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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재회! 베르사이유의 붉은 장미

어학천재 마리,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실까요?

베르사이유의 붉은 장미 아가씨가 도착하는 것을 나는 침실 창을 통해 멀리서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언덕길을 올라오는 마드무아젤은 몇 년 전 베르사이유에서의 화려한 붉은 공단드레스의 인상은 간데없고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수수하기 그지없는 차림이었다. 날씬한 실루엣에 환한 금발의 머리를 뒤로 묶고 보기에도 산뜻한 걸음걸이로 금방 언덕길을 올라왔다. 


열린 대문을 통과해 현관문 앞에 섰을 때쯤에 장미 아가씨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파올로의 유창한 프랑스어 인사에 그녀가 놀랐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확인도 안 할 실없는 장난이었다. 


서재로 안내된 그녀는 갑자기 어두운 서재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조명 아래에 있는 그 문서에 주의를 집중했다. 인디애나 존스가 마지막 비밀의 제단에 다가섰을 때처럼 핀조명이 문서를 비추게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설계다.


그녀는 금세 그 문서를 알아보았다. 표정에서 기쁨이 읽힌다.


그리고 확실히,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덕분에 한구석 책상에서 불을 끄고 어둠에 조용히 묻혀앉은 나는 눈에 띄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짖궂은 장난을 쳐볼 단계다.


“봉쥬르 마드무아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게 움찔하는 모습이었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파올로는 몰라도 나는 서프라이즈에 성공한 모양이다. 


“아, 미안해요. 오랜만이라 반가와서 목소리가 좀 컸나요?”


짐짓 시치미를 뗀다.


“오랜만···.? 무슈! 혹시···?! ”


즐거웠다. 이렇게 재미있게 사람을 놀래킨 것은 생전 처음인 것 같다. 이것도 다 운명의 장난 같은 인연이 무대가 되어준 덕이지만.


“마르셰 노트르담에서 치즈를 팔던 소녀, 맞지요?”

“네 맞아요. 무슈는 그 때 이 노트를 사가신 한국 사람이군요.”

“하하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이건 정말 운명의 장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네요.”

“반가와요! 정말 너무너무 반가와요! 제가 얼마나 반가운지 상상도 못하실 거에요!”


그녀는 다짜고짜 나를 끌어안더니 비쥬를 하곤 다시 내 손을 잡고는 팔짝팔짝 뛰었다.


“이 노트, 생각보다 저에게 소중한 것이었더라고요. 잘 가지고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그 땐 아무것도 모르고 팔아버렸지만 후회를 엄청나게 했어요.”


노트를 너무 헐값에 팔아버렸다는 걸 알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제값을 쳐주겠다고 연락하라고까지 했는데 안 한 것도 자기 자신이니 후회는 곱절이겠지. 하지만 헐값에 팔아버린 게 이거 하나는 아닐 것 같은데···


“하하 그렇게나 소중한 것을 그렇게 헐값에 팔아버리다니··· 어쨌든 운명의 장난으로 우리는 만났군요. 사실 저는 이 노트를 해석하는 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운명의 장난이라기 보다는 이 노트가 뭔가 힘을 발휘해서 우리를 다시 만나게 했다고 봐야겠네요. 오랜만이니 우선 앉아서 찬찬히 이야기를 해봐요.”

“네, 무슈라면 재미있어하실 이야기가 잔뜩 있답니다.”

“아 먼저 제 소개를 할께요. 제 이름은 허린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노트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에요. 성이 허, 이름이 린.”

“제 이름은 마리에요. 마리 빼뺑. 다시 만나서 반가와요 무슈 허.”


프랑스 사람 답지 않게 '허'의 H를 확실하게 발음해서 내 이름을 불러준다. 서재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어둑한 공간 가운데 환히 빛나는 존재가 있어 향기마저 주변 공기를 채우는 느낌이었다.


파올로가 가져다준 애프터눈티를 마시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차는 트와이닝스고 빵이며 스콘 등은 강릉의 유명한 가루 베이커리에서 사온 것이지만 버터며 크림, 잼과 시럽들은 직접 만든 것들이다. 사과, 오미자, 딸기, 벌꿀 같은 강릉의 특산물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일생 비법을 동원해서 만든지라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이에요 마리. 어떻게 지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여행을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설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여행중인가요? Tour de Pepin” 


마리가 생긋 웃었다. 티없는, 하지만 약간은 허탈한 기운도 섞인 느낌이 섞인 웃음이다.


“그 땐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였어요. 할머니는 특별히 지병은 없으셨지만 돌아가실 때는 90세가 넘었으니까,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이기는 했거든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주 어릴 때라 기억도 없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한국의 중학교같은 꼴레쥬(collège) 때고,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는 리세(lycée)를 졸업할 때쯤에는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차례로 가족들을 잃다보니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달리 친척도 없고···, 혼자서도 장례 절차는 척척 잘 치루었죠.”

