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매운 부죽 무침에 피시케이크

중국의 여름이 그리웠어요

<부죽>

두부를 사랑한다. 이 부죽도 두부의 일종.

두부피를 말린 개념의 음식인데 아마 훠궈집 같은 곳에서 보신 적들이 있을 것이다.

부죽(腐竹)이란 '두부 대나무' 정도로 직역된다. 직관적으로 납득이 가는 이름이다.

<허창시 문봉표>

이건 강릉시내 어딘가 대형마트에서 집어온 것이다. 대기업 계열은 아닌 대형마트인데 아시아마트 코너도 있어서 상당히 다양한 중국과 동남아식품을 접할 수 있다.


요리하는 김에 중국 포털인 바이두(www.baidu.com)를 검색해 보았다. 원펑(文鋒)이라는 이 브랜드가, 또 다른 브랜드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중국에선 어떻게들 요리하는지도 궁금해서.


다른 포털들과 같이 바이두도 뭔가를 검색하면 되도록 열심히 쇼핑옵션을 보여준다. 브랜드 검색도 목적이니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지명이 쉬창(許昌)이다. 우리말 독음으론 허창. 조조가 위나라의 수도로 정해서 허도라고도 부른 곳. 삼국지 애독자라면 익었을 지명이다.


부죽의 백과사전 항목을 검색해보니 쉬창이 중국국가지리원에서 부죽의 원산지 표기명으로 인정한 곳, 유럽연합으로 따지면  A.O.C. 나 D.O.C. 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꼬냑이나 체다치즈 같이 말이다. 두부가 전국구 음식이듯이 부죽도 전국 어디서나 나오지만 유독 쉬창의 부죽만이 지리적 표시제도에서 인정하는 일종의 명품부죽으로 인정받은 것.


<한글 정보>

쉬창 부죽의 특징은 황금색 윤기가 나고 벌집같이 구멍이 균질하게 나있는 것이라고. 쉬창은 일찍이 당대에 콩 재배와 콩제품이 유명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이 궁금한 분은 아래 링크 참조하시고.


【许昌腐竹_百度百科】

https://mbd.baidu.com/ma/s/TFjDAgf5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10대 명품 브랜드 같은 것엔 들어가지 않는 브랜드인 것 같다. 포장이 매우 허름한 것은 저가품이라는 방증이긴 하다. 실제로 바이두 쇼핑에 가면 상당히 화려한 포장의 고가품도 있다.


대두와 물, 약간의 이산화규소(소포제) 정도가 원료인 단순한 식품인데 뭐 큰 차이가 있을까... 할 사람도 있겠지만.

<1시간 후>

요리를 해보니 뭔가 차이가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부분은.

물에 불려 보면 조직의 차이가 크다. 어떤 것은 상당히 부드러워지는데 어떤 것은 아직도 딱딱해서 그냥 씹긴 좀 불편한 정도고... 이런 텍스쳐의 일관성도 제품 품질을 가르는 데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

<오늘은 이것 밖에>

휴일 전이라 장을 안 봐서 이것밖엔 채소가 없네.

<데치기>

어차피 익혀서 건조한 음식이라 안 익혀도 먹는 데 지장은 없지만 한 번 더 데쳐준다. 팔팔 끓이면 그만큼 부드러워지지만 꽤나 오래 익혀도 풀어지거나 부스러질 정도는 안 되는 게 특징이자 장점이지만, 굳이 부들부들한 식감을 좋아하진 않아서 살짝만 데친다. 아까 꼬들한 것들은 데치고 나서도 좀 불편하게 꼬들한 상태.


<피시케이크>

채소도 깨도 없다 보니 갑자기 호화로운 것이 등장한다.

궁극의가 아니라 궁극으로 향하는 첫걸음의 피시케이크. 수비드 온도가 낮아서 매우 부서지기 쉬운 상태의 텍스쳐. 손님상에 나갈 상태가 아니다. 이것도 진공포장은 했지만 오래 둔다고 좋아질 물건 아니니 빨리 먹자 싶다.

<참기름>

중국식으로 량빤(凉拌)을 할 것이다.

량빤은 기름이나 양념에 차가운 상태로 비벼내는

것.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흔히 먹는 비빔면도 중국 개념으론 량빤한 면이다.


