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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하나, 둘, 셋도 모르는 인간들

죽어도 세인트주드호에서 죽겠다는 선원들

콜드웰 선장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버지는 성공한 뱃사람이었어요.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은 선장이 되었답니다. 사략선 동료들에 의해서 쿼터마스터(Quatermaster)로 뽑혔지요. 쿼터마스터란 배에 필요한 물자를 사들이고 배급하는 자리요. 그런 자리에 선원들의 투표로 선정이 된 것을 보면 아버지는 선원들 사이에서도 공정한 사람으로 이름이 났었던 게지요.”


콜드웰 가문의 '공정' 코드는 선대 머피 콜드웰 선장으로부터 시작되는 모양이다.


“사략선도 역시 해적선이라 투표를 하는 모양이군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는 투표를 안 하는 쪽이 많습니다. 사략선은 대개 투자자가 있거나 선장이 오너라서 규칙도 그들이 정하고 간부 선원도 선장이 임명하는 편이오. 다만 선장에 따라 투표로 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버지가 타신 배가 그런 경우였소. 사략선이란 결국 전투를 염두에 두다보니 선원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대표자를 직접 뽑게 하는 것이 좋다오. 우리 세인트주드 호도 쿼터마스터나 보선(boatswain, 갑판장) 등은 직접 투표로 선출하지요.”


주방에서라면 헤드셰프가 모든 자리를 다 임의로 정하지만 큰 배는 주방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엇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돌이켜 내가 사람을 뽑아 쓴 것을 생각해보니 아마 주방의 스태프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을 경우도 많았겠다 싶다.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하지요. 사람만 좋다고 중요한 일을 맡기는 뱃사람은 없을 거요. 일단 살아남아야 공정이고 뭐고 따지는 거니까. 어쨌든 그렇게 몇 년을 더 보내고 난 뒤에는 투자자들이 배를 사주기로 했어요. 아버지도 그 배에 일부 투자를 할 정도로 이미 돈도 모은 상태였고요. 그 후로도 돈도 많이 버셨고 무사히 은퇴해서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걸 자랑스러워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완벽한, 그러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성공스토리다. 신대륙 이민자들은 대개 상업이나 농업으로 성공을 한다. 그래봤자 먹고 사는 걱정은 덜었다는 정도고 큰 부자는 무역이나 대농장사업을 통해서 된다. 그러니 어느 정도 교육도 받고 자본도 있는 집안의 사람이라야 큰 성공을 하는데, 머피 콜드웰 선장은 그야말로 무일푼에서 시작해서 당당한 선장이 되었다니,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란 역시 자기 길을 닦아나가기 나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실은 엄청난 성공 같은 것을 바란 적도 없지만, 베르사이유의 궁정요리사가 된 것도 제법 성공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궁정요리사라는 것의 한계도 보이게 된 지금은 너무 편한 길에 안주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콜드웰 선장이 조용히 입모양으로만 미소를 지었다.


"과하게 겸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발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 같네요. 우리 아버지는 말년에 병상에 누워서는 종종 이런 얘길 하셨어요.” 

"어떤 말씀을요?"

‘잭. 내가 처음 아메리카로 건너올 때 배를 타고 느낀 그 바다가 내 인생을 바꾼 거다. 아일랜드는 섬나라니까 바다야 익숙하지. 하지만 배를 타고 대양으로 나와서 느끼는 그 바다의 느낌하고 바람부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완전히 다르다는 건 너도 잘 알거다. 난 이 바다가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줄 걸 알았어. 그래서 무조건 배를 타고, 뱃사람으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지. 힘든 계약하인 생활도 언젠가는 바다로 나갈 거라는 생각을 하며 버티고, 계약이 끝나고 받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땅을 사는 대신 교육을 받은 것도 다 바다가 나를 부르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콜드웰 선장의 시선이 먼 곳을 향하는 가 싶다.


“아버지 임종 때쯤은 나도 뱃사람이, 이미 선장이 되어있을 때였소.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나는 너무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바다에만 나가면 나는 분명 평소의 잭 콜드웰과는 다른 존재, 한계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서 무한히 자유로와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오.”

“타고난 바다 사나이들의 집안이군요. 저도 어쩌면 그 기분을 알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식재료나 음식을 접할 때, 어떤 무한함이 눈앞에서 열리는 그런 기분이거든요. 그럴때면 정말 자유롭고 저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아마 비슷한 거겠지요. 자기라는 존재, 내가 아는 좁디좁은 세상 안에 갇혀 있던 자아가 갑자기 큰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이랄까요.”

"저로서는 성공이라기보단 그런 큰 깨달음으로 나가는 것이 다음 단계인 것 같습니다."


