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과 곽사의 난이 실패했다면?
192년, 후한(後漢)의 수도 장안은 또다시 피로 물들었습니다. 동탁(董卓)이 여포(呂布)에게 암살당하며 잠시 평화를 기대했던 조정은, 그의 잔당인 이각(李傕)과 곽사(郭汜)로 인해 다시금 혼돈에 휩싸였습니다. 본래 동탁의 휘하에서 크고 작은 공을 세웠던 맹장들이었으나, 동탁 사후 왕윤(王允)과 여포가 동탁의 잔당을 숙청하려 하자,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습니다. 이각과 곽사는 서량(西凉)의 병력을 이끌고 장안으로 진격했고, 왕윤과 여포가 이들을 과소평가한 틈을 타 수도를 함락시켰습니다. 황제 헌제는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하고, 이각과 곽사는 장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습니다. 그들의 폭정은 동탁의 그것을 능가하며, 후한의 마지막 불꽃마저 꺼뜨리는 듯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중앙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각지의 제후들은 더욱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훗날 삼국(三國) 정립의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만약 이 피비린내 나는 이각과 곽사의 난이 우리가 아는 역사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이들이 왕윤과 여포에게 일찌감치 제거되고, 그 자리에 무력 최강의 맹장 여포(呂布)와 한왕실의 충신이자 책략가 왕윤(王允), 그리고 누구보다 교활한 독사 같은 책사 가후(賈詡)가 장안의 권력을 장악했다면, 삼국지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이각과 곽사를 일찌감치 제거함으로써, 초반부터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거대한 무대가 펼쳐졌을 것이라는 상상, 이 흥미로운 가설에서 저는 이 글을 시작합니다. 후한 말의 혼란 속에서 세 인물의 선택과 심리가 어떻게 얽히고설켜 새로운 천하를 만들어냈을지, 그 드라마틱한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여포(呂布):
삼국지 최강의 무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그의 무력은 당할 자가 없었지만, 변덕스럽고 의리가 부족하여 여러 주군을 섬기다 배신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동탁을 제거하며 일시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섰으나, 결국 자신의 맹렬한 무력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기질로 인해 파멸에 이릅니다. 그는 단순히 힘만 센 무장이 아니라, 주변의 평가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맹신이 뒤섞인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물입니다.
왕윤(王允):
후한의 충신으로, 동탁의 폭정에 맞서 초선(貂蟬)을 이용한 미인계(美人計)를 계획하고 여포를 부추겨 동탁 암살에 성공한 설계자입니다. 그는 한실(漢室)의 부흥을 꿈꿨던 이상주의자이자 강직한 인물이었으나, 때로는 과도한 강경책으로 주변의 반감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의 충심은 깊었지만, 현실을 읽는 날카로운 통찰력이나 유연함은 부족했던 면모를 보였습니다.
가후(賈詡):
독사 같은 책사로 불리는 가후는 생존과 모략의 대가입니다. 그는 동탁의 휘하에 있었으나 동탁 사후 이각과 곽사에게 붙어 그들을 장안으로 이끌었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지략과 통찰력으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했으며, 상황 판단이 빠르고 냉철하여 항상 최적의 생존 전략을 찾아냈습니다. 그의 모략은 단순히 상대를 속이는 것을 넘어, 인간 본연의 심리를 꿰뚫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했습니다.
장안성이 들썩였다. 동탁 암살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서량에서 몰려온 이각과 곽사의 군대가 장안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고 있었다. 원 역사에서는 이들에게 허를 찔려 혼란에 빠졌던 왕윤과 여포였지만, 가후는 이미 서량군 내부의 동향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었다. 그의 첩보는 이각과 곽사의 반란 기미를 사전에 왕윤에게 흘렸고, 왕윤은 즉시 여포에게 이들을 섬멸할 것을 명했다. 무신(武神) 여포는 장안성문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이각과 곽사의 군대를 일거에 섬멸했다. 이각은 그 자리에서 참수되었고, 곽사는 서량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여포의 기병 추격대에 잡혀 최후를 맞았다. 이 전투의 승리로 가후는 여포에게 합류하게 된다. 여포는 '장안의 수호자'로서 왕윤과 함께 헌제를 옹립하며 조정을 장악했다. 여포의 압도적인 무력과 가후의 날카로운 모략은 단숨에 장안의 혼란을 잠재우는 듯 보였다. 왕윤은 여포와 가후의 협력을 통해 중앙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가후의 존재는 그의 이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어갈 예정이었다.
장안의 피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왕윤은 동탁의 잔당과 그에게 동조했던 무리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의 철두철미한 숙청 작업은 한실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헌제를 내세워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중앙의 권위를 공고히 다지는 데 집중했다. 여포는 중앙군을 통솔하며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고, 이러한 그의 명성은 원소(袁紹)와 조조(曹操) 등 북방의 제후들에게까지 전해지며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가후는 왕윤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각지의 제후들을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묘한 첩보와 소문을 퍼뜨려 제후들 간의 연합을 방해했고, 이는 원소와 조조가 쉽게 손잡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혼란 속에서 유비(劉備)는 공손찬(公孫瓚) 휘하에서 하북(河北)의 반란을 진압하며 점차 민심을 얻어갔다. 가후의 이간계는 원소와 조조의 연합을 지연시켰지만, 왕윤의 강경한 통치 방식은 오히려 각지의 제후들에게 반감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왕윤은 자신의 방식이 한실을 위한 최선이라 믿었지만, 그의 고집은 점차 가후의 그림자 아래에서 조정의 기반을 흔들고 있었다.
