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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an 13. 2019

이별 후기를 기록한 이유

헤어진 남자와 한 달간 포옹하기 20. 에필로그

이쯤되면 궁금할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별 후를 디테일하게 기록을 했고, 왜 공개하기로 결정했는지.


원래 책으로 만들어 마지막 날 네게 주고 싶었다. 말투를 보면 이 글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릴수도 있다. 글로 차분히 정리하다보면 말로 표현 못 했던 감정들을 새삼 발견하고 더 밀도있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내 글을 좋아했으니까.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완벽한 연애였다. 그렇기에 그런 연애가 끝날 때의 감정도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헤어진 후 너를 만나고 오면 그 날 있었던 일과 들었던 생각, 감정을 손 끝에 부여잡고 적고 또 적었다.


그런데 매일의 감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밤 12시 전후로 만난 적이 허다했고, 어느 날은 진을 빼고 와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게다가 책으로 만들려면 더욱 정제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이래서는 정말 헤어질 마음이 들어도 이 책 주겠다는 생각 때문에 못 헤어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책을 주는 건 포기하고, 헤어질 수 있을 때 헤어졌다.


그래도 이왕 적어놨으니 언젠가는 이걸 정리해야겠다고 숙제처럼 껴 안고 있었다. 많이 회복될 때쯤은 착각이었지만 그 기록들을 다시 열어봤고, 내가 실연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던히도 나를 다잡는 과정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 안의 내가 참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반면, 그 기록을 다시 열어볼 때의 나는 사부작사부작 질척대고 있던 중이었다. 이미 똑부러지게 결론 낸 글 속의 나와는 달리 현실의 나는 그건 내가 못나서 그랬던 것 같아, 너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등 자꾸 이미 내린 결론을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끊어내기 위해, 과거를 적극적으로 정리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이어트할 때 주변에 알리면 성공확률이 높아진다고 하잖는가. 나도 나름의 결론을 공표함으로써 매듭을 제대로 짓고 싶었다.


그리고 이 글은 다시 너에게 향한다.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너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글로.


만약 너만 볼 수 있게 했다면 또 다른 결말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결국 공개하기를 택했다. 너가 읽게 될 것을 기어이 감수했다. 아니, 너가 보게 되는 것이 이 글을 쓴 목적에 가장 부합할 수 있다. 연인 간의 프라이버시를 공공재로 만드는 걸 쌍수들고 반길 이는 없다. 내가 너라면, 이 글을 보고 내게 그나마 남아있던 감정의 불씨마저 깡그리 사라질 것 같다. 확인할 길 없지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내가 너를 끊어내는 방법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언감생심 너와의 다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글을 모조리 써내고 나면 정말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 먹고 1년이 더 지났다. 잘 기록해뒀으니 날 것의 문장을 다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손을 대니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별 과정을 복기하기 위해 다시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 심적으로 힘들었다. 이별을 복기하는 것은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다시 이별하는 과정이다. 장면 장면을 일시 정지해 의미를 곱씹고, 뒤로 돌려 당시에 못 보던 것을 발견하고, 흩어져있던 컷들을 모아 재배열한다. 그 과정에서 정확한 고증을 위해 너와의 카톡 대화창을 열어본다든지, 너와 만나고 돌아와 도무지 글 쓸 힘이 안 나 녹음해놨던 걸 다시 듣는다든지(앞으로 녹음은 절대 하지 말지어다) 등 당시의 나에게 감정이입을 한다든지 하는 게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현재를 살아내기도 바쁜데 과거를 쪼개고 있자면 현타가 온다. 최대한 현재에 영향을 안 주려면 하루 날 잡고 며칠치를 몰아 해치워야 한다. 여러 날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실연 극복을 종용하는 글로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매우 건강하게 잘 이겨낸 것처럼 썼지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실연을 앓았다.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며 다독이는 주변 사람을, 그리고 내 자신을 속였지만, 여전히 전.혀. 괜찮지 않구나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헤어지고 열흘 후에 기어이 연락을 했고, 길을 걷다가도 퍽하면 울었고, 다음 연인에게 집중하지 못했으며, 이 사단이 나는 데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은 너와 나의 회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별하는 데 필요하는 시간은 한 달 정도였지만, 너를 잊는 데 걸리는 시간은 훨씬 더 오래 걸렸다. 1년 여 지나서야, 그리고 지금의 연인에게서 아주 많은 사랑을 받고 나서야,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완벽한 연애라고 생각했다. 다시 없을 감정이라 여겨 하루하루 낱낱이 적어 뒀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지금의 연애도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내가 건강하게 이별한 덕에 지금 그때보다 더 없이 풍족한 사랑을 하고 있다. 이별은 언제고 불시에 찾아온다. 그리고 사랑도 언제고 다시 찾아온다. 이별이 왔다면 모쪼록 상처 덧나지 않게 잘 이별할 수 있길 바란다. 그 상처 위에 사랑이 새 살처럼 잘 차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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