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박고추장과 활용 요리들

버릴 게 없는 박이로다

<박>

박으로 청을 담그고 그 청으로 다시 술을 담근 이야기는 했다. 박술의 고상한 향은 인기 만점이어서 양조장 차리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 지경이다.


양조장은 중에 생각해 보고, 우선 남은 박속 처리방법부터 강구해보자.

박속으로 청을 두 번쯤 뽑아내고 나면 특유의 향이 약해지고 박속은 하얀 상태가 아니라 말갛게 투명한 색을 띄게 된다. 이제 향으로 마시는 청과 술의 시간은 지났다. 설탕을 듬뿍 빨아들여서 정과 비슷한 상태가 된 박을 어떻게 해볼까 고민하다가 묘안 창출.



일종의 고추장박이 같이, 고추장을 넣고 비비적비비적 해둔다.


<박고추장>


이렇게 말이다. 박고추장이라고 부르자. 직관적이고 심플한 이름이다.

이 고추장의 특징은 박향이 난다는 것과 달다는 것이다. 고추장들이 원래 단 맛이 꽤나 있긴 하지만 또 드라이한 고추장들도 있다. 달게 먹는 취향은 아니지만도, 고추장이 드라이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기존의 고추장 음식들에 대한 인상이 전부 흔들리게 된다. 그걸 잡겠다고 설탕을 쓰기는 싫은 느낌이고. 사실 정선에서 사온 고추장이 너무 단 맛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이렇게 처리하면 간이 딱 맞겠다.



사진의 고추장은 공주 영평사 고추장. 옛날보다 가격이 좀 내려간 것은 반갑다. 아마도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모양. 그런데 왠지 옛날보단 맛이 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느낌인지.... 지금도 애용하지만 옛날엔 시판 고추장 중엔 원톱이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살짝 내려온 느낌.


<와송샐러드>


약간의 초를 더해서 약간 묽게 해주고 와송(혹은 무엇이든) 샐러드, 혹은 무침에 쓰니 좋다. 와송이 신 자두 버금가게 신맛이라 단맛이 있는 고추장 드레싱이 천생연분이다. 그중에서도 박고추장과는 아주 진짜 하늘이 날짜까지 잡아줬네. 아무생각 없이 와송 집어들고 오기 전날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만든 박고추장이다.


<떡볶이>


언제나 자신있는 떡볶이. 떡과 고추장과 기름 좋은 것 써서 볶는데 불량식품 떡볶이와 비교되면 내가 미안하지. 그런데 설탕을 안 써서 사람에 따라선 섭섭해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박고추장을 쓰면 그런 문제는 없겠다.


단 것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적당히 잘 쓰면 거부할 수 없는 게 단맛. 박의 은근한 향이 고추장의 아린 매운맛도 조금 어루만져 주고 단맛도 자연스럽게 내니 박을 살 이유는 또 하나 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고량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