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일이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 아냐?
5
김주영 경위는 강서 경찰서로 배치를 받았다. 강력계 지원부서에 배치됐다. 그는 아내와 사별하고 친가 쪽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전근 신청을 했다. 아내의 죽음은 그와 아들 수원에게 큰 상처였다. 가급적 강력사건과 관련되지 않은 부서로 옮기고 싶었지만 현실은 언제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서는 강력반과 사이버 수사 및 마약 관련 분야 인원의 충원이 필요했다. 김주영의 전근 요청과 서의 필요가 맞아 떨어졌다. 강서 지역은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사고와 사건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 사회적 논란이 막 시작된 시점이었다. 정신착란 상태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일부 아이들은 환각성 약품을 먹고 싸움을 벌이기 일 수였다. 서의 강력반과 마약반은 매일 들어오는 신고를 처리하기도 바빴다.
서울과 인천의 경계에 있는 공원에는 텐트촌이 만들어 졌고 노숙자들의 범죄가 늘어 경찰의 업무는 폭증하고 있었다. 단속을 해도 끝없이 불법거래가 쏟아지듯 나왔다. 서의 업무량은 한계였다. 특별대책반이 꾸려지자 김주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광수대장은 이미 본청으로 불려가 혼쭐이 난 상태였다. 강서서장에게도 압박이 들어왔다. 뭐가 됐든 실적을 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서울 서쪽권역과 인천지역의 중독자의 수는 타 지역
증가세의 몇 배였다.
대장은 계장을 그리고 과장은 팀장을 연일 쪼아댔다. 당연히 팀장은 반장들을 닦달했다. 먹이사슬의 연쇄였다. 반장들은 연일 팀원들과 다른 사건을 제쳐두고 검거계획을 세우기 바빴다. 특히 강서서 계장인 오정훈은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컸다. 정엽은 당시 강서서 강력반에 있었다. 수사 경력을 통해 광수대로 옮긴 것이다. 정엽도 오정훈과 인연이 있었다. 그가 광수대로 옮기기 전 오정훈 대장은 합동 수사를 총 지휘했다. 물론 정엽이 직접 오정훈과 마주하지는 않았다. 말단 형사가 그와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 주영과 정엽은 둘 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곧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정엽에게 주영은 업무처리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해 친밀감이 커졌다. 사수는 팀원 중 다른 사람이었지만 주영은 업무 노하우와 사건 조사와 관련된 부분을 챙겨 주었다. 사적 자리에서는 김 선배님에서 형으로 호칭도 바뀌어 있었다. 사는 곳도 비슷했다. 정엽이 경찰서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생활할 때 본가에서 해준 반찬을 그에게 가져다주었고 휴일에 가끔 주영의 아들 수원과 함께 외식을 했다. 그럴 때 마다 주영은 언제나 아들 걱정을 했다. 주영은 사춘기의 애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고민을 털어 놓았다. 한번은 정엽에게 나이차가 적으니 가끔 이런저런 얘기를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렇게 이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마약수사 판매책 수사는 조금씩 탄력을 받고 있었고 판매책 검거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다크웹에 잠입해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을 활용해 성과를 올렸다. 특정지역에 물건과 현금을 같이 넣는 방식으로 교환을 하거나 암호화폐에 판매금액을 입금하는 방식으로 판매처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방식이 유용했다.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마약왕으로 불리던 디텍티브 저지였다. 그를 잡아야 이 사태가 좀 잠잠해 질것이라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마약왕은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를 잡으면 특진감이라는 말들이 이미 돌고 있었다.
오늘은 나타날 것 같은데. 김주영은 판매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을 점조직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김주영의 지원팀은 이들과 마약거래를 위한 아이디를 만들어 팀과 공유했다. 반장인 주영이 들어오자 정엽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어요. 여기만 들여다 보다 아예 목 나가겠는데요. 정엽이 계속 고개를 흔들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김주영은 웃음을 지었다.
