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도대전 : 원소의 승리[삼국지 대체역사 #8]

만약 전풍이 관도대전에서 원소군을 지휘했다면?

by 전트루

전풍(田豐)의 지략, 천하의 판도를 뒤바꾸다


200년, 후한(後漢) 말의 중원(中原)에는 두 명의 거대한 영웅, 원소(袁紹)와 조조(曹操)의 대결이 임박해 있었습니다. 하북(河北)의 광대한 영토와 막강한 병력을 자랑하는 원소는 명문 사대부의 수장으로서 천하 통일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고, 이에 맞서는 조조는 비록 열세한 병력이었으나 뛰어난 전략과 용병술로 헌제(獻帝)를 옹립하며 명분(名分)을 확보한 채 원소와의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대결은 훗날 관도대전(官渡大戰)이라 불리며 천하의 패자를 가르는 운명적인 전투가 될 것이었습니다.

원 역사에서 이 관도대전은 조조의 극적인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조조는 모사(謀士)들의 지략과 그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원소의 우유부단함과 오만함을 파고들어 대파할 수 있었습니다. 원소 휘하에도 조조만큼은 아니었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춘 모사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전풍(田豐)이라는 모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직했던 그는 원소에게 고깝게 들린만한 충언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편이었고, 결국 원소는 그를 옥에 가두는 우를 범합니다. 이로 인해 원소는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를 스스로 부러뜨린 채 전장으로 향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그의 패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주제 선정의 이유


삼국지에서 조조가 드디어 중원의 패자(覇者)로 떠오르게 되는 시점은 바로 200년의 관도대전입니다. 그래서, 이 반대의 경우를 상정해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히 수순입니다. 어찌 보면, 전략적인 약세에 있던 조조군을 물리치는 데에는 원소군의 약점을 대비하고, 장기전으로 간다거나, 허를 찌른다거나, 가장 기본적인 것만 지키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짜고짜 '원소가 승리했다면'을 예로 들기에는 너무 경우의 수도 많고, 논리적인 비약이 심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소군 내에서 대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가장 탁월했던 전풍(田豐)을 군사(軍師)로서 중용했다면이라는 전제를 해봤습니다. 정공법에도 능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과감한 면모도 있었던 전풍이 관도대전에서 원소군을 이끌었다면, 역사는 과연 어떤 궤적을 그렸을까? 이 대체 역사는 이에 대한 상상력을 풀어봅니다. 전투가 아닌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 명의 군사(軍師)가 지닌 전략적 중요성이 천하의 운명을 어떻게 뒤바꿀 수 있는지 탐구하고자 합니다.



주요 키워드

원소(袁紹):

명문 사대부 출신으로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으나, 우유부단함과 독단적인 성격으로 수많은 기회를 놓친 비운의 군웅(群雄)입니다. 그의 오만함과 고집은 결국 파멸을 불러왔지만, 만약 그가 전풍의 지략을 받아들였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조(曹操):

냉철한 전략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중원(中原)의 패권을 장악한 난세의 간웅(奸雄)입니다. 관도대전에서 열세를 뒤집고 승리하며 천하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그의 승리에는 원소의 실책과 함께 모사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전풍(田豐):

날카로운 통찰력과 시대를 꿰뚫는 지혜를 지녔으나, 원소에게 중용(重用) 받지 못하고 비운의 최후를 맞이한 모사입니다. 만약 그의 비책이 받아들여졌다면, 그의 지략은 과연 어떤 역사를 써 내려갔을까


관도대전(官渡大戰): 200년, 조조와 원소의 천하 패권을 건 운명의 대격돌입니다. 이 전투의 승패는 훗날 삼국(三國) 정립의 향방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전풍의 존재가 이 대전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전풍이 관도대전에서 원소군을 지휘했다면?

[IF 삼국지] 관도대전에서 전풍이 원소권의 군사였다면  If Tian Feng was Yuan Shao's Strategist at the Battle of Guandu.png

200년: 허도(許都)를 덮친 검은 그림자

조조가 주력군을 북진시킨 허점을 꿰뚫어 본 전풍은, 속전속결(速戰速決)에 능한 맹장 문추(文醜)를 선봉에 세운 정예 기습부대를 은밀히 허도(許都)로 진격시킵니다. 원소의 고집을 꺾고 자신의 계책을 관철시킨 전풍의 지략은 첫 수를 성공적으로 놓습니다. 조조의 허를 찌른 문추의 맹렬한 공격에 허도는 삽시간에 함락되고, 후한의 황제 헌제(獻帝)는 원소의 손아귀에 떨어집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조조의 권위는 산산이 조각나고, 관도(官渡)에 있던 조조군에게는 절망과 공포가 드리우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선마저 끊기게 됩니다. 전풍의 단 한 번의 기책(奇策)이 천하의 판도를 뒤흔드는 서막이었습니다.


