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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라]호주 국립 미술관 & 초상화 미술관

자기 것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부터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눈에 걸리는 작품들만 찍어왔는데 대개 엡오리진이나 이민자 출신 작가들의 작품.

20세가 중반 이전의 작품들도 다연히 많은데 다들 '저도 유럽인에 못지 않은 작품을 한다고요' 같은 분위기라 매력이 1도 없었다. 더구나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라는 형식 자체도 런던을 본따온 것 같은데, 런던에서 본 대영제국의 어마어마한 컬랙션과 비교하자니 초라함만 더한다고나 할까.


인상적이었던 미국 작가 카라 워커의 전시.

카라는 노예제를 기본 테마로 회화, 조각, 필름, 그림자인형극 등 여러 형식의 작품을 하는 작가다.

그림자인형극을 보았는데 영상을 안 찍어온 게 아쉽다.

호주는 노예제의 상흔은 비교적 가볍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리를 원주민들의 상처가 대신하고 있달까. 카라 워커와 같은 작가가 호주에서도 의미를 갖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호주의 예술은 시드니 놀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시드니 놀란의 위대함은 처음으로 호주의 풍경을 눈에 넣고 손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량한 사막이나 인적이 드믄 숲, 그리고 그 곳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그 중에서도 네드 켈리 연작. 자기 주변을 둘러보고 자기 가진 것을 표현하다보면 자신의 '스타일'은 저절로 자라나게 마련이다. 무슨 스타일을 본뜨려는 것은 아직도 습작기의 작가라는 증명. 예술가 명함을 거는 것은 자유지만 자기 것이 없는 사람은 실은 알도 못 깬 상태라고 봐도 좋겠다.


그나저나 시드니 놀란 컬렉션은 캔버라 시립미술관에 상당히 잘 수집되어 있다. 캔버라 방문하시는 분들은 이곳도 한 번 방문하시길 권한다.


이 내셔널 갤러리에서 태반은 그런 알 속의 예술가들인데, 명색 국립 미술관에도 그림이 걸린다. 예술가가 내 것을 갖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인정받는 것은 복불복 성격이 있다는 점. 유명하다고 다 자기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문화에 대한 수준이 얄팍한 사회일수록 어디서 본 것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쯪.



개인적으로 관상은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편. 외국인의 관상에는 감이 없음. 겪은 경험치가 적으니 그럴 수밖에.

원주민이라고 한마디로 해도 언어나 생활습관도 다양하고, 인종적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적어도 여기 갤러리에서 본 사진과 초상들로만 봐선 인종적 다양성은 생각보단 크지 않은 듯. 몇 가지 외모의 특징들이 잘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올리비아 뉴튼존 누나. RIP.



타즈마니아 원주민인 워라디, 혹은 워라티 부부. 이들은 19세기에 원주민 권리를 위해서 투쟁한 (수많은) 사람들 중 둘이다. 존 로라는 작가에 의해 흉상이 남은 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 이 흉상들과 이미지들은 당대에 이미 유명해져서 존 로는 돈도 많이 번 모양. 하지만 정작 당사자 워라디는 고향에서 쫓겨나 일종의 보호구역에 수용되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죽었다고 한다.



이것도 매우 유명한 이미지. 백호주의 시대에 시민권을 신청했던 몽가 칸이라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이미지다. 직업은 매사냥꾼. 그 후로 호주의 다양한 정체성의 상징 같은 포스터가 되었다. 설명은 아래 참조.





역시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호주라는 나라의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

원주민 문제에 대해선 아직도 어정쩡하지만 이민에 대해서는 이제 백호주의 시대는 완전히 갔다고 선언해도 좋을 것 같다. 중국인 이민이 갑자기 쏟아져들어오는 것 때문에 이민제도를 고쳐가면서 문호를 좁히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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