형사의 일은 기다리는 거야. 그는 손으로 지긋이 정엽의 어께를 누르며 말했다. 정엽은 주영의 말을 듣자마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던 과자를 우걱우걱 씹었다. 판매책과 구매자들은 언제나 숨바꼭질을 한다.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일회성과 소규모 거래를 모두 추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대규모 물량을 취급하는 디텍티브 저지 같은 판매자를 검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 정엽은 몇 달을 다크웹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거래가 성사되려 하다가도 구매 물량이 자신들이 다루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하면 다들 떠나버렸다. 그 정도의 물량을 공급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언더커버 아이디를 활용해 팀원들은 회의 때마다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다른 팀원도 디텍티브 저지를 언급하고 있었다. 오정훈은 서장에게 보고를 마쳤고 서장은 이들의 동태를 계속 파악할 것을 지시했다. 조무래기보다 대량 공급 책을 우선 파악하고 검거하라는 지시였다. 몇 주일을 기다린 끝에 그와 접촉을 할 수 있었다.
‘물량을 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메모를 보내고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대량거래를 원하면 그쪽을 찾으라고 하던데. 비슷한 대답을 이들은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답변은 없었다.
아. 눈치 챈 거 아닌가요? 너무 갑작스레 물량을 여러 곳에서 달라고 하니. 정엽이 걱정되는 듯이 물었다. 이미 거래자 몇 명이 검거 됐다는 소식이 이들에게도 들어갔을 것이다.
아냐. 지들끼리 뭔가 하는가봐. 뭐 양을 계산하는 거겠지. 거래가 잡히면 이들이 움직이는 물량을 확보하고 물건을 주로 어디서 가져오는지 알아봐야지. 한 번에 잡아들여야해. 기다리자.
그 무렵 김판수와 김성호는 근래 갑작스런 대규모 거래 요청 때문에 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김판수의 주요 거래처는 한수민인 한스였다. 해외에서도 물건을 가져왔지만 그 물량은 소량이었고 위험부담이 있었다. 거래도 일정치 않아서 안정적인 물량확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스의 물건은 예상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의 물량을 소화하면 꽤 괜찮은 수익이 나왔고 그가 만들어 보내준 물건은 품질이 좋았다. 인천의 한 공업단지에 한스가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김판수가 이를 수거하고 나눠 지역의 공급책과 소규모 판매상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의 첫 거래에는 김성호의 역할이 컸다. 한수민이 위험한 거래에 빠져든 것은 우연이었다. 디텍티브 저지인 김판수를 만나기전 그는 유흥을 즐기다 사채의 늪에 빠져들었다. 수없이 채권 독촉 전화가 회사로 걸려왔고 더 이상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는 직접 물건을 팔 수 밖에 없었다. 한수민이 김수필을 만나기 전이었다. 회사근처 수변공원 근처에는 중독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는 회사에서 몰래 약을 제조했다. 벤치에서 그는 판매를 위해 눈치를 살피던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어께를 툭툭 쳤다. 김성호 였다.
어이 형씨 여기 뭐 하러 왔어? 보아하니 약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혹시 뭐 팔러 온 것은 아니겠지?
김성호는 전형적인 조직폭력배 느낌이었다. 명품 스웨터가 툭 튀어나온 배를 감싸고 있었고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 팔뚝에는 시퍼런 문신이 뒤덮여 있었고 몸집과 손이 커서 마치 만화 캐릭터 뽀빠이를 보는 듯했다. 툭 튀어나온 광대와 찢어진 눈이 도드라져 보였다. 한수민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앞을 보고 있었다. 그는 벤치에 팔짱을 끼듯이 팔을 기대고 고개를 그의 옆에 대고 말을 꺼냈다.
물건 팔러 왔어? 여기 우리구역이라 잘못하면 좆 되는 수가 있어? 어여 가쇼.
한수민은 김성호를 보고 일단 자리를 떴다. 굳이 그와 실랑이를 할 필요가 없었다. 시장은 충분히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족했다. 며칠 뒤 그는 늦은 시간 어떻게 거래가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하고 판매 방식과 실제로 물건을 팔수 있을지를 확인해야 했다. 다크웹에 접속해 구매자를 찾고 근린공원으로 나가서 기다렸다. 다행히 김성호는 보이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있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몇 명이 보였다. 다행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 물건이 있냐고 묻고 흥정을 시작했다. 그의 첫 거래는 이렇게 성사됐다. 이후로 며칠간격으로 그는 공원에 나왔다. 소문이 났는지 금 새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결국 김성호와 마주쳐 그들의 폐 공장으로 끌려왔다.
