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모르쇠, 협박, 훈계

진보는 왜 악(惡)이 되는가?

그는 아마 이런 정도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을 것이다. 쏴리, 하고 입은 싹 싣고 말이다. 하지만 남의 이름 빌려다가 돈까지 받아놓고 이제까지 말도 없다가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미안하다는 말로 넘어갈 방법은 없는 거다.

그래 말씀 못 드린 것은 죄송하고, 그럼 다른 건 안 죄송하다는 거네? 어이가 벌써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차분히 나가본다.


“개인적으로 큰 악의를 가지고 그러셨다는 건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 사과는 받아들이겠지만 이건 이렇게 끝낼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미안하다는 말 이상의 조치를 취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어떤 조치를 말씀인가요? 죄송하긴 하지만 제가 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네요.”

“뭘 하실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시고요, 저로서는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네요. 알량한 제 이름도 팔아서 돈도 받으셨는데 저한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넘어가실려는 거쟎아요?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진 거라고는 업계에서 그나마 통하는 이름밖에 없는 사람인데, 그 이름을 그냥 갖다 쓰신 거잖아요.”

“네,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움도 되었고요. 하지만 제가 뭘 어떻게 해드려야 하나요?”


이건 생각 외로 개념이 없는 건지, 혹은 양심이 없는 건지? 하긴 개념 없는 사람이 양심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전화로, 그것도 공개공간에서 말이 나올까봐 마지못해서라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성의없이 쏴리쏴리가 아니라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지. 아니, 미안한 마음이 정히 안 들면 최소한 공개적이거나 공식적으로라도 사과를 해야지. 그 다음에 보상을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팁이라면 팁인데, 일단 상대는 뭘 정말로 해줄 마음은 없이 입으로만 쏴리쏴리하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구체적인 금전 액수나 이런 걸 말하면 바로 반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돈 요구하더라’고, 거의 반드시 이 코스로 나온다. 진흙탕 싸움이 되어서 얻을 것 없는 피해자는 이쯤에서 털어버리고 싶어지는데, 털고 나가면 또 '그것 봐라'고 나온다. 어쨌든 자기들 도덕성엔 문제가 없다는 그림을 만들고 싶은 인간들의 수법이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실 내가 입은 피해중 객관적으로 금전화해서 얼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내 ‘이름값’ 같은 것만 해도 말이다. 그러니 돈 이야기는 해봐야 소송 같은 것을 하기 전에는 받기도 힘들고, 나도 비슷한 부류의 인간으로 끌고들어갈 빌미만 줄 뿐이다.


“뭘 어떻게는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말씀은 뭘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신 것 같네요.”

“뭘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로서는. 그저 죄송합니다.”


‘쏴리쏴리. 빨리 좀 넘어가자. 이 이상 더 뭘 어쩌라고’ 라는 서두름이 전화기 너머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이쯤 되니 이제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지금 사람 이름 갖다가 금전적 이득도 취하시고, 게다가 애초에 공모를 하면 일을 빨리 시작할 수 있다고 하셨으면서 정작 되고 나서는 말 한마디 없는 게 이게 경우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이 일 때문에 다른 일거리 들어온 것을 거절한 것도 있단 말입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거 처음 만날 때부터 말씀드려서 사정 뻔히 아시면서 이런식으로 하십니까? 저 같은 자영업자에게는 이런 것들이 다 기회비용을 지불한 겁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 기다리게 해놓고 아무 얘기도 없는 거, 이런 것도 다 갑질입니다.”


아니, 갑질 아니다. 이건 그냥 쌩양아치 짓이다. 그렇게 말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까진 말을 못하고 수위를 낮춘 게 갑질이다. 하지만 그는 갑질이라는 말이 거슬린 모양이었다. 저쪽에서도 욱한 기운이 핸드폰 너머로 느껴졌다. 이 진보라는 인간들은 남에게 피해를 입혀놓고 지적당하면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니까. 아까의 모르쇠 정도는 양반이었다.


“아니, 이렇게 험하게 나오시면 제가 나중에라도 선생님하고 일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나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이 인간이 진짜 사람을 우습게 보네. 이제 대놓고 협박질을 하고 나온다. 당시의 나는 삶은 호박보다도 무른 인간이어서, 감언이설이라도 열심히 하는 정도의 성의만 있었어도 이 말에 움찔했을지 모른다. 혹 더 큰 일거리라도 내가 끊고있나 하며 마음을 끓였겠지. 하지만 사기성과 무관심 말고는 보여준 게 없는 주제에 이렇게 나오는 순간 나는 딱 결론이 났다.


‘사기를 사기로 가리려 하네.’


애초에 자기가 일을 할 의사가 있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뻔한 사실. 거기에 더해서 그 공모전에서 무슨 돈을 받은 것이 무슨 자존감 부스터라도 된 것인지, 불과 몇 달 전 업계 후배로서 많은 도움 바란다던 식의 태도가 순식간에 까불면 너 아무것도 안 해준다는 식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이 사람에 대해서 더 검증은 필요없겠다고 느꼈다. 그동안 겪은 바, 사기꾼들은 한 번 사기치고 똑 같은 사기를 또 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바다. 여기서 내가 조용히 넘어간다고 나에게 티끌만한 일이라도 맡길 인간이 아닌 걸 알 정도의 경험치는 쌓인 인생이다. 이 인간, 진짜 쌩양아치구나.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착한 장사하는 척하는 이 진보양아치 빌런의 출신에 대해서 그간 열심히 페북을 들여다보며 알게 된 것은, 이 인간이 정치인으로 ㄱ시의 시의회 의장까지 하던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치하는 인간들은 진보고 보수고 다 이렇게 양심이 없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무슨 양심폐기 면허증 발급하는 것이 정치냐?


