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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오미를 갖춘 술 미담

완전 수작업으로 만드는 술

미담 양조장은 홍천의 한주 양조장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작은 곳이고, 가장 수작업이 많은 곳이다. 미담 선생은 벌써 환갑인데, 이렇게 혼자서 술 빚는다. 힘이 들기도 할 텐데,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시음이나 술빚기 교육을 지도할 때는 걸크러쉬 수준의 강단이 느껴진다.

 

‘하지만 힘이 드시긴 할 거야.’


술 빚는 건 보통 노동이 아니다. 쌀가마니를 옮기고, 독을 들어 청소하고 하는 것은 젊은이들도 애를 먹는 작업이다.

 

미담양조장과 한주의 인연도 합정동의 세발자전거부터 시작한다. 미담양조장에 어느 날 단체 견학을 갔더랬는데, 그때는 양조장이 양평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른 시설 없이 손으로 모든 작업을 다 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때 술맛을 본 몇 가지 중 한두 가지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래서 한주는 거래를 트기로 결심했고, 단 술이 좋은 것은 좋고 아닌 것은 아닌 측면이 있는 만큼 직접 테이스팅 해서 마음에 드는 것만 직접 병입해 가기로 했었다. 


미담은 규모가 작아서 원래 술값이 비싼 편인 데다가 한주가 그렇게 발품을 파니 가격은 세발자전거에서 파는 청주와 탁주 각 분야에서 가장 비쌌다. 청주 한 병에 6만 원, 탁주는 4만 원을 받았으니까. 지금이야 그 정도 가격대의 술이 제법 있지만 그 당시엔 파격이라고 할 정도의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테이스팅을 직접 해서 잘 된 것만 골라다 파니까, 가격이 비싸도 잘 팔렸다.  


양조장이 홍천으로 옮겨오게 되고 한주도 서울의 세발자전거를 접었지만 홍천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을 보면 역시 홍천에 한주산업이 발전할 기반이 형성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일은 우연이 아니다.

미담 선생이 청주 세 종류, 탁주 세 종류를 꺼내 와 잔에 따라 치에 앞에 따랐다. 6종의 술은 연엽주, 송화주, 생강주. 각각 탁주와 약주 버전이 있어서 합이 여섯 종이다. 일반 시음용보다 술을 더 내놓은 것은 물론 시음자가 일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랴 어여 마셔봐요.”

“네 감사합니다.”


치에가 초콜렛과 사탕을 앞에 둔 소녀 같이 발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시음을 시작하자 프로의 자세가 절로 나온다. 일단 눈으로 술을 검토하고, 코로 여러 번 향을 음미하고, 입에 넣어 굴려보고, 또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노우징부터 반복. 이렇게 여섯 잔을 마시는 동안 다들 조용히,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 이 의식 같은 절차가 모두 끝났다. 치에는 두 사람의 눈길도, 침묵도 모두 느끼지 못하는 듯, 진공 속에서 그만의 감각과 정신을 모두어 오직 술과 자신과의 교감만을 이루는 모습이다.


“그래 어때요?”


여섯 번째 잔이 탁자에 놓이고, 또 어느 정도의 침묵이 흐르고, 진공에서 현실로 치에가 귀환했다는 듯이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자 미담 선생이 침묵을 깼다.


“아, 좋아요. 술들이, 물러나지 않네요. 다들 힘차게 움직이고 있어요. 뭐든지 다 보여줄게 하는 느낌이랄까요? 한주는 많이 마셔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니혼슈와는 확실히 다른 활력이 있어요. 향으로만 따지면 와인이 훨씬 풍부하고 깊다고 할 수 있지만 곡주에는 특유의 감칠맛이 있어서 혀에 느껴지는 맛은 오히려 더 입체적이고 화려해요.”


“하하, 그럴 거야. 나는 술을 만들 때 오미가 다 갖춰지고 화려한 술을 만들려고 해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균형 맞추느라 눈치 보지도 않는 그런 술을.”

“네, 솔직하고 화려하고, 꼭 선생님 같은 느낌이에요.”

“응, 술이 빚는 사람을 닮더라구. 나야 평생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고, 기운차게 살아가려고 하니까 아마 내 술들도 그런 기운을 받나 봐.”


치에는 기뻐서

“저 이거 한 병 사갈 수 있을까요? 다 사가고 싶지만 그렇게 많이 일본에 가져갈 수는 없으니까 한 병만요.”


치에가 가리킨 것은 송화주의 청주다.  


“선생님 저는 생강주요. 청주로요.”


한주도 한 병을 산다. 한주는 생강주의 맑은 향이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둘은 술을 각각 한 병씩 들고 양조장을 나섰다.


“선생님 또 찾아뵐게요.”

“그래요, 자주 왔으면 좋겠네. 잘 가요.”


둘이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한주가 차에 올라타서 치에에게 물었다.


“어때?”

“좋아. 참 좋아.”

“좋아좋아 말고 다른 얘긴 없고?”

“좋긴 한데, 어떤 것은 너무 컬트야. 연엽주 같은 경우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술이네.”

“응. 보통이라면 치에가 이해가 안 간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오늘의 연엽주는 어려웠던 모양이네. 규모가 작고 시설이 기본적이라 편차가 좀 크기도 하고.”

“휴~,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자. 비즈니스적으로 보자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니까, 오늘은 일단 충분히 즐기고 느끼는 데 집중할래. 걱정하며 술 마시면 술맛을 못 느껴”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래, 맞아. 일단 우리 막국수라도 먹으면서 술기운 좀 내리고 가야겠지?”

“그래, 여섯 잔을 연달아 마셨으니 다음 시음을 위해서 좀 리프래쉬를 하는 게 좋겠네. 막국수 좋아, 좋을 것 같아. 좋은 곳으로 안내해줘요 한주 사마.”  


홍천에 막국수 잘 하는 집이야 많고도 많지만 다음 동선을 고려해서 길메식당으로 향한다. 빨리 안 가면 이 시골에서도 줄 서는 꼴을 면하기 힘든 집이다.


<용어설명>

노우징(Nosing): 술을 테이스팅 할 때 후각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위스키와 같은 고도주의 경우에는 미각 이상으로 후각의 역할이 강조된다. 노우징이란 코를 이용해서 술의 향을 느끼는 방법으로, 술을 마셔보기 전에 노우징을 먼저 하고 술을 마신 다음에 더 정보가 필요하다 싶으면 노우징부터 다시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미담양조장은 현재 남면의 신축건물로 이전해서 훨씬 좋은 환경에서 술을 빚고 체험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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