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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두둑한 쌀알, 부드러운 맛 법판화(중생종메벼)

어느 절에서라도 오셨소이까?



 법판화는 이제까지 먹던 쌀과 이름이, 작명 스타일이 다르다. 대개 지명과 관련 있거나 쌀의 생김새의 특징을 잡아낸 별명 같은 이름들이 많은데 이건 법판화(法判花)라는 어딘가 추상적이면서도 시적인 이름이다.



우보농부님도 이름의 유래가 알쏭달쏭인 듯. 불교와 연관이 있어보이는 이름이긴 한데 그렇다고 어디 절에서 지었다던가 하는 기록도 없고. 쌀에 대해선 예나 지금이나 그저 상품(commodity)으로나 보지 쌀의 맛이나 생육 특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질 않다. 쌀이 근본이고 쌀이 하늘이라고,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악악 거리던 나라지만 실은 쌀을 그저 돈으로나 밥으로나 보았지. 소위 실학자들도 그저 우리동네 쌀 이름이나 좀 적어놓고 간단한 특징을 코멘트한 정도니까.


양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쌀은 개량종에 손색이 없는 생산량인 듯 하다. 쌀알의 크기도 별로 떨어지지 않고 한 이삭에 180여개라면 현대 종자 대부분보다 많은 양이다. 게다가 쌀의 키도 적당해서 잘 쓰러지지 않는다니 말이다.



쌀알이 좀 불균질한데 상당히 뚠뚠한 편이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줄무늬가 선명하다. 이 줄무늬에 가를 판(判) 한 글자가 어울리기는 한다.  배젖은 쌀눈쪽으로 치우쳐 자리잡은 것이 특징.



찰벼 특성이 있다니까 본래 내 성향으론 물 적게 잡고 돌솥이겠지만 이날은 왠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저 줄무늬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압력솥에 보통보다 물을 아주 조금만 잡고 밥짓기.  




밥은 의도대로 잘 나왔다. 윤기가 자르르르해서 사진발 잘 받는 밥.


내 취향과 조금 어긋난다한들 이런 비쥬얼의 밥이 한국인에게서 환영받지 않을 도리는 없다. 게다가 찰기가 두드러지는 쌀의 특성이라니. 토종쌀 특유의 은은하고 긴 단맛도 빠지지 않는다.


줄무늬가 모든 쌀알에 다 두드러진 것은 아니라서 숨바꼭질 하듯이 검은 줄이 드나드는 데 반해서 쌀눈은 미색으로 도드라진다. 맛도 좋지만 예쁜 밥이다. 이 쌀은 밥쌀로 활용도가 아주 좋은 쌀이고 밥짓기도 크게 어려운 것이 없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오늘의 밥짓기는 88점.  



다양한 벼를 접할수록 '관상용' 식물로서의 벼의 역할에도 주목하게 된다. 법판화는 까락이 꼭 청소년 수염 같이 듬성하고 쌀알은 익어갈수록 일부에 붉은 빛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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