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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면 해적이 되라!

Don't let other people use your life!

“그게 뭡니까?”

“선원들의 고된 생활은 뻬뺑씨도 볼만큼 봤을 거요. 물론 이 배의 선원들은 다른 배의 간부들보다도 좋은 대우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고난과 위험이 천지인 생활이지요. 그래서 이들이 육지의 노동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급료를 받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막상 급료를 못 받는다거나 보너스를 억울하게 빼앗긴다면 어떻겠오?”


그야 말할 것도 없이 억울하지. 억울하다는 말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이니까.

페드로의 비뚤어진 성격이 생각이 났다.


“아, 페드로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일한 급료도, 보너스도 못 받게 되었다고··· 보물선단이 난파해서요.”

“실은 선주의 경우에는 난파했다고 모든 걸 잃는 건 아니요. 보험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걸로 상당부분은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되지요. 물론 그 보상 중에서 선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글쎄 선원들과 가족들이 본국에서 재판이라도 청구해서 이기지 않는 한 자진해서 돈을 주겠다는 선주는 없을 거요. 게다가 이런 한 무리의 부랑자 같은 사람들이 재판소에서 선주들을 이긴다고? 당장 변호사 고용할 돈도 없는 사람들이 귀족이나 대상인들을 이길 수 있다고 보오? 결국 재판관들도 같은 귀족들이고 투자자들인데 말이요.”


그야 물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법률시스템이라는 것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평판의 영국에서도 선원들이 선장이나 선주들에게 이런 문제로 승소하는 경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라면 재판은 커녕 나으리의 궁정 아래서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이라도 짜내는 것이 그나마 방법일 것이다. 재판소란 귀족들이나 대브루주아지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그나마도 재판의 결과는 권력과 금력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평판이니까.


“선원이란 생각보다도 더 위험하고 어려운 직업인 거군요.”

“아직 진짜 기막힌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소. 그나마 천재지변은 그렇다 치고, 어떤 선장이나 선주들은 완벽하게 성공적인 항해 후에도 돈을 떼어먹는 방법이 다 있소.”

“성공한 항해 후에도 급여를 지급 안 한다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거야말로 해적질 아닙니까?”

“그렇지요. 소파에 파묻혀서도 선원들을 약탈하는 해적이랄 수 있지요. 그냥 돈만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오. 훨씬 지독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소."

"급여를 떼먹는 것보다 훨씬 지독한 결말이 있나요?"


어안이 벙벙한 얘기다. 성공한 항해 후에도 급여를 안 준다고? 그것만 해도 놀라운데 그보다 더 지독한 결말이 있다고?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다.


"방법은 이렇소. 일단 항구에 도착을 했으니 푼돈을 쥐어주고 놀라고 내보내는 거요. 몇 달이나 바다만 보고 살다가 육지에 도착하면 누구라도 들뜨게 마련이고, 일단 손에 현금이 좀 있으니 백이면 백 다 술집으로 달려가지요. 술집엔 술뿐 아니라 여자도 있고, 도박도 있고, 마음껏 즐기는 거요. 이런 기회에 고주망태 인사불성이 되도록 처마시지 않는 뱃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소.”

“그야 뱃사람들이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겠지요. 항상 죽음의 긴장과 마주하다가 땅을 밟았는데 그 정도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 즐기는 건 뱃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지. 목숨을 건 항해 끝에 스트레스를 푼다는 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선장이나 선주가 독한 놈들이면 여기서 바로 수를 쓰는 거요.”

“어떻게 말입니까?”

“술에 취해서 헤롱대는 녀석들을 해군에 팔아넘기는 거요. 일종의 인신매매지요.”

“네? 아프리카 흑인이나 인디오도 아니고 멀쩡한 기독교 신자, 자국민을 팔아넘긴다고요? 그것도 해군에?”


갈수록 태산이다. 인신매매라는 기막힌 일을 하는데 거래상대방은 심지어 해군이라고?


