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대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194년, 후한(後漢) 말 혼란의 시대에 중원은 또다시 피로 물들었습니다. 연주(兗州)를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조조(曹操)에게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으니, 부친 조숭(曹嵩)이 서주(徐州)를 지나던 중 도겸(陶謙) 휘하의 장수 장개(張闓)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것입니다. 이 소식에 격분한 조조는 복수를 맹세하며 대군을 이끌고 서주로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조조의 복수심은 단순한 군사 행동을 넘어 광기로 치달았습니다. 서주의 백성들은 장개와는 무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서주 전역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죄없는 백성들은 단순히 서주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하게 살육당했으며, 그 피는 온 대지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이 사건은 조조에게 '간웅'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력하게 부여하며, 그의 냉혹하고 잔혹한 면모를 천하에 각인시켰습니다. 동시에 이 참혹한 사건은 훗날 유비(劉備)가 서주를 거점으로 삼고 조조와 대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삼국지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삼국지는 영웅들의 야망과 배신, 그리고 끝없는 전쟁으로 점철된 격동의 시대입니다. 그중 조조가 복수의 명분으로 자행한 서주 대학살은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며 그의 잔혹한 면모를 역사에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비극의 원인이었던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무사히 살아남아 서주에 피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삼국지의 흐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조조의 이미지와 초기 세력 확장에 미칠 영향, 그리고 그로 인해 엇갈릴 다른 영웅들의 운명까지, 이 대체 역사는 그 엇갈린 운명이 낳은 거대한 나비효과를 최대한 논리적이고 흥미로운 흐름으로 구성해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막혔을 때, 난세의 판도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그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자 합니다.
조조(曹操):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는 냉철한 전략가이자 정치가입니다. 서주대학살은 그의 초기 이미지를 잔혹한 학살자로 굳혔고, 이는 훗날 수많은 사람들을 그에게서 등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그의 간계와 지략은 변함없겠지만 민심을 얻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조숭(曹嵩):
조조의 아버지이자, 그의 죽음은 서주 침략의 직접적인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평범한 인물이었던 그의 생존은 조조의 복수심을 잠재우고, 서주와 조조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의 생존은 단순한 한 사람의 생존이 아닌, 수십만 명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변곡점이 됩니다.
서주 대학살:
193년에서 194년 사이에 걸쳐 조조가 복수를 내세워 서주에서 벌인 대규모 학살극입니다. 이 사건은 조조의 정치적 입지에 큰 오점을 남겼고, 특히 유비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그와 대립하는 명분을 주었습니다. 이 참혹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조조에게는 득이었을지, 실이었을지, 이 대체역사를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서주 대학살의 명분이 사라진 조조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병력을 움직이는 대신, 자신이 이미 확보한 연주(兗州)를 철저히 다지는 데 집중한다. 그는 연주 백성들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농업과 경제를 부흥시키는 등 내정에 힘 쏟으며 강력한 기반을 구축한다. 조조는 자신의 가혹하고 냉철한 성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정치력을 앞세워 유능한 군주로서의 이미지를 쌓아간다. 군사력을 강화하면서도 신중한 행보를 보이자, 서주의 도겸(陶謙)은 조조의 급격한 성장세를 경계하며 방어 태세를 갖추지만, 직접적인 충돌은 피한다.
이 시기, 유비(劉備)는 여전히 북평(北平)에서 공손찬(公孫瓚) 휘하에 머물며 미미한 활약을 이어간다. 원역사와는 달리 서주라는 중요한 발판을 얻을 기회가 사라지면서 유비는 세력 확장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난세 속 일개 제후로서 고군분투한다. 조조의 안정된 연주 기반은 서주라는 비옥한 땅을 얻지는 않았음에도 그의 패권 가속화를 이끌었고, 유비는 천하를 도모할 초기 발판을 잃으며 점차 역사 속에서 뒤쳐질 위기에 처한다.
연주를 굳건히 다진 조조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지자, 마땅한 근거지가 없던 여포(呂布)는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서주를 습격하여 도겸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한다. 하지만, 조조는 이러한 여포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다. 오히려, 여포의 맹렬한 무력을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원소(袁紹)와 같은 북방의 강력한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여포에게 손을 내밀어 전략적 동맹을 맺기로 한 것이다.
헌제(獻帝)를 옹립하며 명분을 쌓은 조조는, 여포라는 강력한 무장을 방패로 삼아 하북의 원소와 유비의 움직임을 억제한다. 여포는 조조의 암묵적인 지원 아래 서주에서 세력을 굳히지만, 그의 변덕스러운 성정과 통치력 부족은 여전히 서주 백성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 여포와의 동맹은 조조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여 중원에서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유비는 여전히 난세에서 자신의 기반 없이 떠도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조조의 책사 곽가(郭嘉)는 여포의 변덕스러운 성정을 정확히 꿰뚫어 본다. 곽가의 치밀한 계략으로 조조는 여포의 병력을 하비성(下邳城)에서 포위하고, 마침내 여포를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원 역사와 달리, 조조는 서주 백성들에게 어떠한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기에, 잔혹한 여포의 통치에 지쳐 있던 서주읙 백성들은 조조가 자신들을 구해줄 구원자로 여겨 그의 등장을 환영한다. 이로 인해 조조는 서주를 손쉽게 흡수하며 명실상부한 중원의 주요 세력으로 떠오른다.
