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홈브루어 친구
하루치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날이다. 일단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기차 파업.
파업이라고 해서 안 다니는 건 아니고 축소운행 정도인 것 같다. 덕분에 기차든 지하철이든 무임승차라고 한다. 한 역무원이 친절하게 파업이니 돈 안 내도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곳은 뉴카슬. 급행열차로 두시간 반 정도, 완행을 타면 네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여기서 호주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바닷가에 살지만 바다는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과는 좀 다른 풍광의 바다니까.
이 호주 친구는 페이스북의 한국술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포스트에 댓들을 달고 어쩌다 보니 NSW에 거주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호주 가는데 한 번 들를께'가 현실화 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오해가 있어서 이 친구가 대박 삐진 사연이 있다.
나는 다음날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하고, 따라서 뉴카슬은 당연히 당일 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이 친구는 시드니에서 뉴카슬까지 왔고, 술도 같이 마실 거니까 당연히 자기 집에서 자고 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 마음은 고마운데 현대 한국인의 감각에서 초면에 그 집에서 숙박까지 한다는 것은 실례라기 보단 아예 없는 감각 아닌가? 그래서 자고 가라, 아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다가 아 니가 그렇게 불편하면 안 갈께... 까지 갔더니 이 친구가 좀 많이 삐진 것.
결국 만나서 한국인들은 다들 아파트에서 쭈그리고 살아서 그런 친절은 기대도 안 하는지라 오해가 있었나보다 하고 풀었다.
그 후로는 이렇게 좋은 곳을 데려와 주고, 술 이야기도 즐겁게 하며 아주 살갑게 대해준다.
그나저나 참 장관은 장관이다. 이런 바다 지형은 한국에는 없지.
자기도 호주 원주민이란다. 외양을 봐선 그냥 피부 좀 그을린 백인인데, 쿼터 엡오리진이라나. 나중에 알게 된 사정은, 원주민에 대해서 각종 트혜가 주어지니까 옛날엔 쉬쉬하던 원주민 혈통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 최근의 세태라고 한다.
이 친구는 공군에서 F18 호넷 정비팀에 있다가 은퇴하고 지금은 온라인으로 사이버보안 석사학위 취득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은퇴한 학생이라는 것 같은데 생활은 꽤나 여유로와 보였다.
한바퀴 경치 좋은 곳을 돌고 이 친구 집으로 향한다. 집은 뉴카슬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스완지헤드라는 곳이다.
홈브루어라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 보았다. 맥주, 막걸리, 와인은 물론이고 사케에 위스키, 진까지 없는 술이 없다. 홈브루잉 수준에서는 설비도 상당히 갖추었고. 막걸리 담궈놓은 것을 보여줬는데 시큰한 향이 썩 상태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누룩 탓도 클 것이라, 가져간 한영석 누룩을 선물로 주고 담궈보라 했다. 단양주, 중양주 개념도 확실히 일러주고.
그나저나 술방 한 구석에 진짜 내 잠자리를 만들어 두었는데 미안해지더군.
점심을 먹으며 '홈메이드 베일리스'를 반주로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부인인 데사는 필리핀 출신으로 한류광팬이란다. 한국 연예인,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오히려 멀뚱 ㅋ. 10월달엔 한국에 온다고 하니 잘 대접을 해줄 작정이다.
점심을 먹고 뉴카슬항구와 시가지 중심부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일종의 미니 펍크롤링. 먹고 마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맘대로 해봐 분위기다. 사실 점심에다 음주로 이미 배가 제법 부른 상태인데 그래도 경험치 쌓는다고 이것저것. 호주 음식은 영국보단 낫지만 역시 좋게 말해 소박한 수준이고 맥주는 어디가서 손색이 없다. 그래서 수제맥주를 몇 잔 마셨다. 이 친구도 군대에서 배운 알코올 계산 공식이 있다며 음주운전 안 걸릴 정도로 알아서 마신다면서 홀짝홀작 한다. 우리니라 같으면 요즘은 안 될 일이지만 이걸 또 못하게 하기도 뭣하고...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 인구가 호주 2 배가 넘는다니까 놀라기도 하고, 왜 호주는 형식적이나마 영국 식민지 지위에서 독립을 안 하는지, 출산율 감소와 도심지 슬럼화 등등 생각해보니 별 이야기를 다 했군.
저녁까지 잘 먹고 기차역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오늘은 마무리.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