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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왜 위험천만한 선원이 되려고 하는가

페드로의 꿈과 좌절의 이야기

달이 시리도록 밝은 밤이다. 세인트주드호는 마치 바다의 신이 조심스레 뒷바람이라도 불어주는 듯 부드러운 순풍을 타고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제 난바다의 제법 거치 파도도 익숙해져서 이런 조용한 바다에서는 술에 취하더라도 비틀거리지 않을 것같다.

술. 럼주를 철철 넘치도록 한 잔씩 따라서 단숨에 넘기고는 물었다.


“그래, 무슨 사연이 있길래 프랑스에 그렇게 이를 가나?”


페드로는 낮보다는 조금은 진정이 된 듯했다. 입가에 도는 쓴웃음은 술이 써서는 아닐 것이다. 달디단 사탕수수로 만든 술이 럼주니까.


“첫째 알아야 할 건 나나 다른 제대로 된 스페인 보물선단이 프랑스 버커니어 (Bacaneer)들 따위에게 약탈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거야. 연안무역을 하는 작은 배들이라면 모를까, 보물선단은 십여 척의 잘 무장된 대형선단이라고. 기껏 슬루프나 프리깃 정도가 대포를 쏴봐야 거북이 등이 고등어 이빨에 긁힌 정도지. 기어오르려고 해도 배의 높이차가 하도 커서 공성전 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구. 기어올랐다손 치더라도 스페인 왕국의 정예병과 막되먹은 해적들이 상대가 될 것 같나?”

“흠, 그래 너 같은 막 배운 스페인 요리사가 나 같은 프랑스 궁정요리사를 평생 깨어나도 따라잡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겠지. 아주 쉽게 이해가 간다. 프랑스 해적에게 털린 것도 아니라니, 그럼 왜 그렇게 프랑스에 이를 박박 가는 거냐?”


나도 페드로에게는 한 마디씩 꼭꼭 가시를 박아주는 버릇이 들었다. 베르사이유의 궁정인이라면 모름지기 웃는 낯으로 사람을 파들파들 떨게할 정도의 모욕도 줄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주먹싸움만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요리 말고 할 줄 아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말이지. 그게 좀 과해서 이 꼴이 된 것 같긴 했지만. 


“선단은 약탈당한 게 아니라 난파당한 거였어. 아바나(Havana))항을 출항해서 얼마 안 되서 큰 허리케인을 만난 거지. 허리케인이 다가오는 걸 느꼈을 때 귀항하려고 했지만 워낙에 몇십 년만에 오는 큰 허리케인이었다. 배를 돌리고 어쩌고 할 세도 없이  전부 집채만한 파도에 날려서  플로리다 만의 산호초로 밀려나 좌초를 한 거다. 아니, 집채만한 파도라는 말을 습관처럼들 쓰는데, 집채가 아니라 마드리드 성벽같은 높은 파도였다. 그런 파도가 이 세인트주드호의 두 배쯤이나 되는 배들을 말 그대로 산호초에다 내동댕이 쳐버린 거다.”

“그래 큰 풍랑을 만난 거구나. 이제 묻기도 질린다만, 그렇다면 왜 그렇게 프랑스 사람을 미워하는 거냐? 차라리 하느님을 미워해야지.”


신성모독스러운 소리를 했지만 페드로도 개의치 않았다. 프랑스도 스페인도 독실한 카톨릭 국가지만 배타는 놈들의 신앙심이란 허리케인이나 만나야 발동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게 우리의 조심스러운 제독님이 한 줌도 안 되는 프랑스 버커니어들이 선단을 노린다는 소식에 야간출항을 감행한 덕이라는 거 아니냐. 그것도 13일의 금요일 밤에 말이다. 밤이다보니 허리캐인이 다가오는 걸 감지하는 게 늦었거든. 예수님의 노여움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 애초에 상대도 안 되는 놈들에 조심할 필요도 없었을 건데. 기껏 소형 보급선 한두 척이나 털어갈 수 있을 실력일까.”


페드로는 스스로가 결정을 내리기라도 했다는 듯, 한숨속에 말을 뱉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헨리 에이브리 선장같은 사람은 소수의 배로 무굴제국의 대선단을 공략했다던데, 승산이 적더라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 조심스러운 것도 이해가 간다."