중원을 통합하며 패권을 강화한 조조는 아직까지도 세력이 한미했던 유비를 자신의 휘하로 받아들이지만, 그의 역할은 여전히 일개 객장에 불과했다. 서주라는 기회의 땅을 놓친 유비는 조조의 강력한 그림자 아래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잡지 못한다. 조조의 빠른 중원 장악은 유비의 기반 마련 기회를 더욱 축소시키며, 천하의 균형은 조조에게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중원의 패자가 된 조조는 마침내 북방의 대군벌 원소와 관도(官渡)에서 대격돌을 벌인다. 조조는 원 역사에서 얻지 못했던 서주의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한 병력과 안정적인 보급로를 확보했기에, 원역사보다 더 수월하게 원소를 완파하고 북중원의 지배자로 등극한다. 원소의 몰락은 조조에게 천하의 진정한 패자라는 칭호를 안겨준다.
유비는 조조 휘하의 한 장수로서 원소와의 전투에 참여했지만,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조조의 경계로 핵심적인 역할을 맡지는 못했다. 고립된 유비는 더 이상 조조의 그늘 아래 머물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병을 핑계 삼아 같은 성씨인 유표(劉表)가 다스리는 형주(荊州)로 향하게 된다. 강남의 손권(孫權)은 아버지 손견(孫堅)과 형 손책(孫策)의 기반을 이어받아 세력을 키우며 조조의 북방 통일을 예의주시하며 관망한다. 조조의 압도적인 승리는 천하의 균형을 완전히 조조 중심으로 기울게 만들었고, 유비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북중원을 통일하고 세력을 공고히 한 조조의 칼날은 이제 남쪽의 형주로 향한다. 원 역사보다 더욱 강력해진 조조의 세력이었기에, 형주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유비는 원 역사와 같이 제갈량(諸葛亮)이라는 천하의 책사를 얻게 되지만, 그동안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조조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유비는 형주에서 쫓겨나 다시한번 도망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강남의 손권은 조조의 남하에 긴장하지만, 아직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며 강동 방어 태세를 유지한다. 이 시기 조조는 원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천하 통일의 대업에 가까워졌고, 유비는 영웅으로서의 재기조차 힘든 궁지에 몰리게 된다. 유비의 몰락은 조조의 천하 통일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손권은 고립된 저항자로 남겨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북중원과 형주를 손에 넣은 조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천하 통일은 시간문제로 보였지만, 너무나 빠른 확장은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이유로 서량의 마등, 한수, 마초는 조조가 강동에 치중하는 틈을 타 한왕실 재건을 명분으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동쪽으로 진격해 온다. 예상치 못한 서량 세력의 봉기에 조조는 당황했고, 강동 원정군 일부를 돌려 서량과의 기나긴 전쟁에 돌입하며 천하 통일의 대업을 잠시 멈춘다. 한편, 형주에서 쫓겨났던 유비와 제갈량은 서량의 봉기 소식을 접하고, 조조가 서량에 묶인 틈을 타 촉(蜀)으로 향할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다. 강남의 손권 또한 조조의 서량 원정으로 한숨 돌리며 장강 방어선을 굳건히 다질 시간을 번다. 결과적으로 조조의 서주 대학살 부재는 중원 통일을 가속화했으나, 그로 인해 주변의 경계심을 폭발시켜 유비에게 촉을 기반으로 한 마지막 재기의 희망을 안겨주며 천하 삼분 구도를 현실화할 가능성을 높이는 극적인 반전이 된다.
조숭이 살해당하지않아 서주대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 대체 역사 속에서, 조조는 잔혹한 이미지를 벗고 더욱 빠르게 중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여포를 활용하여 경쟁자들을 견제하고, 원소를 격파하며 명실상부한 천하의 패권을 쥐게 됩니다. 서주땅에 흘렀을 피를 보지않은 대가로 천하는 조조의 손아귀에 더욱 단단히 쥐어졌습니다. 초기의 영토 확장에는 일시적인 우회가 있었을지라도,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확고한 기반을 다지며 천하의 패권에 성큼 다가서게 된 조조의 모습은 섬뜩할 만큼 효율적입니다.
이러한 가상의 역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한 군주의 이미지가 굳혀질만한 대 사건이 없었다면, 그 결과는 모두에게 더 나은 방향이었을까? 혹은 특정 인물의 성공이 다른 이들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했을까? 이처럼 역사의 작은 비틀림이 가져오는 거대한 변화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영웅들의 선택과 그들의 운명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합니다.
이 역사에서 유비에겐 더 나은 결정의 순간은 정말 없었을까?
서주의 원한이 없었다면, 조조에게는 원 역사보다 더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을까?
반대로, 조조의 잔혹하고 냉정한 면모를 흠모했던 인물들은 없었을까?
여러분의 창의적이고 냉철한 추론을 댓글로 공유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는 원역사에서는 조조와 유비의 연합군에 패배했던 여포가 처형당하지 않고, 조조의 휘하로 들어갔다면 삼국지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입니다.
앞으로 제가 다뤄주었으면 하는 흥미로운 삼국지 대체 역사의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세요. 저의 삼국지는 독자분들의 상상력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