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관우와 장비가 일당백의 무장이 아닌 제갈량과 같은 책사였다면?
도원결의는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 말 혼란스러운 시기에 주인공 격인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고 함께 천하를 바로잡겠다는 뜻을 세운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시간은 다를지라도, 죽는 날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맹세한 이들의 결의는 단순히 세 명의 인물이 뭉친 것을 넘어, 훗날 촉한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할 거대한 세력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들의 굳건한 신뢰와 백성을 위한 인의(仁義)의 정신은 난세 속에서 수많은 인재를 끌어모으는 강력한 구심점이 되었고, 위태로운 후한의 명맥을 잇는다는 대의를 향한 그들의 여정은 삼국시대의 가장 감동적인 서사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영웅들의 웅대한 뜻과 격렬한 충돌로 점철된 역사의 대서사시 삼국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도원결의입니다.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는 각각 원 역사에서 천하를 종횡하는 무장으로서, 유비의 가장 든든한 무장이자 방패였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을 만나 익주에 입성하기까지 유비는 제대로 된 참모가 없어서 정말 엄청난 고생을 했기에 저는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만약 관우와 장비 중 한 명이 무장이 아닌 참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삼국지를 읽어볼수록 처음의 그 생각은 점점 바래져 갔습니다. 유비와 그 세력의 매력은 언더독이라는 점인데, 시작점부터 안정적인 유비의 세력이라면 이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생각을 조금 바꿔봤습니다. 드높은 인품과 대국적인 통찰을 지닌 관우가 냉철한 책사가 되고, 불같은 성정 속에 날카로운 지략을 숨긴 장비가 대담한 계책을 내는 전략가가 된다면 이라고. 힘이 전부였던 삼국지의 시대에서, 무력이 없었던 유비의 세력은 어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만들었을지 상상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물의 역할 변경을 넘어, 삼국지 전체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비:
덕망과 인의를 바탕으로 인재를 끌어모으는 강력한 구심점입니다. 그의 넓은 도량은 다른 재능을 지닌 관우와 장비의 역량을 조화롭게 이끌어내는 리더십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난세 속에서도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진심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기반을 다지게 했습니다. 그의 끈기와 인내는 그 어떤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굳건한 의지로 발현되어 천하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됩니다.
관우:
원 역사에서는 압도적인 무용을 자랑하는 무신이었지만, 이 대체 역사에서는 드높은 인품과 함께 천하를 꿰뚫는 대국적인 통찰력을 지닌 냉철한 책사로 변모합니다. 그의 강직함과 원칙주의는 유비 세력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는 흔들림 없는 나침반이 되고, 혼란한 난세 속에서 단순한 계책을 넘어, 인의를 기반으로 한 원대한 비전으로 유비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며 복잡한 대의를 추구하는 데 기여합니다.
장비:
관우와 마찬가지로 천하에 적수가 흔치 않았던 맹장이었지만, 호탕하고 다혈질적인 성정 속에 번뜩이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만들어내는 승부사 기질의 있는 전략가입니다. 그의 거침없는 행동력은 때로는 파격적인 모략으로 이어져 적의 허를 찌르고,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비상한 아이디어로 전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그의 대담성은 유비군에게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하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조운:
관우, 장비 못지않은 출중한 무력과 침착함을 겸비한 완성형 무장으로, 그 유명한 '장판파전투'에서는 단기필마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내는 등 믿기 힘든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유비가 가장 힘들 시기에 합류했으며, 유비가 죽은 이후에도 제갈량과 함께 촉나라를 지탱한 인물입니다. 다만, 다만, 이 대체 역사에서는 유비의 무장에 대한 강렬한 갈망으로 인해 원작보다 훨씬 빨리 유비군 진영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의 뛰어난 무용은 유비군에 즉각적인 전투력을 부여하며, 세력 확장의 선봉이자 방어의 핵심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황건적의 난으로 혼란해진 천하, 유비 삼 형제는 자신들을 따라는 소수의 병력으로 변변한 무장 한 명 없이 적재적소의 병력 배치와 전략만으로 황건적을 격파하며 명성을 쌓아갔다. 관우는 붓을 들어 백성들의 마음에 인의(仁義)의 씨앗을 뿌려 황폐해진 민심을 감싸 안는 거대한 물결이 되었고, 공손찬과 같은 지역 제후들과의 외교로 미약한 유비 세력을 서서히 세상에 알려나갔다. 동시에 장비는 소규모 게릴라전을 통해 식자들 사이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러한 둘의 활약은 드넓은 천하를 기준으로 본다면 눈에 띄는 전공은 아니었지만, 동탁이 황제를 옹립하고 폭정을 펼치자 결성된 반(反)동탁연합군에 합류할 정도는 되었다. 천하의 영웅들과 한자리에 함께하게 된 유비 삼 형제는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예감했지만 곧 차가운 현실에 직면했다. 다른 군웅들은 차치하더라도 일면식이 있던 원소마저도 미약한 병력과 호위 무장마저 없는 유비를 비웃었던 것이다. 이때부터였다. 유비의 가슴속에 무장에 대한 갈망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두 책사의 비범함에도 불구하고, 찢어진 깃발 아래 홀로 선 듯한 고독감이 유비를 짓눌렀다.
