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의 죽음 : 무신의 최후[삼국지 대체역사 #7]

만약 조조가 여포의 항복을 받아줬다면?

by 전트루

여포(呂布)의 생존: 부러지지 않은 무신(武神)의 창

198년, 후한(後漢) 말의 혼돈 속에서, 조조(曹操)는 하비성(下邳城)에서 천하무적의 맹장 여포(呂布)를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여포는 뛰어난 무력을 지녔지만 양아버지 정원부터 시작해서 동탁에 이르기까지, 거듭된 배신으로 자신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었던 인물입니다. 조조는 유비와 함께 그를 포위하여 최후의 순간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원 역사에서 여포의 최후는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의 특기 었던 '배신'이었습니다. 조조의 끈질긴 포위에 지친 여포는 수하 장수들에게 화풀이를 일삼는 등 암군(暗君)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금주령(禁酒令)을 어기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으려 했던 후성(侯成)을 가혹하게 대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후성은 송헌(宋憲), 위속(魏續) 등과 함께 잠든 여포를 결박하고 성문을 열어 조조에게 투항합니다.

결국, 조조는 고민 끝에 여포의 처형(處刑)을 명합니다. 심지어, 인덕으로 유명하며 여포와 잠깐이나마 호형호제를 하며 가까웠던 사이인 유비(劉備)마저 "여포는 주군을 알아보지 못하는 호랑이와 같습니다"라며 그의 제거를 종용했습니다. 조조는 여포의 뛰어난 무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덕스러운 성정과 거듭된 배신을 고려하여 휘하에 두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 결정은 조조가 중원의 마지막 큰 적이었던 원소(袁紹)와의 대결을 앞두고 내부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주제 선정의 이유

삼국지는 영웅들의 야망과 배신, 그리고 끝없는 전쟁으로 점철된 격동의 시대입니다. 그중 198년 하비성에서 조조가 여포를 처형한 사건은 그의 냉철한 결단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삼국지 초반의 주요 인물 한 명을 역사에서 퇴장시킨 중요한 변곡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조조가 무력 최강의 맹장 여포를 살려두고 휘하에 받아들였다면, 삼국지의 흐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최강의 무장이자 변덕의 아이콘인 여포의 생존이 조조의 천하 통일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그리고 그로 인해 엇갈릴 다른 영웅들의 운명까지, 이 대체 역사는 그 엇갈린 운명이 낳은 거대한 나비효과를 최대한 논리적이고 흥미로운 흐름으로 구성해 봅니다. 한 사람의 생존이 막혔을 때, 난세의 판도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그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자 합니다.



주요 키워드

조조(曹操):

'난세의 간웅(奸雄)'이라 불리는 냉철한 전략가이자 정치가입니다. 원 역사에서는 여포를 처형하며 자신의 앞길을 닦았지만, 만약 그를 살려두었다면, 그의 천하 경영 방식과 운명은 어떻게 변모했을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여포(呂布):

'삼국지 최강의 무장'이자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비장(날아다니는 장군)'이란 칭호로 불리며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성정과 부족한 통치력, 그리고 거듭된 배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존은 단순히 무장 한 명의 추가를 넘어, 조조의 전략, 타 세력의 움직임, 심지어는 천하의 패권 구도까지 뒤흔들 강력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조조가 여포의 항복을 받아줬다면

[IF 삼국지] 조조가 여포의 항복을 받아줬다면  If Cao Cao had accepted Lü Bu's surrender.png 만약, 조조가 여포의 항복을 받아줬다면

여포의 항복, 불안한 동맹 (198-199년)

하비성에서 여포 군을 격파한 조조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로 항장(降將)으로서 전장의 최전선에 보낸다는 조건하에 여포의 투항을 받아들인다. 조조는 여포의 무력이라면 원소(袁紹)와 같은 대군벌과의 전쟁에서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여포는 조조의 명에 따라 원소군의 접경지역으로 향하게 되고, 이 소식에 조조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한 유비(劉備)는 공손찬(公孫瓚) 휘하로 도피하게 된다. 원소는 하북(河北)에서 조조를 경계하며 숨을 죽이게 된다. 여포의 생존은 원 역사보다 조조의 군사력에 무게감을 더했지만,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품에 안은 격이었던 것이다.


