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한마리 파티
아버지 지인분 중에선 해마다 홍어 한마리를 통으로 보내주시는 분이 계시다. 아버지뿐 아니라 집안을 통털어 홍어에 홀릭한 사람은 없고, 그나마 나는 요리가 업이고 모임을 많이 하니 이 홍어 한 마리 중 상당부분은 나에게 맡겨져 집밖으로 반출된다.
동거인께서 홍어를 사랑하시니 가져다가 한마리 코스를 해본다.
이것은 홍어애. 푸아그라 못지 않다.
홍어꼬리. 가시가 있어서 그냥 먹긴 좀 그렇지만 먹자면 다 방법은 있다.
홍어애가 푸아그라 같다고 했으니 푸아그라 비슷하게 요리해본다. 기름과 술로 익힌다. 술은 향기로운 청주. 약간의 후추 소금간.
그리곤 밑에는 토마토소스와 영양부추.
이것은 된장과 호박, 마늘, 대파 넣고 끓인 홍어애탕. 비교적 클래식한 한식 스타일로도 해봤다.
홍어애는 너무 푹 익히면 크리미한 질감이 퍼석으로 가니까 잘 익히는 게 중요하다. 겉은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났지만 안은 핑크가 보이게, 바로 요렇게 말이다.
토마토소스의 감칠맛과 홍어애의 크리미함이 잘 어울리고 사각하게 씹히는 영양부추의 식감과 신선한 향도 좋다. 잘 했네.
이 부분이 생선으로 따지면 필렛 부분. 가슴에서 날개 중간살까지다.
이빨과 아가미 부분은 그냥 먹기 어렵다.
굳이 먹자면 방법이 있긴 한데...
일단 필렛 일부는 삭히려고 저장.
일부는 신선하게 회로 먹는다. 아직 암모니아가 충분히 올라온 상태가 아니다.
요것은 수육이다. 뜨거운 물에 좀 삶아서 내면 되는 간단한 방법.
꼬리나 머리 부분 같은 경우 살이 적고 가시나 뼈가 걸려서 먹기 힘드니까 수육 삶을 때 같이 삶는다.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이렇게 묵같은 상태가 된다. 홍어테린이라고 해도 좋겠고, 홍어 머릿고기 편육이래도 무방할 요리다. 이건 어디서 본 적은 없네. 홍어 삭은향이 생생한 상태로 삶으면 홍어 마니아로선 퍽이나 만족스런 요리.
보존성이 높아서 냉장고 안에선 몇 달이라도 보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고, 가열하면 이 콜라겐질이 다 녹아서 국물도 된다.
홍어 무침도 빠질 순 없겠지. 이건 식초를 잘 쓰면 대략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
이러곤 남은 필렛을 볏짚에 삭혀서 먹었는데 홍어 맛의 새로운 경지를 보았다. 그건 따로 포스팅.
홍어는 그냥 있으면 먹고, 전라도 가서 오센틱 버젼 먹자면 좀 괴롭다고 느끼고 하는 정도다. 막걸리 벌컥벌켝 들이켜 가면서 밀어넣는 수준. 이날은 비교적 신선한 홍어를 직접 여러가지로 요리해서 먹으니 재미도 있고, 맛도 있고.
나중에 대화하다가 발견하게 된 것인데, 생 서울 출신들인 내 친구놈들도, 경상도 토박이 지인도 살면서 어찌어찌 홍어 취향을 발전시켜서 홍어 모임 한 번 하자고 조르더란 말이지. 중독성 강한 홍어, 알고보면 나도 처음부터 좋다고 먹은 건 아니었으니까.
#홍어 #심야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