201년: 무너지는 간웅(奸雄)

본거지 함락이라는 절망적인 소식에 조조군의 사기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전풍의 지휘 아래 원소군은 안량(顔良)을 앞세운 본진이 정면에서 조조군을 압박하고, 허도를 장악한 문추의 부대가 후방을 끊으며 양동작전(陽動作戰)을 펼칩니다. 보급이 끊기고 사기가 떨어진 조조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결국 조조는 간신히 몇몇 장수만을 이끌고 서쪽으로 처참하게 도주합니다. 그의 휘하 장수들은 전사하거나 원소에게 회유당하고, 혹은 다른 군웅(群雄)에게 몸을 의탁하게 됩니다. 이 처참한 패배 속에서 허도에서 수비를 담당했던 조조의 핵심 측근 순욱(荀彧)은 본인의 능력을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조조 세력은 안팎으로 재기 불가능할 정도의 궤멸적인 피해를 당합니다.


202-205년: 새로운 판도와 암운(暗雲)

관도에서의 압승과 허도 장악으로 원소는 헌제를 볼모로 삼아 명실상부한 천하의 지배자로 군림합니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도 잠시, 기존의 우유부단함과 오만함을 버리지 못한 원소는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풍과 자신에게 의탁하고 있던 유비(劉備)마저 홀대하는 우를 범합니다. 원소에게 끊임없이 직언을 하던 전풍은 결국 투옥되고, 유비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친족인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탁하게 됩니다. 한편, 강남(江南)의 손권(孫權)과 장안(長安)에 터를 잡은 조조는 내실을 다지며 호시탐탐 중원 진출의 기회를 엿봅니다. 이러한 와중에 원소는 현재 상황에 안주하는 최악의 선택을 거듭하고, 원역사에서처럼 후계 문제로 나날이 원소군은 원담(袁譚), 원희(袁熙), 원상(袁尙) 등 각 아들을 지지하는 여러 파벌로 나뉘게 됩니다. 천하를 손에 넣었지만, 원소의 제국은 내부에서부터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206년: 꺼지지 않는 불씨, 최후의 격돌

조조는 서쪽으로 물러났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복수의 불길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흩어진 잔병들을 규합하고, 서량(西凉)의 군벌들과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견제하며 끈질기게 힘을 키워나가며 숨을 죽인 채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천하를 손에 넣은 원소에게도 이러한 조조의 존재는 여전히 눈엣가시였습니다. 결국 206년, 조조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서쪽에서 동진(東進)을 개시하고, 원소는 이를 막기 위해 대군을 일으켜 다시 한번 중원에서 격돌합니다. 이 전투에서 다시금 중용받은 전풍은 병력의 압도적인 우세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병력을 운용하여 조조군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간웅' 조조는 원역사와는 다르게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을 내리게 됩니다.


207년 이후: 원소의 사망, 다시 한번 펼쳐지는 군웅할거시대

조조를 꺾고 비로소 중원의 패자가 된 원소지만, 말년을 맞이한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공식적인 후계자인 막내아들 원상(袁尙)은 중원(中原)에 터를 잡고 그 유지를 이어받으려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못한 맏아들 원담과 차남 원희(袁熙)는 본거지인 하북으로 돌아가 독립을 하게 됨으로써 원소의 제국은 양분(兩分)됩니다. 그리고, 애초에 큰 충성심이 없었던 안량과 문추 또한 전풍과 함께 장안(長安)에 독립 세력을 구축합니다. 또한, 조조군의 항장(降將)들과 막대한 재력을 가진 사마씨(司馬氏)가 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서주(徐州)에서는 유력 토호(土豪)였던 진씨(陳氏) 또한 독립을 하는 등, 원소의 천하는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분오열(四分五裂)됩니다.

이 와중에 제갈량(諸葛亮)이라는 날개를 단 유비는 유표의 병사(病死)로 형주에 무혈입성하게 되고, 손권 또한 강남에서 교주(交州)에 이르는 드넓은 땅을 모두 점령하여 그 세(勢)를 키웁니다. 중원의 서쪽에서는 마등(馬騰)과 한수(韓遂)의 연합군이 중원 진출의 야욕을 드러내고, 한중(漢中)에서는 오두미교(五斗米教)의 3대 교주 장로(張魯)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천하는 조조 시대보다 더욱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로 접어듭니다.



마치며


전풍의 지혜를 받아들여 관도에서 승리한 원소, 그의 압도적인 승리는 조조라는 거대한 영웅의 시대를 조기에 마감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패권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조조의 죽음 이후, 오히려 천하는 이전보다 더 큰 격랑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원 역사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은 유비와 사마의의 빠른 등장, 그리고 여럿으로 쪼개진 원소 세력과 다른 군벌들의 약진은 어찌 보면, 전풍이 빚어낸 역설적인 결과입니다.

쓰러진 영웅 조조의 빈자리를 꿰찬 새로운 강자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이야기, 과연 이 혼란의 시대 끝에 웃는 자는 누가 될 것인가? 한 모사의 지혜로운 계책이 천하의 운명을 뒤바꾸는 서막을 열었지만, 그 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가상의 역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원소의 파벌 중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형주를 안정적으로 차지한 유비의 다음 선택지는?

강동을 완전히 장악한 손권의 선택지는?

애초에 전풍이 군사를 맡았지만 허도 기습작전만은 실패했다면?


여러분의 창의적인 추론과 날카로운 분석을 댓글로 공유 바랍니다. 제가 다뤄주었으면 하는 흥미로운 삼국지 대체 역사의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세요. 저의 삼국지는 독자분들의 상상력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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