햐. 이 새끼 이거 그때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요 아직도 여기에 있네. 너 어디서 왔어? 물건은 어서 받아? 김성호는 주먹으로 한수민의 명치를 한 대 올려쳤다. 훅하는 한수민의 비명이 들렸다. 한수민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의 펑퍼짐한 몸집에는 근육이 숨어 있었다. 그는 어퍼컷으로 그의 턱을 후려쳤다. 김성호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이 새끼가. 너는 오늘 죽었어. 한수민은 고등학교까지 복싱을 배워 기본적인 싸움법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자세를 취하자 한쪽 구석에서 선글라스를 낀 김판수가 일어나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만. 김판수가 끼어들었다.
저 미친놈 얘기를 한번 들어보고 손봐줘도 늦지 않아. 한 가지만 물어보자. 김판수가 낮은 톤으로 말을 꺼냈다. 이 구역은 우리밖에 물건을 공급받지 못해. 너 어디서 물건 가져왔어? 어르고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김판수는 흰색 바지에 체크무니 셔츠 그리고 감색 블레이져를 입고 있었다. 김성호와는 다른 인상이었다. 펌을 해 올백으로 넘긴 머리로 인해 흡사 오래전 흑백영화에서 나올법한 사람처럼 보였고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물건은 내가 직접 만든다. 한수민이 건조하게 말했다.
뭐? 이거 웃기는 놈이네. 둘은 웃었다. 너 진짜야? 형님. 이놈 재미있는데요. 이들 역시 마약사업을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아직까지 소박한 규모였고 물량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남아에 나가 있는 판매책에게 요청을 해도 배달이 안 되거나 제때에 물량이 들어오지 않았다. 김판수는 우리가 규모를 키워서 이 지역의 공급망과 배급을 다 장악해야 한다고 매번 노래를 불렀다. 김판수는 그의 말이 맞다면 이번이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조법이야 얘기해봐야 너희들이 알 수도 없고. 너의 장사구역을 내가 뺏겠다는 것도 아니고 난 일정한 현금이 필요해. 한수민은 그렇게 말하며 김판수를 처다 보았다. 김판수는 잠시 생각을 하고 한수민에게 제안을 했다.
그럼 네가 약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한테 더 주는 게 어때? 너도 팔러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게 나을 텐데. 어때? 재료가 있다면 만들 수 있다면서. 그럼 좋은 조건으로 거래가 되겠네. 한수민도 생각해보니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았다. 자신도 판매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그렇게 이들은 일 년 동안 독점 계약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김성호는 김판수에게 슬쩍 말을 꺼냈다.
저놈 저렇게 보내도 괜찮을까요? 신고라도 하는 날이면. 김판수는 히죽 웃으며 김성호에게 말을 꺼냈다.
제 까짓게 어떻게 하겠어. 지도 물건을 만들고 파는 놈인데. 걱정할 것 없어. 저 새끼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좀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지.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판매는 순조로웠다. 여기에 김수필까지 얽혀 한수민은 좀 더 안정적으로 약을 만들어 물량을 넘길 수 있었고 그만큼 수익은 늘어났다. 수익금을 넣는 과정에서 이들은 디텍티브 저지와 한스라는 아이디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된 것이다.
김판수가 디텍티브 저지였어?
한수민은 슬쩍 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일 년간은 이렇게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곳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어느덧 마약 문제가 사회의 양지로 발을 들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이 모여드는 주요 거점에는 약에 취해 흡사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몸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약을 팔다가 검거되는 비율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평범한 가정에도 문제를 가져왔다. 마약 문제가 어느덧 사회적 임계점을 막 넘기 시작한 것이다. 공급책에 대한 대대적 단속이 예고 되기 시작할 때도 바로 이때였다. 한수민도 김수필도 이 상황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미디어에 검거된 공급책과 마약상의 모습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론전이 펼쳐졌다.
