생각해보면 좋은 노래는 언제나 위대한 역사와 함께 해왔다. 미국의 반전 운동이나 흑인 인권 운동, 히피들이 국가 권력에 탄압에 반대할 때 밥 딜런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여성운동엔 밥 딜런의 ‘No Woman No cry’가 울러 펴졌다.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를 울부짖던 시절 투사들의 입에선 김민기가 작사 작곡하고 가수 양희은이 불러서 유명한 ‘아침 이슬’과 ‘상록수’가 함께 있었다. 좋은 노래는 시가 되고 그 시를 읊는 목소리가 모아져 사회를 바꾸는 시초가 됐다. 비록 많은 사람이 다치고 피 흘렸지만 노래를 무기 삼아, 목소리를 무기 삼아 사회를 바꿨고 바꾼 세상에 노랫말을 비석에 새겨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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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객(歌客) 김광석의 노래가 아직도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마왕 신해철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단순한 추억 때문이 아니다. 전인권이 백발의 노령이 되고 이승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그들의 노래엔 힘이 있고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도 있고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들의 노래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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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절엔 저항적 노래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고, 90년대 경제적인 풍요는 가져왔지만 개인들이 공허함을 느낄 때 김광석은 그의 아련한 목소리로 시를 읊어 사람들을 위로해주었다. 다시금 사회가 혼란해지자 마왕은 노래로, 말로 잘못된 세상에 일침을 가했지만 지금은 김광석도, 마왕도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은 잡스의 전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땅에 잡스가 없는 이유는 이 땅에 딜런 같은 가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대한민국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이유는 함께 부를 시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다. 노래를 들으며, 시를 읊으며 개인의 삶을 반추하고 사회를 비판해야 건강한 사회인데 (역사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기껏 스크린에서 나오는 노래라는 게 하얀 속살을 보여주며 사람을 홀리는 이미지와 주술 같은 반복되는 후렴구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 아닐까. 우리가 만든 사회 구조는 너무도 취약하고 부족해서 조금이라도 감시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이렇게 부패하고 분열한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고 주술 같은 노래에 빠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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