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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스페인 왕위계승전쟁과 대해적의 시대

진짜 해적왕은 국왕들!

콜드웰 선장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온갖 위험과 처벌에도 해적들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이해가 간다. 해적질을 유일한 신분상승의 기회로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탕 크게 해서 조용히 고국에 돌아와서는 땅이라도 사서 가족들과 안정되게 살고 싶다는 게 대부분 해적들의 소망이고 실제로 이런 사람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 하층민 출신의 일반 선원들뿐 아니라 작은 배의 선장이나 식민지의 지도층 계급의 사람들 중에서도 신분상승을 위해서 해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니, 면허장을 주고 해적질을 용인한다는 왕실과 국가가 알고보면 해적의 총두목이라고 할 수 있다.

 

뒷전에서 해적판을 벌려둔 그런 총두목급들은 논외로 하고, 실제 바다에서 활동하는 개미같은 해적들은 요행 크게 한 탕을 하더라도 법망에 걸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갑자기 큰 돈을 들고 나타나 땅을 산다거나 혹은 거액의 보석이나 스페인 금화를 환전한다거나 하면 사람들의 주목이 쏠리게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조용히 넘어가기가 힘들다. 


혹은 술김에 해적질한 무용담을 떠들다가 신고를 당해 교수대로 간 경우도 적지 않다. 헨리 에이브리 선장의 부하들 중 잉글랜드로 돌아간 사람들 대부분이 걸어간 일이다. 이러다보니 다른 배를 약탈하는 것은 국가 간의 전쟁시에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는 경우에라도 건실한 상선들은 꺼리는 일이다.

 

그래도 신분을 바꿀 정도의 돈을 벌자면 역시 해적질만한 것은 땅 위에도, 물 밑에도, 하늘 넘어에도 없는 일이다보니 해적은 절대 없어지지 않았다.


“요즘은 여러가지 이유로 해적이라는 것이 그래도 많이 줄어들었지요. 그리고 이 세인트주드호 정도의 배라면 어지간한 해적선은 걱정 안 해도 되요. 무장으로 보나, 속도로 보나, 선원의 숫자로 보나, 기껏 슬루프(Sloop) 두어 척으로 덤비기에는 말이 안 되는 건 대서양 건너가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알거요.”


해적을 만나면 명예회복을 할 기회라고 신이 났었는데, 실은 배를 타기 전에는 해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늘 있었다. 대화 중에 그런 두려움이 비친 모양인지 콜드웰 선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장담을 했다. 선장의 태도를 보니 해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많이 해소가 되었지만 그대신 호기심이 자꾸만 솟아올랐다. 

이런 호기심은 선장이 아닌 다른 선원들과의 대화에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식사준비를 위해 페드로와 감자껍질을 벗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이다. 

베르사이유에서라면 주방장이 직접 감자껍질을 벗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여기 배에서는 주방은 최소한의 인원과 자원을 배치하는 곳이다. 상선이란 사람 하나 줄여서 짐을 싣고, 급료며 식비를 아끼는 것이 돈을 버는 길이니까. 그리고 나는 요리 자체를 좋아해서 재료 손질하는 것도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편이다. 


좋은 요리사는 요리보단 재료에 가까와야 한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각설하고, 내가 갑자기 물어보았다.


“페드로, 해적을 만나본 적이 있나?”


페드로가 잠시 칼질을 멈추고 어이없다는 듯이 날 쳐다보았다. 원래 세인트주드호의 주방장 신분에서 조수로 강등이 되고 난 지라 나에게는 뭘 해도 고분고분하지는 않지만, 그런것 치고도 꽤나 도발적으로 나를 노려본다.


“이거 보쇼, 내가 배를 몇 년이나 탔을 것 같소?”

“글쎄··· 열 몇살부터 탔다면 20년은 넘었을 것으로 보이네만···”


뱃사람이든 주방일꾼이든 거친 사나이의 세계다. 나로서는 객식구로 끼어든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 페드로를 언젠가는 한 번 기를 눌러 줘야할 필요를 느끼기도 했다. 주방에 질서가 없으면 사고 나기 십상이다.


“그 긴 시간동안 대서양은 몇 번이나 건넜는지 세지도 못하겠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마다가스카르를 거쳐 인도까지도 가봤고 태평양을 넘어 마카오며 필리핀도 다녀왔지. 그런데 해적을 만난 적이 있냐고? 나 원 참.”


페드로의 태도를 보니 이건 경력 20년이 요리사에게 


‘그런데 요리하다가 불에 데 본적은 있소?’ 