얼마 전 만들어둔 초고추장 비빔면 양념을 베이스로 쓰되 생양파 말고 들어가는 게 없는 빈약한 고명은 참기름의 고소함으로 좀 커버를 해볼 요량. 이 참기름은

어느 어머님의 정성이 가득한 버젼으로 콜드프레스가 아니라 신선한 허브향은 덜 해도 고소함으론 압도적이다.


<장가네 3년 숙성간장>

간을 맵고 신 것으로만 맞출 순 없으니 약간의 간장. 이 간장도 소중히 쓰는 명품급이다. 하동의 장가네 간장으로 3년 숙성된 것.


일반 시판 간장보다 짠맛은 덜하지만 향이 강해서 조금만 써야 밸런스가 안 깨진다. 적당히 쓰면 고추장과도 참기름과도 사이가 좋지만 과하면 다른 향을 다 눌러버리게 되다. 이건 고추장과 참기름도 같지만 간장을 짠맛 내는 데 주안점을 두다가는 비싼 재료를 낭비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짠맛이 부족하다면 추가분은 소금을 써야 한다.

<등초유>

그리고 이것. 등초유(藤椒油). 이거 한 병 사서 중국식 마라 요리에 치트키로 쓰고 있다. 쓰촨 성 홍야현(洪雅縣)도 역시 중국국가지리원이 인정한 지리적표지 대상.


우리나라에서 마파, 마라 요리는 이게 뭐냐 싶은 밍밍함이 대부분인데 '라(辣)'만 있고 '마(痲)'가 없기 때문이다. '마'와 '라'는 같은 매운맛이고 통각자극이지만 결은 상당히 다르다. '마'는 혀를 저리고 아리게 해서 마비되는 느낌을 준다. 복어독 중독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등초의 생김은 딱 초록색의 후추 같다. 한국에는 산초가 여기에 좀 가깝긴 하지만 이 마비력에선 상대가 안 되는 수준.


이게 중독성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은 철 따라 한 번씩 챙겨 먹어줘야 한다. 한국엔 이런 맛 내는 집이 드믈어서 중국에 갈 때마다 사천요리집 같은 곳에 가곤 했는데 코로나로 몇 년째 중국을 못 가기도 했고, 상해나 홍콩 같은 곳의 어정쩡한 사천, 호남 요리집에도 이 맛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본토식으로 하다가 망하기 좋은 맛이라 그렇다. 실제로 상해 살 때 자주 가던 호남 요리집은 일 년이 채 안 돼서 망했고, 그 후로 2010년대 초반쯤에 호남요리 붐이 불어서 프랜차이즈들도 생기고 했는데 그런 집들은 다들 밍밍한 맛으로 성공한 것 같더라는 것.


이 등초유를 티스푼 반 정도만 떨구었다. 매운 음식이지만 딱히 사천이나 호남식은 아니고, 기분만 좀 내자는 의도. 정말 조금만 넣어도 혀가 마비되는 그 느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피시케이크>

텍스쳐 문제를 만회해 보고자 팔팔 끓는 물에 익혔으나 텍스쳐는 차도가 없다. 생각해보니 단백질 변성이 이미 다 끝난 새우, 관자, 오징어 살에다 대고 무슨 죽은 자식 뭐 만지기를 시전하고 있었나.

<부죽 매운 무침>

그래서 주물주물 잘 버무려 나온 부죽 무침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밥반찬으로도 좋고 그냥 이대로 한 끼 식사로도 좋다. 피시케이크는 살짝 겉도는 느낌인데 이건 골뱅이 사다 익혀서 넣으면 훨씬 잘 어울리겠다.

딱 한 가지 아쉬움은 등초유에 참기름이 눌려서 넣은 보람이 덜 하다는 것. 그래도 감칠맛은 참기름이 거의 다 담당했다. 맛 있었어.


다음번엔 채소도 좀 풍성히 넣고 골뱅이 사다 버무려야겠다. 등초유 버젼과 참기름 버젼을 옵션으로 따로 제공.


동해안다이닝은 멀리 중국 내륙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냉장고를 부탁해 오믈렛'과 감자, 옥수수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