낙양으로 전진하는 반동탁연합군은 사수관에서 동탁군의 선봉장 화웅이 맞이한다. 하지만, 화웅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고, 선봉을 자처하며 나선 제후의 장수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이때 관우가 화웅 군의 약점을 냉철하게 분석해 연합군 장수들을 설득하여 포위 전략을, 장비는 어둠 속에서 화웅의 보급로를 기습적으로 교란시키는 작전을 제안했다. 덕분에 다음 공격의 선봉을 맡게 된 유비군이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던 이 전략의 맹점이 드러났으니, 막상 최전선에 나설 맹장이 없었던 것이다. 황건적의 잔당과는 결이 다른 동탁군이었기에 결국 작전은 반쪽짜리 성공에 그쳤고, 화웅은 어지러운 전장 속 원소군 휘하의 안량의 창 아래 쓰러졌다. 유비는 분명 공을 세웠으나 연합군 전체의 명성은 화웅을 직접 벤 원소가 가져가게 된 순간, 아무리 뛰어난 계책도 이를 실행할 무력이 없다면 반쪽짜리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듯 그의 무장에 대한 갈망은 이제 뜨거운 불길이 되어 가슴을 태워갔다.
동탁이 낙양을 불 지르고 장안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접한 연합군의 진영은 깊은 충격 속에 침묵에 휩싸였고 유비는 이 상황에서도 동탁군을 추격할 장수가 없음에 다시 한번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천하를 향한 웅대한 뜻은 여전했지만, 그 뜻을 펼칠 칼날이 없었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스승이었던 노식에게서 동문수학했던 공손찬의 진영을 찾은 유비는 그때 운명처럼 공손찬 휘하의 젊은 장수 조운을 만나게 되는데, 술자리를 이어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조운이야말로 그렇게 자신이 갈구하던 마지막 조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조운 또한 백성을 위한 이상을 진심으로 토로하는 유비에게 매료되었다. 술자리가 파한 후 잠을 설치며 고민을 이어간 조운은 결국 날이 밝자마자 공손찬의 허락을 구하고 유비에게 합류했다. 조운의 합류로 유비는 비로소 날개를 얻게 된 것이다.
낙양에 제일 먼저 입성하게 된 손견은 우물가에서 옥새를 발견했고, 이를 둘러싼 손견과 명예와 권력에 욕심이 있던 원술의 갈등은 연합군을 파국으로 향해갔다. 모두가 무력 충돌만을 예상할 때 관우가 나섰고, 냉철하게 두 군웅에게 갈등의 본질인 '옥새는 황실의 것이며, 군웅의 사사로운 욕망이 될 수 없음'의 대의를 설파했다. 동시에 장비는 특유의 대담함으로 두 군웅의 옥새를 둘러싼 갈등을 소식을 미처 듣지 못한 다른 연합군에 공개하며 원술의 야욕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순식간에 원술은 궁지에 몰렸고, 여론은 그의 편을 들지 않았다. 또한, 조운은 손견의 호위를 자처하며 그의 신뢰를 얻었고 무력으로써 상황을 진정시켰다. 결국 손견은 옥새에 대한 미련을 접고 본거지인 강남으로 돌아가 다시금 주변확장에 집중했고, 비록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유비군의 쓰임새가 있음을 예감한 원술은 유비를 잠재적 동맹으로 간주해 전략적 자원을 지원했다. 이로 인해 연합군의 파국은 막을 수 있었고, 유비는 손견과의 우호적인 관계와 원술의 지원을 바탕으로 그 둘의 중간지점인 광릉에 마침내 근거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원역사와는 달리 옥새를 품지 못한 손견은 무리한 세력확장을 포기하여 유표와의 전투에서 사망하지도 않게 되는 나비효과를 만들어냈다.