원소가 마침내 하북에서 반란을 선포하자, 여포는 거침없이 출정했다. 가후의 기발한 계략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 그는 원소의 보급로를 정확히 파악하여 차단하는 기습 작전을 제시했고, 여포는 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보급이 끊긴 원소군은 기주의 업성에서 여포에게 처참하게 격파당했고, 결국 원소는 힘없이 몰락하고 말았다. 이로써 여포는 명실상부한 천하의 패자로 떠올랐다. 그동안 연주(兗州)에서 관망하며 세력을 키우던 조조는 원소의 갑작스러운 몰락에 당황하며 중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금 계산해야 했다. 한편, 유비는 원소의 패배를 틈타 형주(荊州) 북부의 요충지이지만 마땅한 주인이 없었던 신야(新野)를 장악하며 자신의 독립 세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왕윤은 여포의 승리를 조정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기회로 삼았지만, 이미 여포의 무력은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원소의 빠른 몰락은 여포를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지만, 가후는 여포의 한계, 즉 무력에 대한 과신과 정치적 미숙함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가후는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비밀리에 조조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이는 거대한 배신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가후는 서서히, 그러나 치밀하게 여포의 심리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포의 변덕스러운 성정을 이용하여 왕윤에 대한 불신을 교묘하게 심어 넣었다. "왕윤은 결국 황제를 끼고 자신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천하의 패자는 대원수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가후의 이간계는 여포의 불안과 야심을 자극했고, 결국 여포는 가후의 충동질에 넘어가 왕윤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충신 왕윤의 죽음으로 조정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고, 여포는 헌제를 직접 통제하며 스스로 '대원수'를 칭했다. 이제 그의 권력은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독재로 치달았다. 조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원을 빠르게 통합해 나갔고, 유비 역시 형주에서 독립 세력을 확고히 다졌다. 여포는 무력으로는 천하를 압도했지만, 정치적 감각과 통치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의 독재정치는 각지의 제후들에게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조정을 넘어 천하를 혼란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후는 이러한 여포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추기며 천하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자신의 생존과 새로운 권력의 판도를 짜는 것이었다.
여포의 독재정치로 천하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조조는 유비와 동맹을 맺고, 마침내 장안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여포는 자신의 무력을 맹신하며 혈전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하북으로 도망치게 된다. 이 와중에 가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접촉해왔던 조조에게 투항하여, 여포의 잔존세력을 고스란히 바쳤다. 조조는 가후의 지략을 높이 사 그를 중용했고, 가후는 이제 조조의 책사로서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유비는 이 기회를 틈타 형주 남부를 흡수하며 훗날 촉(蜀)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강동(江東)에서는 손책이 강남(江南)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고, 이때 보여준 용맹함으로 인해 소패왕(小覇王)이라는 그의 별명이 천하에 울려퍼졌다. 이로써 조조는 중원을, 유비는 형주를, 손책은 강남을 차지하며 실질적인 천하 삼분(三分)이 시작된다. 여포는 하북의 소규모 군벌로 전락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그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여포와 왕윤의 조정은 결과적으로 삼국 형성을 잠시 지연시키는 듯 보였지만, 가후의 치밀한 배신과 여포의 몰락은 아이러니하게도 천하 삼분을 더욱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각과 곽사의 난을 조기에 진압하고 장안을 장악했던 여포와 왕윤의 시대는, 가후라는 독사의 모략 아래에서 짧고 격렬하게 불타올랐습니다. 여포의 무력은 원소를 격파하며 천하의 패자로 군림하게 했지만, 가후의 배신과 왕윤의 몰락은 결국 장안을 새로운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조조, 유비, 그리고 손견으로 이어지는 삼국 구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천하를 새로운 격전지로 만들었습니다.
이 대체 역사 속에서 여포와 왕윤은 과연 천하를 구원하려 했던 것일까, 역사의 흐름을 뒤틀어 더 큰 파괴를 불러온 것일까? 강인한 무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쥐었을 때, 그리고 그 곁에 날카로운 지략을 가진 자가 있었을 때, 그들의 시너지는 때로는 빛나는 성과를 가져오지만, 때로는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특히 가후와 같은 인물이 자신의 야심을 숨긴 채 타인의 심리를 조종할 때,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만약 여포가 가후의 배신을 조금이라도 눈치챘다면?
가후가 여포가 아닌 다른 군벌에게 합류했다면 천하의 양상은?
여포가 헌제마저 살해하며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면?
이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의 상상은 또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처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을 일으키듯, 한 인물의 선택이 다른 영웅들에게 어떤 식으로 나비효과를 일으켰을지,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함께 상상해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앞으로 제가 다뤄주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저의 삼국지는 독자분들의 상상력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