"프랑스놈들은 다들 겁쟁이니까 서로 이해가 가겠지. 헨리 에이브리 선장은 초탄이 우연히 적 기함의 화약고에 명중헤서 대폭발이 일어난 덧에 이긴 거다. 그 후에도 실은 아직 싸워볼만 했는데도 꼬리를 내린 인디아 황제의 한심한 병사들 덕이기도 하고. 400명이나 되는 소총수가 총 한 번 쏴보지 못하고 항복했다니 말 다한 거지. 그런 럭키샷이 또 나온다면 그거야말로 예수님의 벌이라고 해도 좋을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네가 이를 가는 건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직접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프랑스인들만 그 배를 노린 것도 아닐 것 아니냐? 13일의 금요일 항해에 대한 예수님의 벌이라고 생각한다면 진짜 예수님을 원망해야 하는 것 아니냐?”


페드로는 여기서 허탈한 숨을 뱉었다. 아까보다도 더 길게. 


“뱃놈들 중에 진짜로 하나님 말씀 두려워하는 녀석들도 별로 없긴 하지만 너같이 돼먹지 않은 소리를 마음껏 내뱉는 놈도 처음이다. 너 혹시 위그노냐?“


페드로가 혹시 신교도는 아니냐고 물었다. 신교도도 하나님 예수님 믿기는 마찮가지인데, 무슨 사탄의 후예나 되는 듯이 취급하는 것이 카톨릭 신자들이기는 하다. 나로서는 같은 신을 모신다면서 서로 죽이고 빼앗고 하는 꼴에 신물이 나서, 신 같은 것은 안 믿고 살기로 했지만. 


“아냐, 나는 신의 이름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싫고, 전지전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인간들을 허용하는 신도 싫어서 내 한몸 믿고 살기로 한 것 뿐이다. 편가르기는 사양이야.”


스페인 본국이나 교황령 같은 곳에서라면 무신론을 자인하는 것만으로도 종교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이 상당하지만 시원하게 뱉어버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뱃사람의 자유다. 어차피 위그노든 무슬림이든 배 위에선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한사람 몫을 하는 뱃사람이기만 하면.


달빛을 반사해 이글거리는 눈에 잠시 슬픔이 깃들다가 다시 분노가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페드로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배를 타서 나이에 비해서 제법 인정을 받는 뱃사람이었다. 그래서 스므살이 갓 넘은 나이에 태평양을 횡단하는 마닐라 겔리온에 타기도 했고 말이야. 카디즈에서 아메리카를 커쳐 태평양을 왕복하고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꼬박 3년이 걸린 여정이었지. 그 3년의 노고가 단 번의 폭풍으로 날아가 버린 거야.”


콜드웰 선장도 말했지만 ‘보물선단’의 일원이 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대양 무역에 참여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보물선단의 선원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보물선단의 선원으로 뽑힌 것은 페드로의 선원으로서의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나 큰 배들을 그렇게 쉽게 난파시킬 정도의 태풍이 다 있구나.”


말을 하다보니 이제야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보물선단이 난파당해서 엄청난 보물이 바다에 묻혔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스페인해군과 카리브해의 모든 해적들이 각축한다는 이야기도.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바다와 관련된 일이 없는 나로서는 별 상관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흘려듣긴 했지만. 거칠기로 소문난 카리브해에서 난파한 배가 한두 척이겠나.


“페드로, 그래도 목숨은 건졌잖나. 나이도 아직 젊었겠다. 스믈 몇살이라는 건 고생도 약이 되는 나이다.”


마음으론 동정심이 일었지만 말은 짐짓 꼰대스럽게 나간다. 이게 베르사이유의 궁정과 바다의 차이다. 여기서 예의바른 말로 위로를 하거나 해봐야 결코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한다. 잘 해주면 기어오르는 녀석들이란 얘기다. 파리의 밑바닥이나 여기나 이런 녀석들은 힘으로 다뤄야만 한다. 더구나 울보 겁쟁이의 요리사 정도 캐릭터로 인식이 되고있는 지금은.


“3년간의 급료도 한 푼 받지 못했다. 약속받은 보너스는 말할 것도 없지. 나는 바다가 좋아서 떠도는 치들과는 달라. 우리집도 원래 소를 치고 농사를 짓는 집이고, 나도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지주가 되어서 시뇨르(Signor)로 살고 싶었단 말이다.”