뭐 그런 질문을 한 것과 같은 모양이다. 그래도 말투를 좀 거칠게 해서 맞받아봤다.


“만나봤다는 얘기군. 용케도 살아남았네, 그런 밉상스런 상판으로도.”

“어이구, 내 당신 같은 프랑스놈들만 봐도 이가 갈리는데 뭐?”


이제 대놓고 시빗조로 나온다. 파리 빈민가에서 밥은 못 먹어도 싸움은 하면서 자란 나라 피할 생각도 없었지만 선장에게 부담이 갈까 싶어 굳이 선원들끼리 시비붙는 것만은 열심히도 자제하고 있다. 특히 페드로에게는. 배알이 꼴리는 심정도 이해가 가고, 매일 얼굴 맞대고 같이 일해야 하는 사이니까 설건드려서는 서로 어색해서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이 녀석 지금은 선을 확실히 넘어오는데? 도발인건가?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왜 이렇게 세게 나와?


갑자기 이 타이밍에서 이러는 이유는 진짜 모르겠다. 에라, 이참에 진짜 제대로 밟아주고 나도 바다사나이들에게 권위를 좀 세워볼까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역시 참기로 했다. 늘 얘기하지만 싸움은 주먹으로 하는 게 아니고 전략으로 하는 거다. 이렇게 우발적으로 싸움질을 하면 득실 계산도 안 된다.


그리고 역시 선장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배 위의 선장이란 절대권력자지만 그것도 선원들이 복종을 할 때 이야기다. 여러가지 이유로 선상반란이 일어나 갑판에서 뛰어내리거나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선장들의 이야기는 나도 많이 들었다. 콜드웰 선장의 권위야 의심할 필요도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굳이 싸움을 벌인다면 다른 선원들은 굴러온 돌이 선장의 총애를 믿고 박힌 돌을 빼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부담을 지울 생각까진 없어서 슬쩍 한 발을 뺐다. 


내가 힘이 세서 싸움을 잘 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 저런 것 살펴가며 싸움을 하니 항상 이길 수 있었던 거다.


그 대신 서로 철군, 내지는 휴전을 제시해본다.


“프랑스 해적에게 털리기라도 했나? 그래, 프랑스 사람에게 패배한 스페인인이 자네 혼자만은 아니니까 너무 분해하지는 말라고. 그래도 프랑스인이니까 목숨이라도 살려뒀지 영국 녀석들이었으면 어땠겠어?”


비아냥은 살리면서도 마무리는 공통의 적인 영국을 향하자 이녀석도 슬쩍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나 바다에서는 영국을 만나면 기를 못 편 지가 어언 수십년이 넘었다. 그러다보니 육지에서의 전쟁도 점점 영국에 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었던 것 같다. 


본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 카를로스2세가 죽고나서 프랑스 부르봉 왕가 출신의 펠리페 5세(루이 14세의 손자)가 스페인왕위를 계승할 상황이 되자 신성로마제국, 영국, 네덜란드 등이 한 편이 되고 프랑스와 스페인이 한 편이 되어 싸운 전쟁이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곳곳에서뿐 아니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도 여러 나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을 벌였으니 말이다. 


엄청난 인명과 재화를 상실해가며 무려 13년간을 끈 전쟁은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여러 나라들이 조약을 맺음으로 종결되었다. 일단 부르봉 왕가가 뜻한대로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위는 차지했다. 이렇게 보면 스페인-프랑스측의 승리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제시된 것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선 펠리페 5세를 비롯해서 부르봉왕가의 후손 누구도 스페인과 프랑스 왕국의 왕위를 동시에 차지하거나 두 왕국을 통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프랑스와 스페인을 합병해서 세계 최강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던 전쟁인데 그것이 좌절된 것이다. 이것이야 뭐, 가지고 있던 것을 잃은 것은 아니라 치자. 


하지만 유럽 내 스페인 영토의 상당부분이 다른 나라에 양도된 것은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였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요지인 지브롤터와 마요르카가 영국에, 시칠리아와 밀라노 공국의 일부는 사보이 공국에, 사르데냐, 나폴리 왕국, 밀라노 공국의 남은 일부와 스페인령 네덜란드 등을 신성로마제국, 그러니까 오스트리아에 빼앗겼다. 아메리카에서 초기부터 스페인의 식민지 경쟁자였던 포르투갈도 남북 아메리카의 여러 곳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영국편에서 싸운 덕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노예무역권과 이로코이 인디언을 비롯한 아메리카 인디언과의 무역권한을 영국에 빼앗겨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스페인이 가장 큰 패배자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뉴펀들랜드와 아카디아를 비롯한 아메리카 북동부의 프랑스 영토를 거의 전부 영국에 넘겼다. 이것으로 모피무역을 잃어서 귀부인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던 것과 주방에 들어오는 말린 대구의 가격이 폭등했던 것은 내 기억에도 생생하다. 


