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의 난 : 환관정치의 끝[삼국지 대체역사 #3]

만약, 십상시의 난이 실패해서 하진이 살아남았다면?

by 전트루

십상시의 난(十常侍의 亂)


서기 189년, 후한 말 낙양을 뒤흔들었던 십상시의 난(十常侍의 亂)은 명맥만 간신히 이어오던 한나라의 명운을 끊어버리는 계기가 된 대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황실을 장악했던 십상시라 불리던 10명의 환관 집단은 어린 황제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며 조정의 부패를 심화시켰습니다.

이에 백정 출신임에도 황후의 오라비라는 이유로 대장군직에 오른 하진은 외척으로서 환관 세력을 척결하고자 지방의 군벌들을 낙양으로 불러들이는 치명적인 수를 둡니다. 그러나 하진은 십상시의 기습적인 반격에 허망하게 암살당했고, 관료로서 하진을 따르던 원소가 병력을 모아 황궁을 습격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십상시는 물론, 이천여 명에 달하는 환관들을 살해하며 십상시의 난은 허망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하진이 불러들였던 서량의 맹주 동탁이 이 혼란을 틈타 낙양에 입성했습니다. 그는 힘으로 당시 황제였던 소제를 폐위시키고 유협을 황제로 옹립하며 전례 없는 폭정을 시작했습니다. 십상시의 난은 비록 환관들을 몰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하진을 잃고 동탁이라는 더 큰 악재를 불러들여 후한 멸망의 도화선이 된, 삼국지 격동기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적인 서곡이었습니다.



주제 선정의 이유


본격적인 군웅할거의 시대를 불러일으킨 십상시의 난은 단순한 황궁 내 암투를 넘어,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난세의 서막을 열었던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하진이 무능하기는 했지만 만약 환관들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아 그들을 완전히 진압했다면, 역사는 과연 다른 길을 걸었을까요? 이 단순한 되물음에서 이번 대체 역사 기획은 시작됩니다.

동탁의 낙양 입성과 그의 폭정이라는 '거악'의 부재는 역사의 혼란을 잠재울 것이라는 기대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 권력의 공백 속에서 각지의 야심가들이 더욱 은밀하고 복잡하게 서로를 견제하며 세력을 확장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합니다. 십상시의 난이라는 한 번의 '실패'가 아닌, 하진의 '성공'이 과연 후한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왔을지, 아니면 더 깊고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굴레로 이끌었을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이 대체 역사 기획의 핵심 목표입니다.



주요 키워드


하진:

후한의 대장군이자 하태후의 오라비로,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외척으로서 어린 황제를 보좌하며 환관 세력에 대항했던 인물입니다. 원 역사에서는 십상시의 계략에 넘어가 암살당했으나, 이 대체 역사에서는 그들의 기습을 막아내고 환관들을 완전히 진압하며 잠시나마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의 생존은 동탁의 낙양 입성을 막고, 이후 군웅들의 역학 관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핵심적인 변수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능력 한계는 결국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동탁:

서량의 군벌로, 원 역사에서는 하진의 요청으로 낙양에 입성한 후 황제를 협박하고 폭정을 일삼으며 군웅할거를 촉발했던 삼국지 초기의 거대한 악역입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하진의 생존으로 낙양에 입성할 명분을 잃었으나, 그의 광폭한 야심은 꺾이지 않습니다. 대신 서량 내부의 군벌들을 잔혹하게 진압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확장하고, 중원의 불안한 평화를 호시탐탐 노리는 예비 악역으로서 중원의 모든 야심가들에게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의 부재가 아닌, 다른 형태의 등장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원소:

4세 5공(4대에 걸쳐 다섯 명의 '삼공'을 배출)인 하북 지역의 명문가 출신으로, 하진의 신뢰를 받아 반십상시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원 역사에서는 반동탁연합군의 맹주가 되며 그 영향력을 극대화하지만, 이 시나리오에서는 하진 사후 조조와 중원 패권을 놓고 겨루게 됩니다. 명분과 인망을 중시하며 뛰어난 책사들을 휘하에 두지만, 난세에 어울리지 않는 우유부단함이라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조조:

