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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계약하인 머피 콜드웰, 선장이 되다!

아메리카 식민지 백인노예의 출세기

“용기가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선장님. 제가 너무 감상에 빠졌나보군요. 아버님 얘기를 하시던 중이었지요.”

“그래요. 우리 아버지, 머피 콜드웰도 그런 계약하인, 혹은 계약노예로 아메리카에 갔던 거요. 다행히도 주인은 비교적 좋은 사람이었던 모양이에요. 몸성히 5년의 계약을 끝내고 나서는 약속대로 땅을 받았소. 황무지지만 그래도 어엿한 토지 소유주가 된 거지요."

“다행한 일이군요. 아버지께서 그런 노력을 하셔서 오늘의 선장님이 이렇게 성공하신 기반을 잡으신 거군요.”


일단 아메리카에 정착하여 땅이라도 소유하게 되면 확실히 본국의 가난뱅이 소작농보단 좋은 상황이 된다. 자기땅이 있다는 것 외에도 신대륙은 한창 개발중이라서 새로운 도시를 개척하거나 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임금도 높고, 기술이 좀 있다면 대우가 더욱 좋게 마련이다. 주로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서지만 개척을 통해서 자기 땅을 더 확보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일단 머피 콜드웰씨도 신대륙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주민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하하, 그게 말이요 이야기는 좀 길어지게 됩니다. 아버지는 현지에서 비슷하게 계약하인으로 아메리카에 온 아일랜드 여인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게 됩니다. 바로 우리 어머니 얘기요."

"한참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실 때였겠군요."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힘든 계약하인의 생활을 이겨내고 작더라도 어엿한 농장주가 되어서 부부가 같이 희망찬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니 눈에 선했다.


"글쎄,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으셨던 것 같소. 생전에 아버지한테 속아서 결혼했단 얘길 자주 하셨거든요. 아버지는 몇 년 잘 가꾼 땅을 팔아버렸소. 농사꾼이 되길 거부하곤 교육을 받았어요. 나이가 20대 후반이 되서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이 교육이라니, 왜인지 아시겠소?”

“그야 법률가나 성직자, 정치인이 되겠다면 꼭 필요하겠지요.”

“그런 정도까지 고등교육을 받기엔 나이도 많고 돈도 부족했지요. 그때까진 자기 이름이나 간신히 주워섬기는 철저한 문맹이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회계 같은 교육을 받곤 배를 타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배의 선원이라면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요. 선원이란 것도 육지 노동자보다 급료가 두둑해도 언제나 사람이 부족한 직종이지요. 목숨을 내놓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우리배의 상황을 보고 선원들의 생활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되요. 우리 배는 그런 면에서는 아주 특별한 배니까요. 어쨌든 아버지는 꿈과 야심이 있었어요. 인생을 하급선원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아버지는 언젠가는 선장이 되고 싶었던 거에요.”


그렇다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선장이란 기본적으로 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선원을 교육하는 제대로 된 학교 같은 것은 없었던 시절이다. 해군이 된다면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정도 나이의 식민지 백성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선원과 선장은 농부와 영주 만큼이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자기 능력보다는 부모가 누구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열에 아홉은 선장 아들이 선장 하는 것이다.

돈이 없는 뱃사람에게 투자자들이 배를 사주고 대양항해를 맡기는 경우도 드믈지만 없지는 않다. 상업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혹은 탐험가로서 명성을 얻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다. 


머피 콜드웰씨는 우선 교육을 받고 선장이 될 기회는 배를 타고 모색해보자고 생각한 것인데,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배를 타면 기회는 있다. 살 기회보다 죽을 기회가 열 배쯤 많다고 해도 가난뱅이 농부로는 꿈도 못 꿀 큰 기회가 있긴 하다.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은 배나 지위도 실력이다. 어릴 때부터 배를 타며 익힌 여러가지 기술과 경험도 실력이다. 남다른 완력이나 뱃심도 실력이다. 무언가 실력이 있으면 우선 밥벌이를 하고, 좀 더 나아가 큰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것이 바다 사나이들의 세계다. 


뱃사람으로서는 이도저도 없는 머피 콜드웰씨는 일단 배의 행정적이고 상업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실력, 사람이 모인 조직에서는 꼭 필요하지만 바다에서는 의외로 구하기 힘든 그 실력부터 갖추려고 했던 것이다. 육지에서라면 기껏 상점의 점원이나 법률가의 조수 정도가 한계였을 것이지만 배에서는 얻기 어려운 인재가 되었다.