소비보다는 공급책에 대한 단속과 검거를 의도해 두고 권력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김주영이 전출된 지역은 대규모 마약의 온상지로 악명이 높았다. 매주 검거자가 늘어나자 유치장은 만원이 되었고 단순사범들은 가벼운 형량으로 끝나기에 이들이 출소해서 다시 약을 파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김주영이 투입되고 인천 광수대와 강서 마약반, 사이버범죄 단속반이 합동으로 공급 책 검거 작전을 시작한 것은 이러한 이유였다. 한수민은 김수필에게 디텍티브 저지를 만난 상황과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김수필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둘은 생산량을 늘려서 마지막으로 물량을 넘기고 손을 털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만약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 하더라고 이후 자신이 쉽게 발을 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둘은 휴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달에 돈이 좀 부족해서 내가 그들한테 물건을 더 대준다고 했는데. 재료 수급이 가능하겠어?
뭐? 그만하기로 하지 않았나? 김수필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지.
어떻게 할 거야? 그가 걱정되듯 물었다. 여기서 물량을 만들기 위해 자재를 더 빼면 좀 위험해질 수 있는데. 아무래도 실험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 하면 누구든 회사에서 눈치 채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 한수민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약속한 물량을 만들어 주고 나서야 손을 털 수 있을 테니까.
일단 물량이 더 들어가야 한다면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외부에서 가지고 오던가 원료를 들여올 수 있는 방법을 찾던가 해서. 김수필은 머리를 긁적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6
김연희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김주영이 전근을 가지 며칠 전이었다.
경사님, 오늘은 어떠세요? 저 오랜만에 출장으로 부산에 왔어요.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웃음기가 있는 목소리였다.
평상시의 김연희와 다른데 오늘 뭔가 좋은 일 있나?
좋은 일은 뭔 일이 있겠어요. 김 경사님 지난번 발령 날 수 있다고 했는데 혹시 다른 데로 가시는지 안부 차 전화했죠. 아니 이제 승진해서 경위죠. 아니 그곳은 조직이 크니 경감대우겠네요? 호호. 큰 곳에서 경위가 되셨으니
아직 어색해 자리 옮기는 것도 직위도 말야.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려니. 그렇지 않아도 김기자 한번 보려했는데.
어머, 저 기사거리 하나 주시게요? 김연희는 반가운 듯 말을 꺼냈다.
기사거리가 뭐 있을까? 나도 이제 끗 발 없잖아. 지난번처럼 확인되지 않은 것 쓰는 거 아닌지 해서. 나만 곤란해지게 말이지.
어머, 또 그 얘기 하신다. 그건 제 의지가 아니었어요부장이 하도 닦달하는 바람에 쓴 거고 리포트도 제가 안했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김주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경찰과 사건기자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존재였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도 하면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협력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퇴근 후에 약속을 잡았다. 시내의 삼겹살집에서 먼저 도착한 김주영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역시 경감님은 이런 곳을 좋아하시네요.
어서와. 아이고 우리 미녀 기자분께서 이렇게 누추한 자리까지. 경감은 무슨.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연희는 코트를 벗어 놓으며 말을 꺼냈다. 소주를 한잔 털어 놓으며 말을 꺼냈다.
그쪽으로 옮기는 거 그냥 단순한 거 아니죠? 이미 내사 들어간 거 있는 거죠? 김연희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큰 사건인가보네.
어허 무슨 소리를 극비야. 알려고 하면 안 돼. 김주영은 정색을 했다.
아무튼 인천 쪽 담당으로 옮기는 거죠? 그쪽에 마약 사건이 빈번하니. 전근이 무슨 극비에요. 다 아는 건데.
어머니 건강도 안 좋고 해서 본가로 들어가려해. 수원이도 챙겨야 하니까. 자꾸 유도 신문하려고 하지마. 그는 웃으며 소주를 한잔 마시며 말을 꺼냈다. 김주영은 언더커버 수사를 많이 해본 경험이 있었다. 이번 전근도 집안일도 있었지만 오래전 상사가 자리를 옮기면서 김주영의 상황과 맞물리며 김주영에게 일을 맡기고 간 것이다. 물론 그 사정을 연희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김기자도 알다시피 이제는 마약 문제가 임계점을 넘어섰어. 공급자부터 잡아야 하는데 너무 점조직이고 큰 조직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거지. 알려줄 수 있는 건 이게 다야.
