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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Nov 27. 2019

사업하는 사람이 인스타를 하면 생기는 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직 빛에 적응하지 못한 눈에 휴대폰 블루스크린을 쪼인다. 밤새 인스타나 페북에 새로운 좋아요나 팔로워가 생기진 않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나 자는 시간에 남들도 잘 텐데 이 무슨 괜한 기대심리인가. 심지어 전날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날에도 이 루틴을 반복한다. 앱 업데이트하라는 빨간 알람 171개가 방치되어 있어도 무감한데, 인스타와 페북에 뜨는 빨간 알람은 참 묘하게 사람 설레게 한다. 모닝 알람으로 제격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헤비 유저가 된 건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업을 하니 사람이 귀하다. 업무별로 사람 두고 분업하면 좋으련만, 사정 빤하니 사람 뽑자는 얘기가 안 나온다. 그래서 기획자, 에디터, 여행 가이드, 마케터, 디자이너, 재무, 경리에 이르기까지 초기 멤버 모두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발에 땀나게 뛰었다. 그런 작은 회사에 있어 구성원 개개인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활동은 필수다. 적어도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회사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협업을 위해 연락할 때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활동이 그대로 자기소개서가 되어 주었다. 일부러 페이스북 메시지나 인스타 DM으로 연락을 취할 때도 많았다. 콜드 메일보다 성사율이 높은 핫 미디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솔직하지 못한 건 내게 당연했다. 회사에 누가 되지 않을지를 항상 따져봐야 하고, 포스팅 전에 팀에 공유해 컨펌을 받는다. 보여주고 싶은 것에 앞서 '보여줘야 할 것'을 올린다. 그것만 해도 넘쳐 나서 SNS용 투두 리스트가 따로 있을 정도다. 다행히 회사일은 그 자체로 참 인스타그래머블했다. 그래서 개인으로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을 잃은 지 오래다. 잘 나온 셀카, 아무 스토리 없지만 그냥 예쁜 카페, 꽁냥한 연애사 등은 갈 곳이 없다. 너무 개인적이거나, 내가 그동안 올리던 포스팅에 비해 인사이트가 부족하거나, 팔로워나 좋아요를 늘리는 데 도움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렇게 검열에 검열을 거치는 사이 팔로워가 야금야금 늘었다. 내가 모은 건지, 회사가 모은 건지 잘 모르겠다만 좌우지간 그 가운데서 인정 욕구를 채우고 있는 건 나였다. 공유자산으로 부를 축적해놓고 이제와 사유재산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몇 개월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비즈니스 계정으로 본격 전환해 쓰고 있다. 개인 계정일 때는 보지 못하던 수치를 더 확인할 수 있다. 글을 저장한 사람 수, 글을 메시지로 공유한 사람 수, 이 글을 보고 프로필/프로필 링크를 조회한 사람 수, 이 글을 보고 팔로우하기 시작한 사람 수, 도달한 사람 중 나를 팔로우하지 않는 사람 비중 등이다. 이 중 '이 글을 저장한 사람 수'가 가장 설렌다. 팔로우, 공유보다는 숫자가 나오면서, 좋아요보다 적극적인 행위잖는가.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장한 사람 수를 늘리는 것이 내 KPI가 되어 포스팅 방향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저장한 사람 수를 늘리는 데는 리스티클이 최고다. 나 이제 좋아요, 팔로우 수에 집착하는 사람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인스타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내가 행동을 바꾼다는 것이다. 나야 실제 거의 비즈니스 계정과 다름없는지라 이렇게 비즈니스 계정 운영자에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것이 크게 무리가 없다만, 그저 수치가 궁금했을 개인들에게도 이런 영향이 있겠다 싶으니 새삼 소름이었다. 내게서 비즈니스 용도를 제한다면 나는 이 요물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까.  


찜찜하기는 하지만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회사일을 안 하면 모를까, 아직 활용도가 차고 넘친다. 대신 좀 더 거리두기를 하고 내 쪼대로 활용해야겠다 싶었다. 팔로워야 모아두면 다 살이 되고 피가 되겠다만, 내가 몇 만 팔로워를 만들 깜냥이 아닌 건 안다. 팔로워 한번 모아보겠다며 전력투구하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면서 자꾸 팔로워에 신경 쓰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다시 아침 풍경으로 넘어가 볼까. 그렇게 없으면 못 살겠다는 양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인스타, 페북을 순례하고서는 바로 앱을 삭제한다. 하루 중에도 두세 번씩 앱을 지웠다 다시 깐다. 그럼에도 브라우저로 들어가기에 아예 휴대폰 전원을 꺼버릴 때도 있다. 나는 널 주체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여기에 더해 내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스크롤을 한없이 내려야 하는 글 말고 아주 가볍게 올리는 포스팅의 비중도 늘린다. 때마침 스토리 기능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스토리에 올릴 생각에 계속 세로로 찍는 나를 보며 여전히 SNS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싶어 웃프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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