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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맛있는 제주산 논벼, 흑산조(黑山租)

제주에서도 논벼 농사를 지었다는 증거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흑산조는 제주산이다. 그것도 논에서 재배되는 메벼다.


제주도는 본래 밭벼가 조금 있고 논벼는 없다고 제주도 사람 여럿에게 들었다. 아마도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에는 분명히 제주도산 논벼가 나온다. 이 흑산조가 그 주인공이다.


<자료: 조선도품종일람(1911~1912)>

                                 

조선도품종일람에는 흑산도라고 표기되어있다. 분류는 확연히 논메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논메벼가 흑산도 말고도 여러 종류 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논농사를 짓기도 한다고 한다. 애초 논농사가 안 되는 것은 풍부한 물을 갈무리할만한 흙이 없는 현무암질 섬이라 그런데 분화구 지형에서는 물이 계속 솟아올라서 논농사가 가능한 곳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지형에서 예전에도 논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쌀이 최고의 작물이자 화폐 기능까지 했던 시절이라면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논이 될만한 곳은 이용했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저벼린 계단식논의 경우만 생각해봐도 말이다.


제주도에 흑산이라는 지명을 검색해보면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이것도 백년 전의 지명이라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쌀이 수집된 장소를 기록한 부록에는 흑산도가 전라남도에서도 수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정작 전라남도 시군(당시는 부군)의 재배 기록에는 흑산도 혹은 흑산조 재배 기록은 없다. 따라서 확신할 근거는 없지만, 이 쌀의 이름이 지명에서 근거했다면 흑산도(黑山島)와의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주도에서 먹은 밥들은 맛이 없었다. 가격대를 막론하고 밥은 낙제를 면하는 집도 별로 없어서, 쌀을 먹는 감수성이 없는 곳이라 그런가 했다. 그런데 이제보니 적어도 그런 편견은 배제해야겠다. 제주도 백여년 전까지만해도 훌륭한 벼농사의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 밥이 맛이 없는 데에는 상당히 일관적으로, 쌀에 찰기가 없이 푸슬거린다는 특징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생산한 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사온 쌀이고, 그 중 일부는 외국쌀일수도 있었겠다.


어쨌거나 나의 인상은 힘없고 푸슬거리는 쌀이라, 그 제주의 쌀도 왠지 그런 스타일일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압력솥에 밥을 지어보기로 한다. 물은 보통에서 살짝 적게 잡는, '나의 표준'형.




밥맛은 의외다. 찰기가 좀 떨어지는 편인 것은 맞지만 맛이 없다고 불평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좀 단단한 쌀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맞는 편. 물을 좀 더 주고 가열을 좀 더 오래 하면 보통의 쌀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찰기가 나오겠다. 반면 푸슬거리는 식감이 좋다면 이 쌀을 쓰면 확실하겠다. 볶음밥이나 국밥에 말아먹을 용도라면 상당히 훌륭할 것 같은 느낌이다.




말 나온 김에 누룽지까지 구웠는데 아주 훌륭하다. 요즘 대량생산 누룽지들은 기계에 넣어서 열을 가해서 과자같이 바싹 말려서 나온다. 그런데 누룽지야말로 겉바속촉 편차가 품질을 결정하는 음식 아닌가. 가루칩같이 몇 입 베어물면 물부터 찾게 되고 피니시도 없는 누룽지란 것은 사양이다. 차라리 무슨 쌀과자를 먹고 말지.


누룽지를 만들 때 수분을 얼마나 날리느냐가 포인트라면 애초에 좀 찰기가 없는 쌀도 매력이 있다(물론 찰밥 누룽지는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바사삭하는 표면과 쫀득한 안쪽의 대조에 굳이 설탕 같은 것 필요 없는 은은한 맛. 흑산조는 누룽지쌀로도 훌륭하다.   


 제주의 벼와 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오늘의 밥짓기는 8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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