하진의 부하로 십상시 토벌에 참여했던 인물이며, 원 역사에서는 동탁 토벌에 앞장서 기반을 다지고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중원의 패자가 됩니다. 환관 출신의 조부가 축적한 막대한 재산으로 입지에 비해 빠르게 성장하게 된 군웅입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하진 사후 원술과 여포, 원소와 중원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게 됩니다. 냉철한 판단력, 뛰어난 군재, 그리고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지닌 조조는 변화된 난세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빠르게 성장합니다.


유비:

한실의 후예로, 황건적의 난 토벌에서 의병을 일으키며 활약했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동탁 토벌에 참여하고 서주에 머물다 조조에게 패하고 여포에게 의탁하는 등 굴곡진 삶을 살지만, 인의를 중시하며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후한의 명장 노식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공손찬에게로 향하여 관우, 장비의 무력과 함께 백마부대의 명성을 드높이며 북방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릅니다.


여포:

일신의 무력으로는 당대 최고라 불렸던 맹장입니다. 원 역사에서는 정원과 동탁을 차례로 배신하며 '삼부지자(三父之子)'라는 오명(세 명의 아비를 뒀다는 뜻)을 얻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그릇이 작은 정원 밑을 떠나, 참모로 합류한 가후의 계책과 함께 원술 군의 실질적인 군권을 장악합니다. 그의 압도적인 무력과 변덕스러운 성격은 중원의 세력 균형을 뒤흔드는 가장 예측 불가능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십상시의 난이 완전히 실패했다면?

실패한 십상시의 난.jpg 십상시의 난이 완전히 실패했다면?


살아남은 하진과 요동치는 천하


사전에 자신을 향한 십상시의 암살 모의를 접한 하진은 과감하게 먼저 군사를 일으켜 십상시를 일거에 소탕하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독선은 청운의 꿈을 품었던 원소와 조조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황건적 토벌의 명분으로 거병했던 유비는 사제지간의 연(緣)으로 공손찬의 부름에 응해 그의 진영으로 향했고, 일당백의 무력을 지닌 관우와 장비가 함께한 유비 삼 형제는 공손찬의 백마부대와 함께 북방에서 그 존재감을 떨치기 시작했다.

또한, 정원 밑을 떠난 여포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명성이 높았던 원술에게로 향했다. 이 시기 여포의 야망과 능력을 알아본 모사 가후는 지속적으로 여포의 욕망을 자극했고, 결국 여포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원술의 심복 몇을 살해하며 원술을 압박, 원술 군의 실질적인 군권을 장악하며 중원의 동남부에 거대한 폭풍의 핵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서량의 동탁은 중앙 진출 명분을 잃자, 방향을 틀어 마등과 한수 등 서량 내부의 군벌들을 피로 물들이며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 중원의 불안한 평화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


하진의 최후


하진의 무능한 통치가 이어지자, 각지에서는 황건적 잔당이 예상치 못한 규모로 재봉기 했다. 하진은 심복이라 믿었던 조조와 원소 등을 토벌에 파견했으나, 이는 오히려 이들에게 군권을 확고히 잡을 기회를 제공했다. 원소는 하북에서, 조조는 연주에서 반란을 진압하며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들의 군사적 영향력은 하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곁에 믿을 만한 심복이나 참모가 없었던 하진은 모종의 암투 끝에 자신의 권좌에서 비참하게 끌려 내려와 백성들에게 맞아 죽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의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후한 왕조는 그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천하를 향한 군웅들의 대치


