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쌀한 향에 씹힘이 좋은 쌀
쇠벤치기는 베일에 싸인 쌀이다. 국립유전자원연구소에 토종벼 자원으로 등록이 되어있으나 '조선도품종일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어찌 국립유전자원연구소에는 종자가 보존되어 있으니 조선도품종일람에 기록된 1451종보다 훨씬 많은 토종쌀이 존재했었음을 알려주는 방증이다.
쇠벤치기는 이리저리 풀어보아도 '소똥친' 쌀이라는 이름인 것 같다. 먹을 식량으로는 이름이 흉측하다. 소똥을 퍼서 논거름으로 사용한 것이 이름의 유래가 되기엔 어디 그 시절에 안 그런 벼가 있었나싶고, 포장지의 사진을 봐도 딱히 소똥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국립유전자원연구소의 자료를 뒤지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여러 시험장(각 대학, 농업시험장, 국립농업과학원) 등에서 시험재배한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시기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시비여부나 양 등에 대한 기록은 없어서 단순비교가 불가하지만, 같은 종의 벼도 참 다양하게 발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쇠벤치기는 현미를 확대해보면 좀 소똥같은 느낌이 들까 어떨까... 이름의 선입견을 지우고 보면 상당히 튼실하고 투명한 쌀알이다.
쌀 씻는 단계에서부터 특이점이 있다. 첫물에도 맑은물이 나올 정도다. 현미가 백미보다 뜨믈이 잘 안 나오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어쩌면 세미하기 편해서 술쌀로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게으름뱅이 ㅋㅋ.
맑은물이나마 다 같은 방식으로 세 번 씼어 밥을 올린다. 뭔가 호분층이 두터울 것 같은 느낌이라 물은 제법 넉넉히 잡고 압력솥에 짓는다.
밥을 지을 때의 향도, 생쌀 상태의 쌉쌀한 향이 오래도 이어진다. 보통은 이 쌉쌀한 향이 내려가고 단백질향이 올라올 때 불을 줄이는데 쇠벤치기쌀의 경우는 기다리다 밥 탈까 싶어 쌉쌀한 그대로 불을 줄인다.
밥짓는 시간은 다른 쌀과 비슷하게 했는데 끝까지도 쌉쌀한 향이 약간은 남아있다.
현미 특징이긴 하지만 특히나 쌀눈이 박력있게 크다. 그래서 밥 씹을 때 재미있는 식감이 생긴다. 쌀눈이 입안에서 놀면 뭔가 건강해지는 느낌은 그냥 느낌이겠지만, 이 식감은 정말 활용할 여지가 많은 특징이다.
밥맛은 고소하고 메벼지만 어느 정도의 찰기는 있는 편이다. 백미로 가공해도 이런 특징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먹어본 현미밥 중에선 정말 맛있다 싶은 느낌. 하지만 향이라는 면에선 아까의 씁쓸한 향도 밥을 공기에 덜어내고 난 시점에는 다 사라지고 특별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토종쌀 밥짓기를 어느 정도 하다보니 그냥 밥만 아니고 여러가지 응용을 하게 된다. 이건 누룽지 끓여서 먹은 것인데,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끓여도 살아있는 그 식감만은 만족스러웠다. 사실 숭늉이나 이런 것 별로 안 찾는 편인데 굳이 해먹겠다면 앞으론 현미누룽지에다가 해야겠다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