“그렇소. 이건 해군에서도 환영하는 일이지요. 해군은 일반 상선보다 규율도 세고 급여는 더 적소. 뱃놈들 처우야 거기나 여기나, 음식이나 잠자리 같은 건 해군이라고 더 좋을 게 하나도 없소. 그런데 그쪽은 전함이니까 해적선 이상으로 위험하지요. 해적이야 상대를 봐가며 덤비지만 이쪽은 싸움이 직업, 게다가 여기 유럽에 전쟁이라면 언제 어디라도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요. 장교라면 모를까, 해군수병으로 자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오.”

“하지만 납치해서 해군을 만든다는 건 정말 너무 이상한 얘기네요?”


해군, 납치, 이런 단어들은 하나도 어려울 게 없지만 간단한 문장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겉돌았다. 이게 무슨 경우라는 건지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오. 상선만도 못한 해군의 처우를 생각하면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 그러면 처우를 개선하려고 해야할텐데 그게 아니고 돈을 줘서 사람을 납치하고 있다오. 심지어 이런 납치를 대행해주는 집단들도 있소. ‘프레스갱(Press gang)’이라고 하지요. 이런식으로 술취해서 팔아넘겨지는 사람들뿐이 아니오. 급할 때는 그냥 항구 거리에서 백주에 사람을 납치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군이 된다면 정말 불만이 많겠는데요? 몇 년 동안이나 일한 보람도 없이, 가족들을 돌볼 방법도 없이 어떻게 마음 편히 배를 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바다위에서 탈영을 하려고 해도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요. 그렇게 말도 안되는 대우를 당하고 꼭지가 돌아버린 사람들이 해적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지요. 해적선도 전투며 질병이며 사고며 선원은 늘 모자라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충원은 선장의 중요한 임무가 되오. 해적이니까 납치나 강요 같은 수법을 쓰기도 하긴 하지만 해적들의 전성기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오. 사실은 제발로 걸어들어오는 사람들이 충분했던 거요. 해적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거든요.”

“사람의··· 마음을요?”


내 마음속의 해적은 대개 살인과 고문, 약탈과 강간, 야만적인 술주정 같은 것들로 그려지는 대상이라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이야기는 전혀 와 닿지가 않았다.


“이런 식이요. 해적들이 한 배를 나포하고 나면 선장을 묶어놓고 선원들에게 물어보는 거요. 이 배의 선장은 당신들에게 잘 해주었나, 식사의 배급을 속이거나 불필요하게 잔인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나, 급여는 잘 지급하는 사람인가 등등을. 그래서 만약 선장이 선원들에게 좋은 평을 못 받으면 일단 그 선장을 처단하는 거요. 그리고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지.”

“해적들의 생활을 말입니까?”

“해적들의 생활이야 뭐 싸움질이 많은 것 말고는 뱃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얘기니까, 그것보다도 이런 이야기요."


콜드웰 선장이 다시 독한 마데이라 와인 한 잔을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해적들은 선장이나 선주에게 고용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사업을 하는 파트너 같은 관계요. 사략선원은 고용된 경우가 많은데 모든 나라를 약탈 대상으로 삼는 해적들은 이런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오. 그야말로 ‘같은 배를 탄 사이’인 거요. 노획물이 없으면 같이 굶고, 있으면 약속된 비율로 나눕니다. 선장은 선주의 임명이 아니라 자신들 중 대표자를 투표로 선출하오. 그 외의 간부선원들, 특히 보급담당은 반드시 투표로 선출하지요. 이런 선거의 규칙, 노획물의 분배방식과 비율, 배 위애서의 생활의 규칙 등을 합의하면 이것을 문서로 만든단 말이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같이 서명하고 약속을 지킨다오. 글을 모른다고 해도 문제는 없소. 다들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읽어서 내용이 이해가 안 가거나 불만이 있으면 동의할 때까지 토론도 하고 하니까요.”

“그건 멋진 이야기군요. 귀족 출신의 선장이나 투자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들이 약속한대로 행동하고 보상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

“그렇소. 나쁜 선장 밑에서 불공정한 행위를 당한 선원들 앞에서 그 선장을 처단한 다음 이런 문서를 딱 꺼내서 읽어주고 보여주는 거요.”