“하지만 3년 동안이나 급료를 못 받았단 말이냐? 마지막 여정이야 배가 난파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니 배를 몇 번이나 바꿔탔을 여정인데 급료를 안 주는 배를 계속 탔단 말이야? 마닐라겔리온이 아메리카에 입항했을 때는 보너스도 두둑이 받았을 것 같은데?”


페드로의 눈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물정 모르는 소리 좀 그만 하라고. 사람들이 뱃사람이 되기 싫어하는 이유는 위험하고 고되서만이 아니야. 실은 그런 것쯤 무릅쓰고라도 한 몫을 잡기 위해서라면 배를 타겠다는 인간들은 얼마든 있어. 약속만 지켜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페드로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을 지키는 선주나 선장이 흔한줄 아나? 열에 서넛도 안 될거다. 그나마도 약속을 안 지키면 배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일 때나 지키는 것이 약속이라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급료를 주지 않기 위해 술을 먹여 떨어지게 한 후에 다른 배로 팔아버리기도 한다고.”


팔아버린다니. 이건 선원들을 노예 취급하는 거나 똑같지 않나? 하지만 무역이 붐을 일으키는 이 시대에 뱃사람들에 대한 수요가 높다보니 그런 일은 비일비재한 모양이었다. 하물며 해군도 이런 식으로 납치된 선원들을 강제로 종군시켜 수병을 충원한다고까지 하니까.


“아니 더 이상하다. 우연이 아니라 선주와 선장들이 대부분 그렇다면 왜 배를 타고 멀리까지, 목숨을 걸고 나가는 거지?”

“그야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그리고 말했듯 항해를 통해서 부자가 된 소수의 사람들도 있거든. 육지에 남아 농사를 짓거나 도시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한다고 해서 인생에 무슨 낙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쪽을 택하는 것뿐이지. 어찌보면 요행을 바라는 거야. 배에 투자를 하거나 선장이 되면 모를까, 항해사들 정도가 되도 밥이나 먹고 사는 정도다. 간부선원들도 급료와 보너스를 꼬박꼬박 받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


모를 일이다. 배의 일은 힘들고 식사도 형편없다. 게다가 폭풍이며 해적이며 전염병이며, 목숨 걸 일은 거의 매일같이 벌어지는데 이런 사람들이 돈도 못 받고 일하고 있다니,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일을 그만두면 되잖아. 아니 그만둬야지. 급료도 제대로 못 받고 이렇게 고되고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바보짓 아니냐."


이건 빈정거림이 아니라 진심이다. 그런 바보짓을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일단 선원의 급료는 분명히 많다.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뱃사람이라면 일반적인 도시노동자의 두 배쯤은 되지. 게다가 숙식은 형편없으나마 무료제공이야. 그러니 푼돈 벌어서 집세 내고 빵사면 끝나는 육지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지. 급료만 잘 모아도 20년쯤 배를 타면 꼭 보물선이 아니어도 작은 땅을 사거나 항구에 여관 하나는 낼 수 있어. 계산대로라면 말이지.”

“하지만 그런 사람은 나도 많이 못 본 것 같다. 워낙 번대로 술을 마시고 여자한테 써버리고 하는 게 문제는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 뱃놈들이란 대개 한창때의 사내들이고 즐기는 것은 항구에 있을 때뿐. 아는 놀이라고는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는 것뿐이니까. 그나마도 항구의 술집주인들이 나쁜 버릇을 들인 것을 그대로 따라하게 되는 거지만.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급료는 항해가 끝나고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지불되는 것이 원칙이야.”

“일면 이해는 가기도 한다. 배가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면 선주도 큰 손해니까, 급료까지 지불하는 것은 부담이 너무 크겠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요즘 보험 없이 대양항해를 다니는 배가 어디있다고. 게다가 저들은 기껏 재산상의 손해지만 우리는 잘못되면 목숨이 날아간단 말이다. 그러면 가장만 보고 기다리는 가족들은 또 어쩌란 말이냐? 빼뺑. 니가 무슨 선주냐? 나으리들 모시고 왕궁에서 일했다더니 궁전의 개가 제가 왕이라도 된 기분인 모양이구나.”