관도대전(官渡大戰), 여포의 맹공 (200-201년)

마침내 조조는 여포를 선봉으로 관도대전에 투입하고, 여포의 무시무시한 기병대는 원소의 대군을 거침없이 분쇄하며 조조에게 대승을 안겨준다. 여포는 '무신(武神)'으로 천하에 다시금 명성을 떨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과거 안면이 있었던 조조의 책사 가후(賈詡)와 과거 여포의 여인이었던 초선(貂蟬)의 미묘한 이간질은 여포의 마음에 또다시 다른 마음을 품게 한다. 이 시기, 유비는 원소의 패배를 틈타 형주(荊州) 북부의 요충지인 신야(新野)를 점령하며 독자적인 세력의 불씨를 지핀다. 여포의 공은 조조의 패권을 강화했지만, 동시에 서로 간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고,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불안한 동거, 잠재된 야망 (202-207년)

조조 휘하에서 여포는 여전히 변덕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조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조조는 여포에게 요직을 맡기지 않고 그의 무력을 계속해서 경계하며, 언제든 그를 제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여포 또한, 조조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고,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도 내심 불만을 품고 기회를 엿본다. 이러한 와중에 유비는 은밀히 여포와 접촉하며 잠재적인 협력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렇듯, 여포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주변 세력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한편, 조조를 견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도 여겨지게 된다. 천하는 조조의 강력한 그림자 아래에서도, 여포라는 변수로 인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한다.


적벽의 패배, 조조의 몰락 (208년)

조조는 강남 통일을 위해 여포를 형주 공략에 재투입하여 유비와 손권(孫權) 연합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제갈량(諸葛亮)의 화공(火攻)으로 조조군에게 패색이 짙어지자마자, 여포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임을 깨닫고 조조를 배신할 결정적인 순간을 노린다. 결국, 불타는 전장 속 여포는 직접 조조를 창으로 찔러 살해하고, 이로 인해 조조군은 전멸에 가깝게 패퇴하게 된다. 여포는 가후와 함께 양양성(襄陽城)을 점거하고 다시 한번 자립을 천명한다. 조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천하를 극심한 혼란으로 내몰고, 여포는 다시금 새로운 군웅(群雄)으로 떠오르며 천하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게 된다.


천하의 분열, 새로운 패권 쟁탈전 (209년 이후)

조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의 거대한 세력에 심각한 분열을 초래한다. 하북(河北)에서는 조조의 사망 후, 유력 호족 원상(袁尙)이 원소군의 잔존 세력을 결집하여 반란을 일으켜 조조가 겨우 통일했던 하북을 다시금 혼란에 빠트린다. 그리고, 조조 세력의 재편 과정에서는 그의 뒤를 이을 후계 구도를 놓고 조비(曹丕), 순욱(荀彧), 하후씨(夏侯氏) 중심의 전통 파벌과 사마의(司馬懿)와 항장 출신 장수들이 주를 이룬 신흥 세력이 대립한다. 모략으로는 사마의를 당해낼 책사가 없었던 전통 파벌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고, 주도권을 신흥 세력에게 넘겨주게 되지만, 조조의 부재는 역시나 컸기에 불안한 동거를 이어간다.

적벽에서의 패배 이후, 빠른 전장 이탈로 병력을 최대한 유지했던 여포 군은 형주 북부와 남양(南陽)은 물론, 그 즉시 서주까지 진격하여 무시하지 못할 규모의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한다. 천하 무쌍의 무력과 지략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후의 재결합으로 여포는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유비-손권 연합은 조조의 죽음을 틈타 세력을 확장한다. 유비는 양양 이남은 물론 익주(益州)까지 차지하며 촉(蜀) 나라 건국의 기반을 마련하고, 손권은 형주를 탐내다가 유비에게 좌절당한다. 차선책으로 서주로 눈을 돌려봤으나 오히려 여포에게 패퇴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데 실패한다. 이로써 천하는 사마의가 이끄는 위(魏), 유비의 촉, 손권의 오(吳), 그리고 여포의 새로운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는 혼란스러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마치며


여포의 항복을 받아들인 조조의 결정은 관도대전의 손쉬운 승리를 가져왔지만, 적벽에서 여포의 배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며 천하를 다시금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조조의 죽음으로 그의 거대했던 세력은 사마의가 이끄는 신흥 세력과 기존 파벌의 불편한 동거로 이어졌고, 여포는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유비와 손권은 각자의 기반을 다지며 끝없는 격전을 예고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부러지지 않은 무신 여포의 창'이 천하의 운명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를 따라갑니다. 여포의 배신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천하 구도는 과연 어떠한 운명으로 귀결될까?

이 가상의 역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살아남은 여포가 바로 배신을 해서 원소군의 편에 섰다면 천하의 향방은?

여포가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적벽의 패배 이후에도 조조의 곁을 지켰다면?

위의 대체역사의 마무리는 과연, 천하는 누구의 품으로 돌아갔을까?


여러분의 창의적이고 냉철한 추론을 댓글로 공유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는 원역사에서 조조의 승리로 끝났던 삼국지의 3대 전투 중 하나, 관도대전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기존에 계획했던 순서와 관계없이 삼국지와 관련된 흥미로운 주제를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저의 삼국지는 독자분들의 상상력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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