위협은 못들은 척하고,


“어쨌던 개인적인 사과는 받아도 이걸로 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말로 미안하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아니 그동안 다른 일도 하시고 계신 것 같던데요.”


진짜 갈수록 태산이다. 그 일을 당신이 구해줬나? 내가 그럼 이제까지 진짜 굶고 있어야 그제서야 미안한 거냐? 말 듣고 보니 이거 정말로는 하나도 안 미안한, 애초에 미안하다는 감정이 뭔지를 모르는 인간이다. 이것도 참 진보라는 인간들의 종특이다. 젊을 때 독재정권에 맞서서 구호 좀 외쳤으니 평생 필요한 도덕성은 이미 다 점수 따둔 듯이 사는 거.


“그건 제 사정이고, 저에게 일자리를 주던 하시기로 약속하신 건 대표님 사정이지요. 그거 안 지켜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도요.”

“죄송합니다만 제가 뭘 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너무 사회악으로 생각하지 마시고요.”


내가 물고 늘어지니까 자기입으로 용어가 나온다. 제가 저지른 일이 사회악인줄은 알긴 아는구나. 당신은 제법 거악(巨惡)이라서 나 같은 미천한 존재는 깔고 뭉게면 된다고 본다 이거지? 어디 내가 그렇게 뭉게지나 좀 보자. 사회악을 강요받자 나도 악이 점점 받쳤다.


그 와중에 고장난 녹음기같이 자기가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기에도 본인도 지쳤나보다. 이제는 인생살이 훈계까지 들어온다.


“원래 살다보면 뜻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은 겁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


이쯤에서 나도 할 말이 없어졌다. 할 말은 커녕 잠시 호흡도 막혔었다.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인간이다. 내가 어디가서 논쟁을 해선 좀체 안 질 자신이 있지만 이렇게 논리고 예의고 도덕이고 다 던지고 나오는 사람은 솔직히 두렵다.


무슨 신입 여직원이 회사 부장님한테 회식자리에서 성추행 당한 후의 상황과 똑같다. 피해자는 말로만 사과로는 부족하다고 하고, 부장님은 사과했으니 좀 넘어가자는 거다. 미안하다고 해서 안 되면 ‘이러면 내가 너랑 일을 못하지. 이래봐야 너한테 좋을 거 없다.’ 같은 협박을 한다. 그 정도로 협박해도 굴하지 않으면 다시 사과를 한다. 거기에 ‘사회생활이란 게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그런 거니까 니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게 오바다.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해라.’ 이런 인생 가르침까지 준다.


이제 말하는 나도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건 실명까고 덤비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 자영업자로서 악명치가 오르겠지. 클라이언트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잠재적인) 갑님에게 이렇게 덤비는 컨설턴트란 건 부담스러워 피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런 생각도 들고, 무슨 소송이라도 들어오면 내가 감당할 재주는 없다.


그래서 실명만은 가려주지만, 내가 너 같은 양아치 박제사 노릇은 하고야 말겠다. 미투 폭로자들도 다 불이익이며 2차 가해며 각오하고도 목소리를 내니까 사회가 바뀌는 거다. 그에 비하면 내가 받는 정도의 피해를 겁내서야 민주시민이 못되는 거지. 해서 나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지금 조수까지 공고해서 다니는 그 ‘컨텐츠 제작’을 나에게 적당한 가격에 맡기는 정도만 했어도, 아마 일은 그런대로 원만히 수습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는 그럴 의사도 애초에 없었다. 그렇다고 좀 조심스고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지도 않았다. 전국의 양조장과 주점을 다니면서 또 착한 사업가 놀이 중이다. 이런 진보 양아치 꼰대의 착한 사업가 놀음을 페이스북에서 계속 봐야 하는 것도 개인적인 고통이다.


어쨌든 마무리는 표면적으로 훈훈했다.


“앞으로 선생님과 같이 할 일이 있으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언제든 연락 주세요.”


쏘리라는 말로만은 안 된다고 악을 쓰고, 그걸 가지고 뭘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법석이냐는 그 과정이 서로 지쳤기 때문에 이렇게 나름의 우호적인 마무리에 도달했지만, 물론 나는 그를 전혀 믿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인가를 맡길 생각은 앞으로 안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은, 지금까지 일처리 한 것을 보면 애초에 나를 전혀 사업파트너로 의식하지 않았다는 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그는 그후로 먼저 연락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근에 무려 50명 정도의 투자자를 모집해서 차렸다는 양조장은 잘 되길 바란다. 그 사람 하나가 잘 안되라고 수많은 사람들의 재산과 선의가 희생당하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까, 그리고 앙갚음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내가 사람이 악해지는 것은 나 스스로 괴로운 일이니까, 진심으로 잘 되길 빌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만들 것이라는 느낌은 있다. 물론 그는 하나도 안 두려워할 말이지만, 어디 두고 보자 싶은 심정일 뿐이다.


1641887303492-1.jpg <두고 보고있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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