위험하신 거 아니에요? 위험한일 안하신다고 말을 하시면서 역시 아니었군요. 연희는 걱정이 된다는 투로 물었다.
글쎄 어찌되든 우리는 어찌 됐든 할 일은 해야겠지.
김기자는 뭐 다른 부서로 가거나 이직 생각이 있는 거야?
아뇨. 변화는 없고 그대로에요. 저도 이 바닥에서 끝을 봐야죠. 이직은 생각 안 해요. 그 수모를 당해도요. 수원이는 어때요? 공부 잘하고 있어요?
그 놈 덕에 내가 이 고생이지 않냐. 자꾸 경찰이 되겠다고 해서 말리고 있는 중이야.
어머 경찰이 뭐 어때서요.
개고생만 하는 거지. 그놈은 가급적 나와 다른 삶을 살아야해. 그 애 성격에 이 일은 잘 어울리지 않아. 김주영은 연희와 건배를 하고 한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김주영은 연희와 많이도 싸웠다. 수습을 마치고 그녀는 사회부에 배치되었고 수습기간 동안 지방발령을 받고 마산에서 육 개월 이상을 근무했다. 김주영은 당시 강력반 팀장 이었다. 김연희는 지역의 모든 것이 낯 설었고 일에 파묻혀 살다시피 했다.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면서 시의 중요 사안을 확인하고 유관기관들과 지역의 유지들이 서로 얽혀 있는 토착비리의 모습도 여러 건을 파악했다. 하지만 사건들을 깊게 파고들어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파견 나온 기자가 과도하게 지역의 문제에 의욕이 앞서서 간섭하고 있다고 눈치를 주었다. 그녀가 이런 일로 힘들어 할 때 둘은 가끔 술을 마셨다.
주영과 연희가 가까워진 계기는 유치장에서 탈옥 사건이 발생한 이후였다. 살인혐의를 받고 있던 용의자와 형사들이 사건을 조사과정에서 함께 현장을 방문한 뒤에 발생했다. 하지만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김연희는 그날 경찰서에 들렀다가 우연히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용의자를 유치장에 감금하는 과정에서 그는 안전장치를 풀고 달아났고 연희는 입사 초기 이 사건을 보고하고 단독 리포트를 해 특종을 만들어 냈다. 사실 연희도 반신반의 했지만 경찰은 곧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일 욕심이 있는지라 위험을 자처했고 검거 과정에서 피의자에 가깝게 접근하다 인질이 되었다. 김주영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했고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곧 서울에서 보겠네요. 잔에 있는 소주를 마시고 연희가 고기를 한 점 집어 먹으며 말했다.
아니 난 사양하겠어. 김연희 기자 보는 것은 이제 자제할거야. 경찰이 기자 만나서 좋은 게 뭐가 있어.
경위님 아니 경감님 큰 공로 세우고 언론 좀 타면 조직에서 얼마나 도움 되는지 다 아시면서. 제가 공중파 기자인거 잊으셨어요? 그 사건 이후로 저는 현장이 좀 무서워지기는 했는데 어쨌든 저도 일이니까요
김 형사님은 왜 이렇게 험한 일을 하게 되신 거예요?
험한 일이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아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아. 그러는 김 기자는 큰 사명과 소명을 가지고 일을 해? 다 비슷한 거지 뭐.
아 그리고 이것은 선물. 유용하게 쓰세요.
뭐야 이게? 김주영은 네모난 박스를 들어서 흔들어 보았다.
형사님 항상 험한 일 하시잖아요. 지난번 저 구해주셨을 때도 그렇고 이거 보통 수첩처럼 생겼죠. 짜잔. 뒤에 밀면 사이드 비밀 포켓이 나와요. 연희는 뒷장을 밀어 포켓의 사용법과 시크릿 녹음 기능을 알려주었다.
여기에 이렇게 손으로 쓰면 저장되고. 녹음기능도 되니까. 혹시 비밀스럽게 뭔가 필요할 때 쓰세요. 남들이 보면 그냥 수첩인줄 알 테니까. 남들이 모르게 하려면 일상의 일들 메모해 놓으시고요. 작고 쓸만하니 개인적인 일들은 이거 활용하셔도 될 거에요. 휴대폰은 혹시 작전상 뺏길 수도 있으니까.