그것참 매서운 말이다. 일부러라도 강하게 말하던 나도 이런 비아냥에는 할말을 잃었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선주 입장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피해당사자 앞에서는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몇 번 배를 바꿔타는 동안 한 선장 밑에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급료를 나중에 받는다고 해도 계속 했던 거야. 나중에 주는 대신 보너스를 두둑이 챙겨주기로 했거든. 나 같은 경우는 육지에 부양할 가족을 두고 온 것도 아니라 당장 현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네 말 맞다나 술과 여자에 낭비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 지금 생각하니 그 프랑스인 선장놈이 순진하고 어린 나를 등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해. 내가 프랑스인을 미워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놈 때문이다.”


거기까지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그렇다. 필시 그 선장은 애초에 제대로 돈을 줄 생각이 없었을 거다. 아니, 혹시 처음에는 돈을 주려고 했다가도 감언이설로 꼬여보니 넘어간 걸 보고 계속 속여넘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기란 것이 원래 걸려드는 사람에게 계속 쳐대는 것이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 돈을 낭비할까봐 급여수령을 유보했다니, 생각보다 건실한 사고방식을 가졌었군. 지금도 그런지는 몰라도. 


“십여 척의 배에 가득 실린 금화, 은화에 중국에서 들여온 비단과 도자기, 파나마의 진주, 쿠바산의 최고급 담배 같은 것을 내 손으로 직접 선창에 실었다. 항해만 끝나면 한 몫은 분명히 쥐었을 거야. 지금 영국돈으로 따져서 수백 파운드는 무조건 넘었을 돈이다.” 

“그건 정말 엄청난 돈이구나. 이 배의 1등 항해사가 1년에 50파운드나 받으려나.”

“그것도 지금은 물가며 급료가 많이 오른 거라 그렇지. 그 당시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부농으로 살고 참한 아가씨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돈이었어. 아니면 쿠바 같은 곳에서 사탕수수 농장을 100에이커쯤 사고 노예를 20명쯤 살 수도 있는 돈이지. 그런 정도 농장이면 신경쓸 일이 좀 많아서 그렇지 잘만 하면 일년에 1천파운드 정도 수익은 낼 수 있다. 그게 한 순간에 날아간 거라고.”

“유감이다 페드로.”


나는 빈정거림 없이, 진심으로 말하며 페드로의 술잔을 다시 채워 주었다. 한 남자의 피땀어린 꿈이 단번에 꺾여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페드로는 또 한 잔을 단숨에 넘겼다.


“그런걸 이제까지 아까와하는 건 아니야. 선단의 제독까지도 목숨을 잃었을 정도의 대참사에서 살아남은 것만도 어찌보면 다행이랄지.”

“그래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아직 젊은 나이 아니냐. 기회는 또 있을 거다.”

“인생에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말처럼 젊은 나이도 아니고···”

“페드로, 너에겐 요리에 재능이 있다. 내가 항해동안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다 가르쳐줄 테니 배워보도록 해라. 귀족집안에 추천해줄 수도 있어. 공작이나 백작님 집안의 주방장이 되면 항해사 못지 않게 급여도 높다. 갑자기 나으리가 역적으로 몰리거나 하지 않는 한 급여를 떼이는 일도 없을 거니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노인이 될 때쯤엔 원하는 나으리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다. 귀족집엔 예쁜 아가씨들도 많으니 결혼할 기회도 있을 거야.”


페드로가 처음보다 더 쓴웃음을 지으며 자조했다.


“말은 고맙다. 나란 놈에게 그런 복이 있을까. 이제는 사는 게 뭔가 싶은 정도로 그런 욕심도 없는 것 같고.”

“···..”

“하지만 정말 고맙긴 하다. 뻬뺑.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천만에.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야기 하자꾸나. 어차피 나도 네 얘기 들을 날이 기껏 몇 달이니.”

“말이 많은 사내는 믿을 게 못 되는 법이다. 이제 자라. 오늘도 선원들 밥 먹여야지.”


엄청나게 옳은 말이기는 했지만 페드로고 누구고 선원중에 술을 마다하는 녀석은 없다. 오죽하면 수십 미터 높이의 마스트에 올라가서 돛을 접는 일도 술에 절은 채로 하는 것이 보통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페드로는 말을 마치자 정말로 몸을 일으켜 제 자리로 기어올라갔다. 


고주망태가 되어 뻗거나 선장의 호령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술자리를 떠나는 선원은 나로서는 페드로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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