“저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어린 나이에 가족도 없이 혼자 되다니 힘든 시간이었겠어요.”

“음, 그렇게 힘들었는지는 잘 모르고 지났던 것 같아요. 뭔가 죽음이란 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일찍 알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좋아는 해도 키우지 않아요.”


오월의 붉은 장미 같은 해맑고 화려한 기운을 발산하던 마리가 약간은 쓸쓸한 표정을 짓자 방안의 분위기도 다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해방감 같은 것도 있긴 했어요. 10대 소녀로서는 적지 않은 유산을 물려받았거든요. 살던 집도 그렇고, 조부모님은 친척 하나 없는 제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도 단단히 준비를 해두셨어요. 바깔로레아(Baccalaureat, 프랑스의 수능 같은 대입시험) 시험을 보긴 했지만 딱히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뭘 할까 하다가 생각난 게 여행이었어요.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험하는 여행. 아마 어릴 때 이야기책을 너무 많이 봤던 모양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대개 은퇴할 때쯤 되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리양은 일찍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하긴, 그런 여건이 되야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니까.”

“맞아요. 저도 대학은 꼭 가야한다는 부모님이 계시거나 당장 직장을 구해서 밥벌이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면 진학을 하던, 일자리를 구하던 그런 생각이 먼저라서 여행 같은 사치는 고려사항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아무도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적지 않은 돈도 있겠다. 세상을 되도록 많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여행을 돌아다니는 게 꿈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무작정 여행보다도 뭔가 준비를 좀 하는 것도 좋겠다 싶더라구요. 사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파리 근교도 잘 안다고는 못 할 정도니까. 게다가 할머니 돌아가시고 제가 그 뒷수습을 다 해야하기도 해서 당분간은 떠날 상황도 아니었고요.”

“음, 그래요. 복잡한 일들이 많았겠군요.”


직업상 죽음과 상속, 그에 얽힌 죽은 자의 무력한 의지와 살아남은 사람들의 필사적 욕망의 얽힘 같은 것은 질릴만큼 보아왔다. 10대 소녀로서는 당연한 상속조차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수 있다. 아니, 모든 것이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세금이며 법률적인 처리며 하는 것은 세상 경험 쌓인 어른으로서도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네 뭐가 참 복잡하기도 하더군요. 사실 유산의 상당부분은 베르사이유에 있는 집이었어요. 그 집을 파는 것도 시간이 제법 걸리고 복잡한 과정이더군요. 보험회사에서 사망보험금 받는 당연한 일도 절차가 꽤나 복잡했고요. 그래그래 거의 1년 정도를 베르사이유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보냈어요."

"세상 경험이 많이 쌓인 시간이었겠군요."


약간의 동정을 느끼며 말했지만 마리의 대답은 씩씩했다.


"좋은 일이죠. 남보다 먼저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도. 어쨌든 그렇게 일처리가 늘어지다보니 ‘노느니 공부나 하자’는 마음이 되었달까요? 틈틈히 다시 공부를 해서 먼 여행은 못 가고 영국의 대학을 갔어요. 런던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비교언어학과 문헌학을 전공했지요. 아시겠지요 무슈? 원하는 일을 위해서는 정말 완벽한 사람을 만나신 거에요.”

“정말 그렇군요! 이건 정말 운명이 설계라도 한 것같네요.”


SOAS라면 비유럽계 비교 문화학이나 언어학을 공부하기엔 최적화된 학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꼭 맞춤한 과정을 밟은 적임자가 마리인 것이다! 


마리가 잼을 바른 스콘을 한 입 베어물고는 생긋 웃었다. 트와이닝스의 얼그레이 티를 한 모금 마시고는 스콘을 잠시지만 날카롭게 쳐다보곤 다시 한 입을 베어무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가 그녀의 감각을 움직여 지각을 일깨운 모양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의 말도 공부했어요. 프랑스어와 영어는 당연하고, 같은 로망스어인 스페인어는 제법 잘 한다고 할 수 있어요.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아아어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는 하고요. 문법 시험을 보면 점수는 엉망이겠지만··· 아시아 언어로는 중국어와 말레이어 공부를 했어요. 이것도 유창하지는 못해도 대략의 의사소통은 할 정도가 되고요. 한국어와 일본어는 학교에서는 별로 공부를 못했고 이제 한국에 와서 공부 중이에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언어에 대해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말은 금방 배우는 편이거든요.“


짧지 않은 여러문장을 제잘제잘 빠르게도 쏟아낸다. 천진하고도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말투다. 


과연 대단하다. 유럽은 크게 게르만어 계열과 로망스어 계열 언어가 있어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던 자기말 계열과 비슷한 언어는 비교적 쉽게 배우는 편이긴 하다. 이탈리아 사람은 스페인어를 금방 배우고 네덜란드 사람은 독일어를 쉽게 배운다는 식이다. 한국 사람이 일본어 습득이 빠른 것과도 같은 원리다. 


