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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여행자와 현지인의 위험한 동거

쿠바 여행업 단상

by 유월

바라데로 호텔의 리셉션 보던 이가 의사 출신이었다. 속사정이야 있겠다만, 세계적인 수준의 쿠바 의료진이 커리어를 접을 만큼 지금 쿠바에서 여행업은 핫하다.


점점 더 많은 쿠바인들이 여행업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는 숙박, 투어가이드, 관광 지역 상점, 택시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국영 여행학교도 있는데, 프로그램이 꽤 괜찮은지 몇 개월만에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전문성도 좋다. 쿠바 정부가 최근 들어 더욱 작정하고 달려드는 여행업이야말로 지금 쿠바에서 성장 로켓을 탈 수 산업이다.


국가 차원에서 여행사업을 밀면서 만든 정책이 '화폐의 이원화'다. 현지인의 모네다, 외국인이 쓰는 CUC. 달러와 동일한 가치로 책정해 외국인들에게 돈을 많이 받기 위해서다. CUC이 모네다의 약 25배의 화폐 가치를 가진다. 25배쯤 해도 쿠바 물가는 여전히 경쟁력 있다는 판단에서다. 쿠바 기본 소득이 월 20 CUC이고, 보통 한 끼에 10-20 모네다를 쓴다. 여행객에게 생수 한 통 값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현지인 가격과 외국인 가격이 같이 써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현지인들만 가는 곳과 외국인만 가는 곳이 나뉘기도 한다. 모네다로 표기되어있는 곳은 외국인이 가봤자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 변화가 현지인들에게 어마어마한 혼란을 주고 있다.


첫째는, CUC 맛을 본 현지인들이 CUC 물가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이 모든 서비스들이 현지인들에게 그림의 떡이 되버린다. 택시가 가장 대표적. 현지인들이 이용할 때도 CUC을 요구하고 있다. 차가 끊겨도 돌아갈 방법이 없다. 20분만에 수개월 치 월급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쿠바 국기가 펄럭이지만, 쿠바인들은 쓸 수 없는 쿠바 택시. 흥정하기 따라 다르지만 한국 물가로 쳐도 꽤 한다. 20분에 15 CUC, 약 만 오천원을 냈다.


둘째는, 현지인들이 25배 더 싸게 살수 있는 본인의 지위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마구에이에서 만난 카를로스가 그랬다. 조심스레 다가와서 ‘지금 카마구에이에서 연극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알고 있어?’하고 던진다.

폐철로 같은 카마구에이역. 여기서 카를로스와 처음 만났다.


이 자식… 여행자의 심리를 너무 잘 안다. 당연히 덥썩 물었다. 스패니쉬를 못하는 내가 알 턱이 없는 고급 정보에다가, 현지인 가격이 10 모네다(약 500원)다. 처음엔 미심쩍었는데 극장 이곳저곳을 데려가며 포스터를 보여주니 좀 안심이 된다. 곁들여 그냥 지나쳤던 곳도 구석구석 보여준다. 고마워서 이 친구의 티켓도 같이 끊어줬다. 현지인 레스토랑에 가서 꽤 근사한 저녁도 사줬다. 다 해서 5CUC도 안들었다. 이제부터는 얼마 안하지만 커피, 택시 등등으르 자연스럽게 내가 낸다. 다음 날 산타 루치아 가는 것도 10 모네다면 된다며 같이 가자고 제안해왔지만, 처음 말 걸 때 빼고는 영어가 너무 안되서 커뮤니케이션이 힘들고 어딘지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영 찜찜함이 가시질 않는다.


아니, 얘는 원래 뭐하는 친구길래 평일 4시부터 나랑 이렇게 돌아다니는거지.


여기까지는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것이 아닌가 싶겠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미처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할 수 있지만, 바로 그 국가의 통제 때문에 생기는 외부 효과는 위험하다. 악용하자면 이런 꼼수도 가능하겠다. 외국인 여행객들을 셋넷 모아서 카를로스에게 데려간다. 카를로스가 저렴하게 계산하게 하고 여행객들이 갹출해서 카를로스에게 보상한다. 영어가 안되서 원래 무슨 일을 하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상점을 하는게 아닐까 싶은데, 이 꼼수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상점을 열심히 운영할 유인이 없다. 건강하지 못하고, 이게 가능한 환경이 국가 주도로 조성되서도 안된다. 지금 쿠바의 화폐 정책은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밥 먹고 나니 극장 공연 시간이 빠듯해 탄 인력거 택시. 어둠이 내리면 공연히 겁이 나서 못 다닐 뒷골목을 덕분에 구경한다.



# 가이드북에는 없던 소소한 카마구에이 여행 팁
- 중부에 위치한 덕에 다른 도시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버스가 카마구에이를 경유해 지나간다. 보통 아침 시간에 버스가 몰려있게 마련인데, 카마구에이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촘촘하게 버스가 다닌다. 이동으로 낮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카마구에이를 잘 활용하면 좋을 듯.

- 카마구에이는 영화와 연극이 유명하다. 작은 시내에 극장만 10개가 넘고, 극장도 잘 해놨다. 영화거리까지 있다. 1도 못 알아들었지만 백인, 흑인, 스패니쉬, 물라토(백+흑인) 등 다양한 인종의 쿠바인들의 연기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흑인이거나 백인이어야 어울릴 것 같은 역할들이 있는데 애써 연기할 필요없이 그 인종의 배우를 쓰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다양한 색깔의 인종만큼 자연히 상상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가 넓은 건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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