 그런 것까지 내다보고 모험을 건 전략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선장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만큼, 그 후로도 고생을 많이 하셨겠군요."

“그렇다마다요. 아버지는 온 몸에 흉터가 가득하셨어요. 내가 어릴 때에는 항해에서 돌아오시면 그 상처를 짚어가며 이것은 스페인의 어떤 배와 싸울 때, 이것은 프랑스 어느 항구를 약탈할 때, 하는 식으로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그 이야기를 듣는 건 어릴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슬픈 얘기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씩씩하고 쾌활한 무용담만 이야기 해주셨거든요.”

“선원이란 역시 어지간히 거친 일이가보군요.”


듣고보니 지적인 능력뿐 아니라 전장에서의 용맹도 뛰어난 머피 콜드웰씨였던 것 같다. 작으나마 생활의 기반인 땅을 팔아버리고 뛰어든 일이니 절실함은 확실히 남달랐을 것이다.


“사실 아버지는 상선만이 아니고 사략선의 선원을 하셨던 거요. 타국의 전선은 물론이고 상선도 전쟁 중이거나 왕명이 있을 때는 약탈이 가능하지요. 뭐 일단 규칙은 그렇다오. 쉬운 일은 아니지요. 고분고분하지 않고 격렬하게 반항하는 배도 있고 거꾸로 이쪽이 공격받는 경우도 많소. 적국도 같은 사략선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니 말이요. 한마디로 목숨 내놓고 하는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요. “


항해라는 것은 상선을 타더라도 여러모로 전쟁과 같은 상황이다. 상선 중 일부는 만만해 보이는 적국의 배를 보면 쉽게 해적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배들에게 습격을 받기도 한다. 

국가간의 전쟁이 시작되면 이런 민간의 상선들은 국왕의 정식 해군으로 편입되기도 하고, 혹은 해적질도 정식으로 면허를 받고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콜드웰 선장에게서 들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해서 전설이 된 윌리엄 드레이크경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연안을 오가는 작은 상선으로 시작했다가 비스케이만의 사략해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종당엔 여왕님의 해군지휘관이 되어 빛나는 전공을 거둔 것이니까. 


전쟁이란 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벼락출세의 기회가 주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유럽은 거의 언제나 전쟁중이라서 기회는 늘 있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농민으로 태어났다면 이러 기회도 잡기 힘들었다. 군인은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바다에서라면 일단 이런 기회르 받기가 훨씬 쉬워진다. 이 기회란 콜드웰 선장 말 맞다나 목숨 내놓고 하는 도박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뜻밖의 얘기다. 콜드웰 선장의 아버지가 사략선 출신이라니. 사략선이란 왕실의 면허를 받았다지만 결국은 해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예의바르고 품위있는 콜드웰 선장을 볼 때는 무시무시한 해적이란 전혀 연상도 못 했기에.


“하지만 사략선도 해적··· 아닙니까? 결국 남의 배를 약탈하고 나포하는 거니까요.”

“해적도 여러가지요. 검은 바탕에 해골을 그린 해적기를 날리는 해적들도 있지요. 이들이야말로 ‘인류의 적’이라고 할 수 있소. 평화시라도, 자국의 배라도 가리지 않고 약탈하는 놈들이지요. 이들은 자국해군을 비롯해 모든 나라의 공통의 수배자라서 끝이 좋은 해적이란 전설로나 전해지지 나는 본 적도 아는 사람도 없소. 언젠가 말해줬던 헨리 에이브리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아도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던 거요. 다들 교전 중에 물고기밥이 되거나 본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거쳐 교수대에 오르는 게 정상이오.”


물론이다. 테임즈강변의 사형장에는 연중 언제라고 해도 좋을만큼 범죄자의 시신들이 널려있는데 그 중 압도적인 다수가 해적죄로 사형당한 사람들이다.


“해적과 사략선의 차이는 알겠습니다만··· 둘 다 아주 위험한 일인 것 같네요. 그런데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지요?”

“농사꾼은 굶어죽는 일이 두렵지만 선원이란 건 죽음이 두렵다면 할 수 없는 일이랄까요. 사실 나이가 들어 자기집 침대에서 죽는 선원이란 건 많지도 않고, 명색 뱃사람이라면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아니라오. 자발적으로 선원이 되는 사람은 애초에 목숨은 내놓고라도 한 몫을 잡아 신나게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이니까. 상선을 탄다고해서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도 아니고, 해적질은 일단 수입은 훨씬 좋거든.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소.”


콜드웰 선장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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