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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송철국수에서 배운 국수맛

국수는 국수맛으로, 밥은 밥맛으로

<전주 송철국수>

익산에 성묘를 다녀오는 길. 강릉에서 익산은 네비게이션상으로만도 4시간이 꽉 차는 거리니 하룻길에 왕복은 무리다. 오가는 길에 하루 묵어가며 마침 궁금했던 양조장들도 들러보자 싶다. 숙소는 전주. 전주천 다리 너머로 남부시장이 보이는 곳이다. 가격 착하고 주차 가능한 게스트하우스라 만족했다.


그런데 옆집에 업력 있어보이는 국수집이! 우린 또 딱 보면 이런 느낌 알지.


바쁜 일정이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가서 국수 구매하고 출발. 마침 장날인지 천변 고수부지와 찻길로 장꾼들이 진을 친 것은 주마간산식으로만 훑어보고와 아쉽다. 언젠가는 전주에서도 주변의 먹거리로 음식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떠날 수 밖에.


<송철옛날국수 중면>

국수 사러 왔다니 '중면 드려요?' 해서 '네'하고 받아온 것. 

중면 말고 소면은 당연히 있겠고, 또 뭐가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중면은 본래 나의 취향인 것. 대면이 없어서 섭섭할 뿐. 다른면을 사봐야 다 먹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릴 거라 이걸로 만족이다.


<성격이 무난한 면>


국수는 감으로 끓이는 것이지. 우선 대충 끓여본다. 중면이니 일반 소면보단 시간이 좀 걸린다. 재 보진 않았지만 물이 끓는 시점 기준으로 한 2분 정도? 한 올 건져서 먹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알덴테보단 좀 더 익었지만 탄력 좋은 타이밍이다. 찬물에 잘 헹궈서 잠시 물기를 빼자. 잠시는 정말 잠시다. 잠시여야 한다. 


<비빔국수1>

그리곤 냉장고를 부탁해 스타일의 비빔국수. 국수 담고, 고추장 양념 올리고 참기름에 고명 대충 얹으면 그만이다. 다들 미리 준비를 해놨으니 1분 이내에 끝나는 작업이다.

 

그런데, 약간 문제가 있었다. 새로 산 국수라고 사진을 찍는다고 법석을 떨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세팅하고 먹는 데까지 한 4~5분은 걸린 듯.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같이 면발에 목숨 거는 사람에게는 꽤나 크리티컬한 문제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이 면발, 처음 찬물에 헹구어놨을 때와 거의 차이가 없다. 

상당히 무난한 성격의 면이다. 무난한 성격이라는 것은, 모가 난 성격의 대(對)가 되는 말이다. 국수가 무난하다는 것은 우선 끓일 때 스윗 스팟이라고 할지, 베스트 면발이 나오는 시간적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맛은 있지만 까다로운 경주의 모 국수는 '감으로' 하는 방식으로 몇 번이나 타이밍을 놓쳐버려서 스톱워치 가져다 대고 타이밍을 맞췄다. 이건 삶기가 꽤 까다로운 면이다. 그리고 또 먹기까지 시간이 길면 금방 퍼져버린다. 물론 이 퍼진다든가 하는 것도 실은 국수에 대해 진심으로 모가 난 나같은 사람이나 따지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국수, 서걱아삭한 채소가 위주인 고명과 부드럽고 탄력 넘치는 면발의 대(對)가 기가 막히다. 아 이러다가 막 시가 나올 것 같아... (참자).


<비빔국수2>

그래서 보통은 안 하는 짓이지만 점심과 저녁을 같은 메뉴로, 또 비빔국수로 먹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송철국수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전주의 3대 80년째 내려오는 국수집이란다. 옛날식으로 자연건조 국수를 만든다는 건 면발 보고 짐작했다. 특이한 점은 어디든 원하는 식으로 주문하면 국수를 그렇게 뽑아준다고 한다. 즉, 굵기나 투입하는 부재료 등을 맞춤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가내수공업 규모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기술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이기도 한 듯하다.


사장님 인터뷰 기사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국수는 끓여서 찬물에 헹구어 아무 것도 없이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정말 그렇게 고명도 양념도 없는 국수를 먹어보았는데 그 말이 납득이 간다. 사실 좋아하는 국수 스타일은 중국에서 많이 먹는 빤몐(拌麵, 비빔면)이다. 중국천지에 가지가지 빤몐이 있지만 파기름이나 고추기름으로 고명은 최소화해서 비벼먹는 면을 특히 즐기는 편. 중국에서 밀농사 지대에 가면 맛있는 국수들이 많아서 괜찮은 기름만 있어도 훌륭한 요리를 먹는 기분이 드는데 바로 그런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경우는 기름도 없이 면만 먹었는데 오히려 면발의 탄력과 면에 고유한 은은한 소금기에 집중하게 되어 좋았다. 이런 국수라면 정말 국수만으로도 한 그릇을 비울 수 있겠다는 느낌. 평소 밥상의 주인공은 밥이라고 맛있는 밥을 강조하는데 국수도 주인공은 국수구나 싶은 깨달음이 왔다.


송철국수 중면이 개인적으로 역대급 국수이긴 하지만 먹다보니 또 생각나는 집들이 있다. 그 집들의 국수도 다 이렇게 한 번씩 먹어봐야겠다 싶다. 


사족이지만 인터넷 판매도 하는데 배송비 더하면 직접 가서 구매하는 것의 두 배 정도 가격이다. 가서 사온 보람이 더해서 기분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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