오호. 이거 유용한데. 그냥 일반 수첩 같아. 김기자 잘 쓸게. 암튼 고마워.
네 근무시작하면 종종 뵈어요.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연희는 이날의 대화가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강서경찰서 강력 팀과 마약반은 몇 주간 꾸준히 다크웹에 접속해 판매자를 찾았지만 도통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디가 노출된 거 아닐까? 팀원 한명이 말을 꺼냈다.
아냐. 그 정도는, 정보가 내부에서 샐 일도 없을 테고. 기다려야지 그게 우리일인데. 다른 한 형사가 투덜대듯 말을 꺼냈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이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다크웹 아이디였다. 연락이 온 것이다. 이들은 거래장소를 알려주었다. 이들은 왜 그렇게 많은 물량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김판수는 주요 거래처를 알고 있었기에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새롭게 공급받는다는 것은 뭔가 다른 경쟁업체가 생겼거나 함정이라고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김판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번기회에 경찰을 따돌리고 새로운 대규모 거래루트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김판수는 공급량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곳을 장소로 잡고 약속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자신 거래에 나서지 않고 김성호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상황을 처리하고 자신은 잠수를 탄 뒤 조직을 좀 정비하려 했다. 김성호가 살아 돌아오면 데리고 가는것이고 아니면 새로운 놈을 구하면 그만이다. 김판수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김판수는 이후 김수필에게 장소와 날짜를 알려주었다.
어 연락 왔습니다. 반장님. 디텍티브 저지인데요. 갑자기 그런 많은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지 묻는데요. 아무래도 좀 의심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정엽이 말을 꺼냈다.
음.. 우리가 먼가 좀 실수한 것 같기는 해. 그 정도 물량이라면 수익이 크지만 저들도 갑작스런 주문에 무리가 될 수도 있겠지. 강력팀장이 말했다.
B팀도 비슷한 물량 아닌가요? 그들은 좀 줄여서 얘기했어야 하는 거 아닌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장소 확인하고 진행해. 위에는 내가 얘기해 놓을 테니. 이번에 공급책을 좀 잡아보자. 팀장은 결의에 차 있었다.
수사팀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작전 기획을 다시 꼼꼼하게 정비하고 내용을 확인했다. 과장을 거쳐 최종 보고라인을 올리고 승인을 받은 뒤 모든 준비를 갖춰 놓았다. 당일 이들은 두 팀으로 움직였다. 거래를 진행하려는 한 팀과 백업팀으로 나눠 검거작전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강력지원팀도 합류했다. 강력1반과 마약팀 그리고 지원팀의 합동 수사팀이 꾸려졌다. 서장은 이 작전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김주영은 A팀 거래조였다. 김주영은 내부거래자가 있는지도 살펴야 했기에 그 어느때 보다 이번 작전에 부담이 컸다. 그는 마약사범 검거와 수사경험이 많아 선발대에 섰다.
정엽은 지원조 였다. 정엽은 긴장을 풀기 위해 껌을 씹었다. 수사를 시작한지 2년이 넘었지만 이런 작전은 언제나 긴장되는 법이다. 그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손에 땀에 흥건했다. 무기를 정비하고 형사들이 승합차에 올랐다. 이미 A팀은 거래장소로 출발 한 뒤였다. 인천 만월산 폐공장 근처에서 이들은 만나기로 했다. 주문자 역할은 김주영이 하기로 했다. 은밀한 마약 거래가 많기로 유명한 서호 공원 근처였다. 나머지 팀원들은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새벽2시가 넘은 시간이라 주위는 아무도 없었다. 멀리 벤치 앞에 켜진 가로등에 나방과 날파리들이 군집을 이루며 너울거리고 있었다. 지목한 장소는 폐 공장 길거리 앞이었다. 김주영이 한참 주위를 서성거리자 저 멀리 후드티를 입은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10여 미터 정도 가까워지지 김주영이 말을 꺼냈다. 모자를 눌러쓰고 후드로 가려 얼굴 윤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디틱티브 저지? 김주영이 물었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앞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김주영은 그를 따라 공장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색 철제문을 열자 거대한 폐자재와 낮은 조도의 등이 켜져 있었다. 대 여섯 명의 무리들이 멀리 쌓아놓은 시멘트와 철제 비계 앞에서 김주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 손짓을 하자 멀리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손에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반대쪽에서 한명이 더 걸어 나왔다. 물건을 가져온 것은 한수민이였다.
