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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 오믈렛'과 감자, 옥수수찜

밥해먹는 낙에 출근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오믈렛>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 '프로의 주방'과 가정은 좀 다르다. 일하는 방식 자체도 다르고 같은 재료라도 사용하는 수준이 다르게 마련이다. 요는 손님상에 나가는 음식을 만들고 나면 남는 자투리 식재료가 꽤나 된다는 것.

그리고 나같이 정해진 메뉴 없이 그때그때 해나가는 경우에는 내가 궁금한 식재료를 들여다가 이것저것 해보는, 실험용 요리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재료도 좋은 것을 쓰는 경우도 많고 이것저것 재미있는 시도를 하게 된다. 어찌보면 주방의 진짜 강점은 이런 스탶밀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음식도 맛있고 다 흠잡을 데 없지만 가게 컨셉이나 원가 관리, 재료수급의 문제 등등으로 메뉴화 되지 못하는 요리들이 많기 때문.


물론 스탶밀이 꼭 흥미진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기랑 안 맞는 음식이 나올 경우도 있고, 혹은 아무리 맛난 것도 질리게 만드는 프로세스를 겪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소믈리에의 경우 일하던 매장이 스테이크 메뉴 리뉴얼한다고 거의 한 달을 스테이크만 먹었다는데 최종 테스트 하는 날에 스테이크를 10종 정도 시식하고 퇴근하다가 길에서 토했다고 하기도... 나야 혼자서 다 하니까 같은 메뉴를 계속 하는 경우는 없는 편. 어느 정도 해보고 아, 이런 결과가 나오는구나 하면 데이터화 해두고 한동안 시간을 두고 다시 해봐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편이다.


각설하고, 오늘의 스탶밀은 '냉장고를 부탁해 오믈렛'이다.  된장찌개 끓이고 남은 두부 반 모, 양도 상태도 애매하게 시들어가는 갯방풍 몇 가닥, 킬바사 소시지 등이 재료다. 쌀이 똑 떨어지고 바로 전날 파스타를 해먹어서 파스타는 안 땡기는데다가 애정하는 우리국수 소면도 없고, 탄수화물 파트가 총체적 난국 같은 느낌.


뭐, 탄수화물 섭취는 달리 하면 되고 일단 이 재료들을 맛있게 먹되 너무 손이 안 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결론은 오믈렛. 커리나 찹수이를 만들어도 되는데 밥이 없으니 그런 분위기는 또 아닌 것같고. 한 판에 때려넣고 요리하기엔 오믈렛이 제일 편하다. 냉장고를 부탁하는 오믈렛이다.


1. 두부는 키친타월로 감아 물기를 뺀다. 그리곤 잘게 썰어 넉넉히 두른 기름에 튀기듯이 볶아 바삭한 상태를 만든다. 여기서 벌써 편하게 해먹겠다는 계획을 스스로 말아먹었다. 얇은 두부 모양 유지하면서 적은 기름에 튀기는 게 시간도 시간이고 손이 상당히 가는 일이다. 이제와서 어쩔 수 없다.

2. 오믈렛용이니 재료들은 다 얇아야 한다. 소시지도 얄상하게, 오십원짜리 동전 정도 사이즈로 자른다.

3. 방풍나물도 거의 다지듯이 잘게 썬다.

4. 우선 두부 상태가 어느 정도 바삭해지면 그 다음엔 소시지도 넣고 볶는다.

5. 달걀 2개 풀어서 볶아진 팬에다가 고루 뿌리고 인덕션을 끈다. 고루 뿌리는 요령은 가장자리로 죽 두르고 한 번 흔들어주는 것. 이렇게 하면 달라붙지도 않고 경사진 팬의 가장자리를 타고 가운데로 계란물이 모인다.

6. 방풍나물 다진 것은 그 위에 뿌려준다.

7. 대개 2~3분 정도 가끔 살살 흔들어주고 기다리면 달걀이 충분히 굳어진다. 이 때 오믈렛이니 말아도 좋겠지만 그냥 큰 접시로 옮기는 게 사진 찍긴 좋겠다.

8. 소금간을 하거나 뭔가 소스를 뿌리는 것은 자유지만 이 경우엔 소시지에 충분한 간이 있어서 스킵.


이 정도면 훌륭한 오믈렛이다. 특히나 달걀이고 뭐고 물컹도 아니고 그냥 스윽 으스러지는 듯한 식감 싫어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열로 적당히 질겨진 오믈렛 표면이 좋다.


그 와중에 한 쪽에선 두백감자와 찰옥수수를 찐다.

소금, 설탕 그런 것 없이 그냥 플레인 찜. 두백은 포슬포슬해서 잠자찜용으로 적합한 품종, 거기에 이빨이 붙는 듯한 찰기의 찰옥수수가 식감의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담백한 탄수화물을 밥 삼아, 오믈렛을 반찬 삼아 먹다보니 절로 벌떡 일어났다.


냉장고엔 아직 김장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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