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0. 삼광쌀에 가까운 토종 앉은뱅이쌀 (만생종 메벼)

삼광하고도 비슷한 서산 해미쌀



까락이 없는 것이 토종쌀 중에서는 특징이다. 까락이 해야할 보호와 수분 수집을 사람이 다 해주니까 요즘 벼들은 까락이 없다. 부모가 다 해주니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하면 된다는 수험생처럼 쌀알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현대의 벼품종들이다. 하지만 앉은뱅이벼는 옛날 쌀인데도 까락 없이 맨숭하다.  



우보 농부의 설명을 보면 더욱 요즘쌀과 유사성이 많이 보인다. 키도 요즘쌀과 비슷하고,  낱알이 큼직한 것도 그렇다. 


통일벼는 밥맛이 워낙 없고 냉해에 취약해서 몇 년간 우리 곁에 머물다가 사라졌지만 남긴 유산이 하나 있다. 바로 작은 키의 벼. 화학비료를 잔뜩 먹고도 키가 아닌 낱알로 가게 하는 것이 통일벼 육종의 핵심이었고, 통일벼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그 유산은 다른 개량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벼는 남자 어른 허리를 넘어서는 것이 없다.


토종은 화학비료의 혜택을 못 받으니 생명활동에서 상대적으로 광합성의 역할이 커지고, 그러기에 빨리 키를 키워 햇빛을 먼저 받으려는 것이 본능이다. 다른 잡초들과의 경쟁이기도 하다.


그런데 키 큰 벼는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우리나라를 반드시 방문하는 태풍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이삭은 논물에 잠긴다. 그러면 그걸로 한 해 농사는 망가진 것이다. 농부는 어떻게든 이 벼를 살리겠다고 쓰러진 것은 묶어세워 일으키고 법석을 떨지만, 실은 벼라는 것은 이렇게 물에 이삭이 잠겨야 다음 세대의 씨앗이 순조롭게 싹을 틔운다. 그 씨앗을 사람이 독차지하고 관리하겠다고 하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자니 농사가 어려운 것이다. 어쨌거나 키가 작은 벼는 농부에게는 '좋은 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까락이 있는 벼는 '탈구'라는 작업을 거쳐 까락을 제거해야 껍질을 벗기는 탈곡이 가능하다. 이 탈구작업은 여간 손 가고 성가신 게 아니다. 까락을 털어내다 낱알도 떨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까락도 없는 벼가 농부에겐 좋은 벼다.



도정한 백미 쌀알을 봐도 그렇다. 쌀알이 제법 크고 요즘 개량종 쌀과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다.   낱알의 수는 현대의 '삼광' 품종이 이삭당 119개라니(국립 식량과학원 자료) 앉은뱅이쌀이 오히려 많다. 물론 '이삭당'이라서 이삭 수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고 아마 현대 품종이 전체 수확량은 더 많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보통의 쌀 느낌이어서 보통의 밥짓기(라고 쓰고 남들에겐 고들밥이라고 읽는다)을 해보았다. 물은 살짝 적게 잡고 돌솥에 밥짓기다.  




결과는 참으로 요즘 쌀밥 맛이라고 할까. 토종쌀을 먹기 전에 먹던 삼광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적당히 씹는 맛이 있되 찰기가 뒤지지도 않는다.  밥물을 적게 잡았어도 밝은 백색에 광택이 비친다. 은은한 단맛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현대의 개량종에 대한 앉은뱅이쌀의 장점이겠다. 어떤 이유로 '보통의 벼, 보통의 쌀' 특징을 가진 토종쌀이 필요하다면 앉은뱅이쌀이 제격이겠다.


오늘의 밥짓기는 즐거운 서프라이즈는 없지만 어디 빠지는 것도 없는, 80점의 밥이다.  


충청남도 서산시의 해미읍 주변에서 좁은 범위로 재배되던 쌀이다. 현대의 우리가 보기에 무난한 이런 쌀을 농약, 비료를 비롯한 기술이 없이 짓기는 어려웠기에 널리 퍼져나가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해미에서 나오는 요즘쌀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충남 서산이라면 아니나 다를까 '삼광'을 주로 짓는 곳이다. 다음번에 충청도 갈 기회가 있으면 필히 해미에 들러 쌀을 좀 팔아(사) 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설선물]탁월한 밥맛 (50세트 한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