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왜 악(惡)이 되는가?
진보정치인 출신의 양아치 기업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뻔뻔함이지. 양심이 아예 없는 수준이야. 눈치건 양심이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공개적으로 나보란 듯이 공고를 내지는 못했을 것이야. 백번을 양보해 뭔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면 그 전에라도 나에게 사과나 양해를 구하는 연락이라도 있었을 것이겠지. 하지만 그는 전혀, 아무런 의사소통도, 심지어 그렇게 해야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아. 사람을 우습게 본 거지. 애초에 그냥 이용해먹고 말 심산이었던 거지. 단물 빨았으니 잊어버린 거지. 지까짓 것이 뭐 어쩌랴 했던 거야.
게다가 협박에서 훈계로 이어지는 수순은 정말 안하무인 정도가 아니더군. 사기범이 사기 피해자에게 인생은 그런 거라고 가르치고 타이르는 데에 이른 정도인데, 그냥 양심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더라고.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을 수 있을까? 어떻게 애초에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에 조금도 가책이 없을까?
내 생각엔 그들은 자신들이 그래도 된다는 강력한 확신이 있어. 마치 어떤 사람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이용하고 박해하더라도, 그것이 신이 주신 권리라고 생각하는 식민주의자들처럼.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그들은 확신 이전에 별 생각이 없어. 그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으니까. 외모 평가에 대해서 항의하면 “이쁘다고 칭찬한 건데 왜 화를 내?”라며 진심 이상하게 생각하는 아재들같이, 그들은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해볼 필요도 없는 위치에 있는 거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물론 그들은 더 나쁜 사람과 비교하기 전에는 전혀 도덕적이지 않지. 이게 그들이 보수-진보의 대결에 집착하는 이유야. 보수라는 더 나쁜 사람들을 제거하고 난 그들의 도덕성이란, 면죄부를 구입해둔 사람들의 선민의식 이상이 아니지.
구구한 분석보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의 촌철살인을 들려주고 싶네.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이명박과는 반대로 도덕, 권력, 돈의 순으로 상징 자본을 쟁취했다. 그들 역시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에 집착했다. 이미 권력, 정의, 명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돈마저 갖고 싶었다. 양귀자의 소설 제목처럼 금지된 것을 소망했다. 그들이 금단의 과실을 따 먹는 순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지지자들은 부패의 상대적 크기로 옹호하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도덕을 상징 자본으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건 일종의 사기죄다.
(경향신문 2021. 4. 3. 칼럼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 “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가고 있다” 중에서)
뻔뻔함의 근거로 도덕성 외에 또 하나의 단단한 반석이 있어. 어쩌면 도덕성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
바로 그들은 엘리트라는 ‘팩트’야. 시험을 잘 보면 뭘 해도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룰인 듯해.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세상엔 시험 잘 본 사람보다 더 돈많고 힘 세고 인기 많은 사람들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래도 시험 잘 본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인정하게 만드는, 그래서 스스로 거만해지는 메커니즘이 있는 것도 대한민국에 사는 누구나 느끼는 바일 거야.
코흘리개 어린애 시절부터 사회생활이란 건 공부 잘하는 게 최고라고 배워서 20년쯤 살다 보면 그게 세상의 진리인 것같이 느껴지는 것도 이상할 건 없지. 하물며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그거 안 맞추고 어떻게 살겠어. 달리 생각한다는 건 아주 특별한 각오와 깨달음이 없이는 힘든 일일 거고, 혹 그런 각오와 깨달음이 있더라도 사회의 다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차라리 고행에 가깝더군.
서울법대 입학해서 만 20세에 사시를 패스했다는 ‘소년급제’ 우병우, 공공의대 만들어 의사 정원 늘리자니 파업하면서 ‘전교1등 의사’ 광고한 의사들, ‘SKY 운동권 출신’ 진보엘리트들이 공유하는 멘탈리티가 있지.
그들은 그래도 된다는 것. 이미 학교에 입학하는 시점부터 그런 자격이 갖춰졌고 그 자격은 평생 퇴색하지 않는다는 것. 선민의식 이상의 확신이 기득권의 단단한 초석이 되는 것, 이건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시험중심사회의 폐단이자 문화인 것 같아.
이준석 동문이시며 우리나라의 대표 지성이라는 모 어르신도 얼마전 본인이 미국에서 안 살고 한국으로 돌아오셨으니 본인이 ‘로컬리스트’ 라고, 엄청 대단한 시혜를 배푸신 것이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시더군. 로컬이 무슨 시골이나 변두리라는 뜻으로만 쓰이는, 센터 못 된 곳이 로컬인가보지? 요는 공부 잘 해서 학벌 좋은 사람들은 평생 대단한 우월감을 느끼고 산다는 것을 확인한 또 한 가지 예일뿐이야.
공부 잘하는 것이 분명 성취는 성취인지라 송두리째 부정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세상의 기준이 거의 그 하나로 잣대가 될 만큼 얄팍한 철학의 사람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건 문제겠지. 그들이 도덕적으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진보라는 것은 재앙이고.
진보정치인 출신의 양아치 기업인은 우리나라 최고학부라는 곳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야. 이 엘리트 신분이 진보 양아치의 자신감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음은 거의 확실하다고 봐. 그리고 그가 상징자본으로 권력을 얻고, 그 다음엔 돈까지 원하는 전형적인 86진보의 코스를 아주 착실히 밟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돈과 권력이 도덕성과 결합할 때 도덕성이 도덕적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길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니 지금은 넘어가겠어.
그들의 도덕성은 항상 과거지향이고 자기보다 못한(못된) 세력을 향해 있어. 한마디로 “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촛불 이전으로 돌아갈래?”라는 거지. 그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긴 해. 나만해도 그 사시패스한 조폭두목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이 나라 떠나서 좀 살 방법은 없나부터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더 나쁜 사람의 존재가 누군가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지. 진보들은 그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속수무책인 사람들이지. 조국이 엄청난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표창장 위조나 인턴십 품앗이 같은 건 ‘그 정도가 뭐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진보니까 (그 정도로 4년 실형이란 건 좀 심하다고 생각하는 나도 참진보인 듯). 이번 선거에서 무슨 소릴 해도 2030 세대의 지지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결국 자기들끼리 성인군자 노름하면서 권력과 돈을 나눠갖는 판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 때문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판을 어떻게 흔들어놓을 것인가가 다음 세대의 숙제이자 자기 살길을 개척하는 방법론이겠지.
이런 얘기 쓰자니 힘들다옹. 근데 더 기막힌 이야기가 있다옹.
새해들 복 많이 받자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