그래도 당장 눈에 안 보이는 미개척의 해외영토가 대부분이라서 일반적으로는 크게 고통을 느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라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달랑 스페인 왕위계승권 하나만 얻고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상처뿐인 영광의 전쟁이 되었다. 


그렇다고 스페인 왕위의 원래 주인인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전쟁을 이겼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스페인 왕국 중 일부를 양도받고 나머지는 다 주어버린 상황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스페인 왕위를 다시 차지해서 대서양에서 동유럽까지를 아우르는 강력한 제국을 재건한다는 목표가 좌절로 돌아갔다. 


가장 실속을 차린 것은 무엇보다도 영국이었다. 엄청난 해외영토를 획득해서 대영제국의 영토는 단숨에 두 배로 불어났다. 물론 대부분은 미개척지의, 이름뿐인 영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브롤터와 마요르카의 요충지를 차지한 것과 노예무역권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은 것은 누가 보아도 확실한 성과라고 할 것이다. 


네덜란드도 명목상 합스부르크왕국의 소유로 남았다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염원해온 독립을 실질적으로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는 프랑스가 스페인과 통합하여 1강으로 세계제패를 꿈꾸던 상황에서 전쟁에 패하면서 열강들의 어정쩡한 세력균형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원래 유럽에서 가장 큰 세력이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들이 원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애초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두 강력한 왕국이 연합하면 유럽의 세력균형이 무너질 것을 염려한 영국이 주동해서 일으킨 전쟁이었다. 영국으로서는 ‘세력균형’이 최고의 목표이자 승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 모두가 유럽의 주도권을 잡는 것을 저지했고 결과적으로 영국이 유럽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이때부터 하늘을 찌르던 루이 14세 폐하의 위세도, 프랑스의 국위도 해가 중천에서 기울듯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때는 나도 얼추 궁정인이 되었을 때라 궁정의 분위기나 국민들의 낙심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특히나 해군은 피해가 커서, 지중해와 프랑스 연안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이 때부터 영국 해군이 대서양, 아니 세계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략함대란 바로 이렇게 해군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맞서기 위한 정책이기도 했다. 


물론 이 때가 사략함대의 시작도 아니었고, 사략선을 가장 잘 운영한 것은 역시 섬나라 영국이었다. 정규군의 군비경쟁에서 밀린 프랑스가 사략선을 지원하면서 서로서로 민간 군비경쟁, 다시 말해 사략선단 늘리기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사략선이 교전중이 아닌 국가나 심지어 자국 배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해적으로 변신하는 것은 선 하나 넘는 문제였다. 카리브해 전체에 영국 군함이라고는 순찰선 정도 기능의 HMS 스카보로 (HMS Scaborough) 단 한 척만 배치된 시절도 있었고, 프랑스의 경우는 아예 상주하는 군함이 없을 때도 있었으니 해적들로서는 얼마나 살판이 났을 것인가. 카리비안 해적의 시대는 스페인왕위계승전쟁의 직접적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스페인과 프랑스는 서로 다투다가도 영국 이야기만 나오면 공통의 적에게 갖는 일치된 적개심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 마음에 안 드는 영국 배에서 일하고 있는 것, 그 와중에도 콜드웰 선장에 대해서는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까지도 같은 처지다.


“흥. 물론 영국놈들이 몇 배나 악랄한 건 사실이지. 그래도 내 인생의 원수, 그 해적보다 비열한 프랑스놈만 아니면 지금쯤은 뱃놈 생활은 정리하고 본국이나 아메리카 어딘가에서나 어엿한 나으리 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 때 내가 타고 있던 보물선단만 무사히 돌아왔더라도···.”

“흐흐, 그때 그랬기만 했더라도 같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소리야 해서 뭐 하나. 그래도 궁금하구나. 페드로, 오늘 밤엔 옛날 이야기라도 하며 둘이 마셔볼까?”

“좋지, 일단 배 식구들 밥부터 먹이고 보자고.”


배를 탄 이래로 술이라면 사양하는 사람을 못 보았다. 우리는 빨리 술을 마시려면 그래야 한다는 듯이 잡담을 멈추고 열심히 손을 놀렸다. 50명이 넘는 선원들의 식사는 금방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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