여포의 동탁 암살 후, 이각과 곽사의 내분으로 장안은 혼란에 빠졌고, 황제는 안위는 풍전등화였다. 이 혼란 속에서 유비는 어린 황제의 안위를 걱정하며 낙양까지 달려갔고, 관우는 이각과 곽사의 분열된 심리를 간파하여 황제를 구출하는 대담한 외교 작전을 펼쳤다. 그의 치밀한 협상술은 두 어리석은 장수를 서로 불신하게 만들었고, 장비는 첩자를 심어 이들의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며 내부 분열을 심화시켰다. 결정적인 순간 조운이 소수의 특공대를 이끌고 황궁으로 진입, 일말의 망설임 없이 황제를 호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전은 유비의 명성을 천하에 드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국 황제는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며 중원의 패자로 떠올랐지만, 유비는 황제 구출의 공으로 광릉 서남쪽의 구강을 하사 받으며 기반을 순식간에 넓혔다. 유비군은 원술과 손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교묘하게 균형을 유지했고, 조운의 무력은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다른 군웅들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시간이 흘러, 하북의 원소와 중원의 조조가 천하를 건 관도대전을 준비할 무렵, 원술은 형주 남부와 회남에서 세력을 키우며 유비와 불안정한 동맹을 이어가고 있었다. 관우의 원소와 협상을 시도, 원소의 하북 군대가 조조를 견제하도록 유도하며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외교술을 펼쳤고, 장비는 원소군 내부에 첩자를 심어 조조의 동향을 빼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초기 우세를 강화했다. 이 모든 지략은 유비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으니, 지지부진한 세력 확장에 이성을 잃은 원술 군이 유비와의 동맹을 깨고 본거지인 광릉으로 진격한 것이다. 하지만 조운은 무리하지 않으며 수성을 굳건히 하여 원술의 침범을 무사히 막아냈고, 유비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 원소가 관도에서 패한 사이 유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견과의 동맹을 강화하여 후방을 안정시키고 원술 군을 맹렬히 물리치며 형주 북부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렇게 유비는 난세의 한복판에서 점차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다.
유비군에게 패한 원술은 내부의 문제까지 터지며 완전한 수렁에 빠지며 형주 남부는 혼란에 빠졌고, 유비는 관우의 노련한 외교력으로 형주 유력 호족인 채 씨와 동맹을 맺었다. 그 와중에 장비는 성내에 잠입해 있던 원술 군의 밀정을 인지하고 반간계를 펼쳐 불시에 수춘성을 공격했고, 원술의 가혹한 세금에 고통받던 백성들이 이에 화답하며 성문을 열어 순식간에 수춘성은 함락되었다. 형주의 유표에게로 도주하던 원술은 중간에 성난 백성의 무리를 만나 살해당하며 형주북부와 남양의 드넓은 영토는 전부 유비에게로 완전히 복속됐다. 또한, 한 왕실의 먼 친척이라는 배경과 백성을 위하는 어진 성품, 그리고 굵직굵직한 행보를 보여온 유비에게로 형주 지역의 명사들과 주군들에게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했던 인물들도 합류하며 명실상부한 중원의 패자 중 일인이 되었다. 유비는 이제 동탁에 이어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든 조조와의 일전을 준비하게 되었고,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세는 융중에 기거하고 있는 와룡(臥龍) 제갈량에게까지 전해지게 되는데...
사마의의 야망이 황건적의 난을 피로 물들였다면, 관우와 장비의 지략은 유비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만약 관우와 장비가 무기 대신 책을 든 책사들이었고, 반동탁연합군의 혼란 속에서 무장을 갈망한 유비가 조운을 일찍이 끌어들였다면, 유비군은 별다른 좌절 없이 중원의 강자로 떠올랐을 것입니다.
관우의 냉철함은 미약한 세력 관계 속에서도 탁월하게 균형을 잡으며 유비군의 존재감을 확고히 쌓아 올렸고, 장비의 대담함은 주변 군웅들의 실수를 초래하여 그들을 결국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조운의 무력은 유비군 세력의 방어는 물론, 영토 확장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비의 인덕은 백성의 마음을 얻어 그 어떤 난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위 역사대로라면 유비군에 합류했을 도겸의 서주(徐州) 지역의 인물들은 어찌 되었을까?
조조와 유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중원을 혼란으로 뒤덮었을 여포의 행방은?
유표와의 전투가 일어나지 않아 세력을 보전한 손견 군의 미래는?
저의 상상력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의 상상력은 어디로 향했을지 궁금해집니다. 냉철하고 논리적인 추론과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또한, 앞으로 제가 다뤄주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저의 삼국지는 독자분들의 상상력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