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위해 목숨도 거는 것이 사람
전쟁기념관도 안 가볼 수는 없지. 하물며 여기서는 가끔 캥거루도 튀어나온다기에, 전쟁은 싫지만 가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캥거루는 호주에 가면 공원에서도 본다기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야하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왔는데 호주 체류 중반이 지나도록 콧배기도 못 봐서 이제 동물원이라도 가봐야 하나 따위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나는 입구에는 갈리폴리전투를 기념하는 장소가, 구조물이 있다.
갈리폴리 전투는 1차대전, 아니 대영제국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삽질 전투에 속한다. 당시 해군부 장관이던 처칠이 주도해서 육해군 합동작전으로 다르다넬스 해협의 요충지인 갈리폴리를 점령해서 독일과 오스만투르크 연합군의 숨통을 단번에 눌러버리겠다는 작전이었는데, 육해군 손발도 안 맞고 애초 요새화 된 해안에 상륙해서 점령을 하겠다는 돌격전이란 것은 전우이 시체를 밟고야 가능한 작전이다. 결론적으로 이 전투는 영국군, 나아가 동맹국 프랑스군의 대손실 대참패로 끝났고 퇴각전을 잘 지휘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는 수준. 처칠 개인으로서도 1차 실각의 원인이 되었고 나중에도 갈리폴리 이야기만 꺼내면 불같이 화를 냈다고.
문제는 당시는 진짜 식민지였던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이 이 돌격에서도 선봉을 맡았다가 도합 사망자만 1만 명 가깝다는 대참사를 겪었던 것이다. 당시 두 나라 인구 합쳐서 5~600만 정도 되었다던가. 런던의 탁상에서 결정된 엉터리 작전에 식민지 젊은이들의 피가 바다를 물들였고, 이런 희생을 계기로 두 나라는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더하게 되어 마침내 실질적인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Anzac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은 이 호주와 뉴질랜드의 연합군을 뜻하는 말로 안작 네이션이라는 용어도 있을 정도(하지만 평소엔 호주가 뉴질랜드 무시한다고). 시드니엔 안작 브릿지도 있고 안작 기념일이 두 나라에선 현충일 같은 의미라고 한다.
한 편, 역시 희생이 적지 않았을(그래도 승리한) 오스만 제국군의 지휘관은 나중에 초대 튀르키에 공화국 통령에 오르는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 그의 입장에선 갈리폴리 전투(터키에서는차낙칼레 전투라고 부른다고)가 최고 권력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중에 그가 했다는 연설, 혹은 읊은 시 같은 것이 이곳에 돌판에 새겨져 있다. 아타튀르크가 이런 연설을 했다는 썰 수준인 모양인데, 어쨌거나 내용은 감동적이고 안작네이션과 튀르키에는 요즘은 무척 잘 지내고 있다.
Those heroes that shed their blood
피를 흘린 영웅들이여,
And lost their lives.
목숨을 바친 영웅들이여.
You are now lying in the soil of a friendly country.
그대들은 이제 친구의 국토에 묻혀 있다.
Therefore rest in peace.
그러니 고이 잠들라.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Johnnies
여기 우리의 땅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잠든
And the Mehmets to us where they lie side by side
조니들과 메흐메트들은
Here in this country of ours.
우리의 눈에 다름이 없다.
You, the mothers,
머나먼 나라에서 아들을 떠나보낸
Who sent their sons from far away countries,
어머니들이여,
Wipe away your tears.
눈물을 닦아라.
Your sons are now lying in our bosom
그대의 아들들은 우리의 가슴에 안겨
And are in peace.
평온히 안식을 취하였도다.
After having lost their lives on this land they have
이 땅에서 목숨을 잃은 그들은
Become our sons as well.
우리 모두의 아들이 되었나니.
(출처:나무위키)
그나저나 초여름의 건조기후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날이 궂어서 우산도 없는 여행자는 조금 서러웠다.
기념관 올라가는 길 오른쪽의 카페를 눈여겨 보아두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로서 다른 식민지 전쟁들에 열심히 동원된 모양이다. 그런데 그 동원이 우리나라와 일본 같이 강제동원, 징용징병 보다는 좀 열심히 나간 느낌이 있다. 본국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백인들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 이제와서 생각하면 무엇을 위해...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희생을 기리고 국가의 영광을 강조할 수밖에.
박물관, 미술관에서도 그랬지만 나라의, 사람들의 정체성이 식민지였던 시절은 애잔하다. 심지어 젊은이들의 피를 흘려가며 뭔가를 증명하고 싶었다니... 그거야 식민지 종주국들도 그랬지만 광기의 시대에도 식민지는 더 슬프다.
한편으론 사람들이 목숨만큼이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도 사실.
멀리서 척 봐도 전형적인 마우솔레움 양식이더니 안쪽으로 이렇게 중정이 있다. 마우솔레움에 실제 중정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지금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사각형 대형 건물에 중정이 있는 건 나름 자연스럽다.
여기 나오니 그 사이 햇님이 방긋한다. 먼지 같은 필터가 없는 이곳의 햇살은 상당히 강렬하고 눈부시다.
의사당과 직선으로 마주보는 구도라는 이야기는 했다. 의원들이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매일 봐도 잊을 건 다 잊는 게 사람, 특히 정치인.
대리석으로 호화롭게 지은 곳은 1차대전 무명용사의 묘다.
죽고나서 이게 무슨 소용. 산 사람들에게 너도 목숨 바쳐라 하기 위해서 성대한 장사를 치러주는 것이지.
2차대전에 일본이 다윈을 공습하고 남태평양에 진출하면서 비로서 '자신의 전쟁'을 치른 느낌이다.
하지만 1945년 이후에도 주도적으로 자기 전쟁을 한 경우는 없다고 봐야겠다. 한국전쟁도 대한민국 입장에선 고마운 도움이지만 안작 네이션의 입장에선 남의나라 전쟁인 것이 팩트.
어쨌거나 한국사람이니 여긴 눈길이 더 가는 게 인지상정.
종군화가님의 그림들이 보이고. 공식 종군화가 같은 직함이 그때까지도 있었구나 싶고.
이건 이야기가 아주 긴데, 요점은 호주 군인들이 전사한 전우들을 위해 세운 십자가가 우여곡절 끝에 호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롱탄 십자가라고 한다.
이곳은 건축과정을 전시하는 소별관. 저기 사진의 여자분은 데미 무어 누님하고 넘 닮았네.
카페에 들어와서 다리 쉬면서 커피 한 잔.
이렇게 햇살이 맑고 투명한 곳에서 전쟁을 생각하는 것은 어딘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이 신대륙의 나라는 오밀조밀 아웅다웅 살아가는 유라시아대륙의 주민의 눈으로는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살고 있기도 하다. 인구는 2천5백만. 한국의 수도권엔 그만한 인구가 이 나라의 수천 분의 일 땅에 몰려서 살고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정체성에 목숨 거는 이야기를 하자니 억지로 백인들의 종교를 강요당하고 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쓰는 교육을 받은 원주민들이 알코올중독과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가 생각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