이해가 갔다. 철저한 실력주의, 서로 합의한 바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공정함, 우두머리를 선거로 뽑는 자기 결정권. 모든 것이 매력적인 이야기다. 날 때부터 신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섬기는 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더욱 그랬다.


“그렇게 모두들 합의해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회는, 그렇게 평등한 권리가 있는 곳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해적들은 그렇게 공정이란 무엇인지 합의하고, 합의한 바를 지키는 사회요. 만약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가벼울 경우에는 선출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무거울 경우에는 형벌을 받지요. 선장 정도면 대개는 매질을 당하거나 마스트에 묶이는 벌을 받지는 않아요. 일종의 예우랄까요. 하지만 무인도에 버려지거나 하는 식이라 맞는 것보다 생명은 더 위태롭지요. 법이라는 미명 하에 미꾸라지 같이 빠져나가는 왕과 귀족들과는 완전히 다른 거요.”

“근래 들어 신과 왕을 부정하고 만민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혹시 그것이 해적의 영향인가요?”


콜드웰 선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볼테르나 루소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가보군요. 글쎄, 모르긴 하지만 해적선을 타보았다면 그들도 훨씬 더 대담한 주장을 했을 거요. 어느 정도는 사회 계급을 인정하는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해적들은 거의 완전히 평등주의랍니다. 가문이나 재산 같은 것은 끼어들 자리가 없지요. 피부색이나 종교조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성과 배짱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볼테르나 루소라는 이름은 물론 들어본 적이 있다. 바로 마담 뽕빠두르가 후원하는 지식인 나부랭이 들이니까. 마담 뽕빠두르 때문에 덩달아 반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신과 왕권을 부정한다는 사상에 내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신이 사랑을 준다고 느껴본 적도 없고 왕이 신성하거나 선한 존재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물론 내가 모시는 주군들에 대한 충성심만은 잊지 않고 있다만.


“해적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요. 인종도 마찮가지요. 탈출한 노예도, 인디오 혼혈 출신도 일단 같은 배를 타고 합의서에 서명하면 모두 형제요. 심지어는 종교도 가리지 않지요. 능력이 있고 해적선의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무슬림도 받아들인다오. 능력과 인성이 중요하지 목숨걸고 싸우는 전장에서 피부 색이나 모시는 신은 아무 상관 없다는 걸 뱃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요. 진짜 허리케인이 오면 하느님도 알라신도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오."


그건 정말 그렇다. 바다에 있으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신은 어쩐지 사람들 자신의 소망에 의해 꾸며진 존재고 그보다 훨씬 크고 강한 어떤 존재의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폭풍도 피가 낭자한 전투도 같이 이겨내고 금화를 나누어 갖고 술잔을 기울일 때, 사람들은 진짜로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건 형제들이 되는 거요. 평생 남의 밑에서 인간 대접을 못 받고 살던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느낄 때, 그 폭발력은 엄청난 거요.”

“저도 공감이 갑니다 그 기분은.”


콜드웰 선장이 가볍게 한 숨을 쉬었다.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 소중한 것을 남들이 이용하게 두고 평생을 사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바에는 내 스스로 한 번 불태워 보자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나로서는. 밑천이 목숨뿐이라면 그걸 걸고 한 판 도박을 하겠다는 데 말릴 수도 없는 일이지요.”

“물론입니다. 산다면 분명 보람이나 희망 같은 것이 있어야지요.”


나도 파리 빈민굴의 어린 시절에는 궁정인이 되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당시 내 처지로는 가당치 않은 희망이었지만 그것이 이루어졌고, 또 궁정에 들어와서는 수석요리사가 되겠다는 희망이, 또 하나하나 요리를 배우고 창조하는 즐거움이, 가족을 이루고 보살펴나가는 보람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제까지 차곡차곡 많은 것을 이루고 살아왔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당장 가족들의 소식조차 모른다는 것이 이 모든 삶을 실패로 바꾸고도 남을 만큼의 무게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이렇게 대양에서 낯선 것들을 만나고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들이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다. 콜드웰 선장 같은 훌륭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그렇고.


가족들을 인생의 최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내 마음속 한구석엔 은근한 해방감과 기쁨도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인생이란 정말 뒤죽박죽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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