거기에 게르만어 계열이지만 로망스어의 영향을 무척이나 많이 받아 혼혈언어 같은 느낌인 영어는 유럽에서도 취업을 위해서는 필수다, 그러니 대학 나온 나이에 3~4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그리 드믄 일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나이에 아시아 언어까지 7~8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대단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런저런 외국어를 공부해봐서 알지만 마리의 재능은 특별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어학천재다.


“학교 다니면서 여행을 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곤 석사까지 마치고는 이제 정말 여행을 떠났어요. 모든 세상을 직접 다 다녀보고 싶은 게 지금 꿈이에요. 사람사는 모습들을 보고, 낯선 외국에서 살아도 보고, 친구도 만들고, 도대체 사람이란, 산다는 것이라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요.”

“그건 상당히 철학적인 여행이군요.”


마리가 마지막 스콘 조각을 삼키고는 입술을 핥으며 생긋 웃었다.


“하하 그렇게 들리나요? 사실은 먹고 마시는 여행이라고 봐야해요. 어디가나 현지의 음식과 음료를 탐하는 게 낙이에요. 그래서 영국에 있던 대학시절은 좀 힘들었지요.”


그녀가 웃으며 혀끝을 살짝 내밀었다. 영국이라면 나도 있어봐서 알지만 음식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에겐 역설적으로 좋은 환경이다. 


런던이나 맨체스터 같은 대도시의 비싼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라도 가지 않으면 진짜 괜찮은 음식이란 먹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국민음식이라는 피시엔 칩스 같은 것도 영국인이 하는 것보단 중국음식점에서 나오는 것이 훨씬 낫다. 


나는 미슐랭 레스토랑 같은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영국의 시골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 있어도 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 찾아갈 여유는 없었겠지만. 오죽하면 나는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는 한국 라면이나 끓여먹고 맥도널드나 찾아갔더랬다. 학교식당밥 같은 것을 먹자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출신의 경우 밥상머리 대화의 절반은 음식에 대한 불평과 고향에 대한 향수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제손으로 해먹는 것을 택할 밖에. 그래서 나도 요리에 대한 기초기술은 영국에 있던 시절에 배운 것이다. 당시는 스마트폰도, 유튜브 같은 것도 대중화되기 이전이라 요리책 사다놓고, 혹은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출력해 놓고 간단한 조리법 설명의 메워지지 않는 부분을 무수한 시행착오로 채워넣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때가 나의 요리 수업시절이었던 것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라면 맛난 것 사먹느라 요리솜씨는 안 늘었을 것 같다. 그러니 영국은 역설적으로 요리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한국에 오기까지 여러 곳을 들렸어요. 대학시절에 서유럽의 여러나라들은 대개 가보았고요, 졸업 후에는 동유럽 여러 나라들을 통해서 인도와 동남아, 중국을 거쳐서 온 거에요. 프랑스를 떠난 지 2년 정도가 되었네요.”


여기서 정말 놀랄만한 얘기는 마리는 이 모든 말을 한국어로 유창하게 해냈다는 것이다. 십 년이나 프랑스에 살았다지만 아직도 좀 문장이 길어지면 더듬거리고 문법이 수시로 틀리는 나의 프랑스어보다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다. 대학에서 전공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오면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는데, 물론 현지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환경이긴 하지만 불과 몇 달만에 이 수준으로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군요. 이제부터 꿈을 이루어 나가는 건가요? 벌써 세상의 삼분의 일 정도는 본 셈이군요.”

“겉핥기로 스쳐지나온 걸요. 다시 돌아간다면 먹어봐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만 배운 것 같아요.”


날씬한 실루엣으로 봐서는 짐작도 안 갈 소리를 하며 마리는 깔깔 웃었다. 이런 형용모순 같은 존재를 재외하고는 나로서도 완벽히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다시는 가볼 수 없는 세상이 얼마나 많은가. 푼돈을 아끼느라 먹지 못했던 음식들이 때로 가슴을 치는 경우가 있다. 그 때는 가난한 시절이라 어쩔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하하 어딘가에 가봤다고 말하려면 그 고장의 음식을 먹어봐야만 하죠. 온 김에 저녁식사 하고 가요. 강릉의 음식들로 좀 준비를 해뒀어요.”

“어머 정말이요? 고마와요. 사양하지 않을께요.”


그렇다. 특별한 다른 일정이 없는데 저녁 초대를 사양한다면 프랑스인이 아니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일단 사양부터 하고 보는 동양권과 달리 프랑스인이 식사 초대를 거절한다면 그건 싫던지, 혹은 정말 안 되는 사정이 있든지다. 초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액션과 성량이 풍부하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날리는 것으로 전해야한다. 


바로 지금 마리가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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