뭐야 이거 이쪽으로 오라고 해놓고 다 어디에 있어? 한수민이 소리쳤다. 이거 뭐하는 짓이지? 누군가 한명이 한수민의 손에서 물건을 뺏어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고 후드티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수작질을 하면 안 되지. 니들이 요구한 물량 그거 진짜야? 아니지? 안 그래? 그의 목소리가 대기하고 있던 A팀 잠복조의 이어폰으로 들렸다.
‘아이 씨발 작전 실패’. 마이크에서 누군가 김주영 선배 구해라는 소리를 질렀다. 치익 하는 무전소리가 한밤중에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용을 쓰더니 된통 걸린 거지. 물건은 잘 받을게. 그는 이렇게 말하고 고개로 옆의 사내에게 지시를 내렸다. 누군가가 김주영의 뒤로 향했다. 야구 방망이로 사정없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앞으로 철퍼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시멘트 바닥은 피로 검붉게 변했다. 한수민의 차례였다.
아 왜 이래? 그만둬 내가 얘기한 거 아냐. 이번에 너희가 보자고 해서 여기 온 거잖아. 라는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각목을 막았지만 이마를 강타 당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자 둘이서 거래를 하다가 싸움이 붙어 이렇게 된 거야. 그러기에 왜 그렇게 욕심을 내고 그래. 후드티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들은 이미 경찰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판수는 한수민을 제물로 물건을 확보하고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우고 잠수를 탈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엽은 무전소리를 듣고 근처에서 속도를 더 내고 있었다. 한꺼번에 차가 이동하지 않도록 한 작전지휘가 김주영을 위기로 내 몬 것이었다. 약속장소인 목적지 골목에 도달했을 때 1톤 트럭이 그의 승합차를 옆에서 받았다. 차는 큰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전복돼 공원의 옹벽을 들이 받고 그대로 멈춰 섰다. 1톤 트럭 운전자는 침착하게 전화를 걸어 구급대를 부르는 것 같았다. 차가 골목을 막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엽은 그대로 의식을 잃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차에서 내려 현장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움직이면 안 돼요’라는 트럭 운전자의 침착한 말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엽은 총을 꺼내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보니 벨트를 매지 않아 차안의 다른 팀원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엽이 공장의 문을 열고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는 도중 창문으로 김주영을 보았다. 거래를 미끼로 이들은 모든 대응을 사전에 해 놓은 상태였다. 정엽은 골목에서의 사고도 이들의 소행인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의심스러웠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야구 방망이로 김주영의 뒤통수를 다시 세게 내리치고 있었다. 마치 눈의 시신경을 직접 걷어차는 것처럼 정엽에게 생생하게 각인됐다. 한 사내가 김주영의 품에서 무전기와 전화기 등을 꺼내서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았다. 이후 그의 다리에 주사기를 꼽았다.
아...
정엽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철제계단에서 아래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동시에 B팀 검거인원들이 뛰어 들어왔다. 후드티를 입은 사내는 엎드려 고개가 돌아간 김주영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웅얼거렸다. 김주영이 이내 의식을 잃은 듯 하자 이들은 돌아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때까지 김주영은 의식이 있었다. 순식간에 경찰이 거래장소로 들이 닥쳤을 이들은 ‘튀어’ 라고 말하며 각자 다른 장소로 흩어지듯 뛰어 나갔다. 김주영은 마지막 의식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수첩을 있는 힘을 다해 기어서 손으로 잡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마지막페이지를 열고 두 글자를 흘림체로 써 넣고 음성을 남기고 뒷장을 닫았다. 호흡이 가팔랐다. 눈을 감자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의 뇌는 마지막 순간 도파민과 에피네피렌을 뿜어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이어졌다. 그렇게 마지막 숨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