하진이 사라지자, 원소와 조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기 시작한다. 명분과 인망의 원소는 하북을 기반으로, 실력과 냉철함의 조조는 연주를 거점으로 삼아 중원의 패권을 놓고 격돌한다. 하지만 원술 휘하에서 실질적인 군권을 장악한 여포는 모사 가후의 계책에 따라 조조와 원소 사이를 오가며 이득을 취하고, 다음을 예상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행보로 전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중원은 순식간에 세 명의 거대한 야심가가 뒤얽힌 혼돈의 장이 된 것이다. 한편, 공손찬 휘하의 유비 삼 형제는 관우와 장비의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원소군을 서서히 압도하기 시작했다. 백마부대의 명성은 유비 삼 형제의 활약으로 더욱 빛을 발했고, 원소는 예상치 못한 북방의 위협에 조조를 온전히 상대할 수 없는 처지에 처했다.


동탁의 야망


원소와 공손찬(유비)의 하북 대결, 그리고 조조와 여포(원술)의 중원 대치가 숨 막히는 균형을 이루는 사이, 서량의 동탁은 지역 군벌인 마등과 한수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서량 일대를 제패했다. 그 기세를 몰아 마침내 거대한 군세를 이끌고 장안으로 진격한다. 하진 사후, 마땅한 구심점이 없었던 후한의 왕실로서는 동탁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장안은 그렇게 동탁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 충격적인 소식에 중원의 군웅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든 전투를 멈추고 동탁의 행보를 주시하며 각자의 계산을 이어갔다. 이제 천하의 모든 군웅들은 눈앞의 적뿐 아니라 후한 왕실을 위협하는 서량의 거대한 그림자까지 의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반동탁연합군


황제를 옹립한 동탁은 하진과는 차원이 다른 전례 없는 폭정을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후한의 영향력이 남아있었기에 전국의 군웅들은 이러한 동탁의 행보를 왕위 찬탈로 간주하며 분개한다. 이러한 시기에 당시 명망이 제일 높았던 원소에게 황후 하 씨의 밀지가 도착하고, 원소는 이를 빌미로 천하에 반동탁연합군의 이름으로 모든 군웅들이 결집할 것을 천명한다. 이 부름에 크고 작은 교전을 이어가던 조조와 공손찬부터 원술과 여포, 그리고 강동의 패자로 떠오르던 손견과 공손찬의 식객이었던 유비 삼 형제까지 낙양으로 향하게 된다.

이 소식을 접한 동탁은 허수아비 황제 소제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황후 하 씨를 감금하는 등 차원이 다른 폭력에 가까운 정치를 이어갔다. 유약한 성품의 유협을 황제로 즉위시키고 대장군의 직을 찬탈한 동탁은 서량의 병사들과 함께 반동탁연합군을 맞이하기 위해 낙양으로 향한다.



마치며


이 대체 역사는 십상시의 난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삼국 시대의 도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되새겨 줍니다. 환관 세력이 제거되고 동탁의 낙양 폭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온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황실의 무능함은 야심가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중원의 영웅들이 세력 다툼으로 정신이 없을 때 일찍이 서량을 평정한 동탁은 원 역사보다 훨씬 거대한 세력과 함께 후한 왕실을 접수하는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십수 년 전 십상시를 명분으로 결성될 뻔했던 연합군이, 이제는 서량의 동탁을 명분으로 다시금 천하의 군웅들을 한데 모으려는 기묘한 상황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결국 난세는 형태만 바꿀 뿐, 끝나지 않는 굴레처럼 후한의 땅을 잠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단순히 인물과 사건의 위치를 바꾸는 것을 넘어, 난세의 본질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어떻게 역사를 반복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암울하면서도 흥미로운 고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포가 없는 동탁군은 원역사보다 강할까?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힌 연합군의 결속력은?

위 상황에서 배신의 아이콘 여포의 선택은?


제 상상력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만, 저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독자분들의 상상력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집니다. 삼국지와 관련된 주제나 대체 역사에 대한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의 삼국지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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