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렉티브살롱 강릉 심야식당
지난 연말 연남동에서 진행한 '탁월한 밥맛' 팝업은 많은 분들이 오시고, 공감해 주셨습니다. 처음 하는 장소에서 돌발 상황도 있고 해서 정신없이 우왕좌왕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강릉에서 예행연습을 하고 간 덕에 어느 정도는 했다고 자평해 봅니다.
오늘의 심야식당 이야기는 그 '예행연습'을 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되새겨 봅니다.
모임이 생긴 동기는 앞에서도 코다리강정과 곶감 이야기를 하며 소개했던 '올나잇 강릉클럽'의 심야식당 행사입니다. 그날 요리하고 진행하는 저나 오신 분들이나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또 오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강릉에 계시는지라 강릉의 얼터렉티브 살롱에서 맛있는 것 먹고 마시는 모임을 하기로 했지요. 물론 강릉에 계시지 않은 분들도 참가해 주셨고요.
이번에도 음식은 리퀘스트를 받아서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만들어진 단톡방에 이야기가 올라옵니다. 그 중 하나는 이 파프리카 샐러드. 파프리카와 강릉지역에서 생선된 로컬 채소, 그리고 하우스메이드 청귤드레싱이 곁들여진 얼터렉티브 살롱 시그니쳐 샐러드지요. 행사때도 나갔던 것인데 기억 나신다고 다시 청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뎅탕! 겨울에는 오뎅탕이지요. 굳이 어묵탕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오뎅은 부산의 맛뜰안 어묵입니다. 저번에 썼던 동양어묵에 비해서 탄력은 좀 부족하지만 밀가루, MSG, 합성색소가 없는 어묵입니다. 감칠맛은 더 자연스럽습니다. 국물을 내는데 동봉된 액상스프를 넣을까요(오리지널한 맛을 위해서) 했더니 다들 강력 거부. ㅋㅋㅋ 기대했던 반응입니다. 어묵엔 MSG가 없다지만 오뎅국물 액상스프에는 충분한 양이 들어있지요.
째복과 파, 마늘을 넣고 어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냅니다. 합성 MSG가 없다한들 맛이 없을 순 없겠죠.
계란말이 리퀘스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치즈명란 계란말이. 그리고 하우스메이드 캐첩을 올렸습니다. 일반적인 계란말이에 비해서 감칠맛은 잔뜩 올라와있고 모짜렐라치즈가 식을 때 생기는 식감도 있습니다. 캐첩은 시판하는 것에 비해 산미가 더 있고 향신료 조합이 된 것입니다. 단맛은 적은 편이고요. 계란말이에 소금간 대신 명란이 들어갔으니 제법 호사스런 버젼입니다.
보기엔 이래도 맛은 나쁘지 않았을 해산물찜. 양배추잎을 깔고 대구, 양미리와 골뱅이, 오징어를 넣어 백찜으로 했습니다. 해물찜은요, 해산물만 싱싱하면 굳이 양념 필요 없지요. 우리의 양미리군을 중심으로 플레이팅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바스라지긴 했지만 당일 어시장에서 장 봐온 싱싱한 해산물찜은 은은한 단맛이 돕니다.
마무리는 로코코의 사과.
식사 시간 중간을 귾고 1,2,3부로 운영하는 방식이 사실 저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장소에서 소규모로 해보았는데, 협소한 곳에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서 식사 중 자리까지 옮기셔야 했는데 그래도 불평 없이 경청해 주셨습니다. 이런 경험이 서울에서 행사진행 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부는 밥맛을 먼저 보고 2부의 시작은 씨막걸리의 토종쌀 막걸리. 지난 번 모임에서 못 드셔봤던 쌀(멧돼지찰, 북흑조)로 밥도 짓고 그 쌀로 지은 술도 마셨습니다. 이런 것은 참 귀한 공부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쌀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더 좋은 밥과 술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릉에 수을향이란 곳이 있습니다. 근사한 한옥에서 요리와 술을 연구하시는 선생님께서 교육도 하시고 한옥 스테이도 하시는 곳입니다. 강릉 한주(전통주) 업계의 큰 어른이시기도 하고요. 모임에 오시는 분들 중 이 선생님 제자분이 계신데 소식 들으시곤 맛보라며 술을 세 병이나 보내주셨습니다.
석탄향도, 과하주도, 복분자주도 모두 달인의 솜씨. 다들 감탄하며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술인 청명주 18.6도 버젼도 빠질 수 없지요. 모두들 이전 모임에서부터 청명주 팬들이었기 때문에, 아직 출시되기 전의 청명주를 마시는 즐거움을 꼭 나눠드리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물론 성공적이고요.
이렇게 준비한 술을 다 마시고도 아쉬움이 남아서 또 가게의 다른 술을 몇 병 더 열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너무 취하지 않게 적당히 잘 끝냈네요.
다들 돌아가려는 때에 행복한 반전이 있었습니다. 가장 말수도 적으시고, 술도 많이 안 드시던 분이 남은 밥을 싸달라고 하십니다. 외식업을 12간지 한 바퀴 돌고 남을 정도로 했지만 '남은 밥'을 싸달라는 분은 처음이었네요. 밥이 너무 맛있어서 꼭 사가지고 가겠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제가 순간 움찔 했습니다만(그런 요청은 처음이니까요) 뭐가 어렵겠습니까. 돌솥을 달달 긁어서 마지막 한 공기 정도 남은 것을 다 싸드렸습니다.
손님들을 먼저 보내고 정리를 하는 시간, 우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습니다. 밥을 싸달라던 그 분 커플들이 강릉 시내 구경을 여기저기 하셨는지 가게 주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음쓰 버리는 그 순간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었다고 하시며 커다란 웃음으로 다시 인사를 청하십니다. 한 그릇의 밥으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요리사라는 건 정말 근사한 직업 아닙니까?
이 모임을 위해서 삼척에서, 또 서울에서 숙소까지 잡아가며 와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올해도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는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세상에도 좋은 일을 꾸미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