선장과 나는 이 시점에서 잔을 마주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서로 다른 기억들을 더듬으면서도 영혼이 공명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어엿한 배의 선장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타시던 그 배의 선장으로요. 물론 견습생활은 아버지 밑에서 했소. 꼬맹이때야 당연히 허드렛일부터 시작했고 아버지는 남한테보다 더 엄격하게 대했지만, 그래도 배에서 선장 아들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겠소."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콜드웰 선장이 꼬마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쿡, 웃음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릴 때 마스트를 잘 기어올라서 귀여움 깨나 받았지요. 메인 마스트의 높이가 30피트가 넘는, 당시로는 꽤 큰 배였소. 요즘은 배들이 훨씬 크고 좋아져서 이제 그 배는 팔아버렸지만.”

“배를 팔 때는 섭섭하시기도 하셨겠네요.”

“그야 말하면 잔소리지요. 아버지의 추억과 어릴 적의 기억이 깃든,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견습선원이자 초보선장 노릇을 했던 배니까, 누구라도 특별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배일겁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지니스지요.  작은 배에 메달려 있어서는 발전이 없으니까요."

"대양항해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큰 배가 필요했겠지요."


콜드웰 선장의 시선이 다시 좀 먼 곳으로 향한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돛대 하나인 슬루프로도 잘도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지는 도박 같은 거지요. 폭풍이나 해적을 만나면 목숨 건지기도 바쁜 일이 되니까요."


외돛대의 작은 범선 슬루프와 관련된 무슨 기억이라도 있는 것일까? 선장의 말투가 어딘가 슬프다가 다시 힘있게 돌아왔다.


"이 세인트 주드호는 나 자신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합자해서 사들인 배입니다.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이스트인디아맨’을 나포한 걸 해군에서 불하받았지요 1000톤급의 큰 배입니다.”

“엄처난 배라는 건 알겠습니다만, 타시던 배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차이인가요?”

“이전에 타던 팬시 오브 블랙(Fancy of Black)호는 갤리온이었소. 나름 큰 배라서 300톤이 넘고 마스트가 셋이 있었지만 세인트 주드와는 비교가 안 되지요. 콜럼부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탐험을 떠날 때 기함으로 썼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호가 150톤이었단 걸 생각하면 그 간 기술의 발전을 짐작할 수 있을 거요.”

“톤수로만 봐도 엄청난 차이군요.”

“톤수뿐 아니라 속도나 항해에 필요한 선원의 숫자 등을 따져보면 비교할 수가 없는 차이지요. 콜럼부스 시절보다 3분의 1 정도의 선원만 있어도 두 배 이상 빠르게 항해할 수 있으니까요. 실을 수 있는 화물도 몇 배나 되고요. 어쨌든 콜럼부스 당시에는 대양항해라고 해도 비교적 잦은 기항을 하며 이동하는 식이었소.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를 왕복하는 항로가 유일한 대양항로였으니까요. 몇 달간이나 바다만 보며 항해해야 하는 대서양이나 그보다 더 먼 태평양은 알려져 있지도 않았으니 그런 장거리 항해를 위한 배는 상상에도 없던 시절이지요.”


그러고보면 기술의 발전이란 눈부시다. 요리분야도 포크의 끝이 두 가닥에서 네 가닥까지 늘어난 것부터 시작해서 쁘띠푸르를 비롯해서 커피를 내리는 진공식 물끓이게(이탈리아인들이 모카포트라고 부르는) 등 기술의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에 따라서 요리도 풍성해지고 있고 말이다. 


“이 배는 네덜란드 배라고 하셨지요?” 

“그렇소. 아직까지는 영국이 네덜란드 조선기술은 못 따라가지요. 이런 대양항해용 배에 있어서는 말이요. 네덜란드는 연안이 얕아서 배 밑바닥도 평평하게 만드는데 그러면 속도는 조금 느려져도 배의 안정성도 높아지고 화물을 훨씬 많이 실을 수 있어서 무역선으로는 그만이오. 어차피 우여곡절이 많은 대양항해니까 며칠 늦는 것보다야 많은 화물을 안정적으로 싣고오는 게 훨씬 중요하지요.”

“무엇보다 안정성을 중시하시는 군요.”

“우리는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선원들 처우도 마찮가지입니다. 다른 배보다 조금 더 급여를 주고, 약속을 지키고, 식사며 의복도 조금 나은 것으로 해주는 건 절대 손해가 아니지요. 그게 나와 우리 투자자들의 방침입니다. 이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 투자자의 투자금은 사절하는 것으로 하고 있소.”

“하지만 역시 돈이 더 많이 드는 방식이긴 하군요.”

“천만의 말씀. 돈이 더 들어간다니, 그건 배가 돌아올 때까지도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이오."

선장이 특유의 단호한 눈빛을 빛내며 매섭게 이야기했다.

"내 방식은 이제까지 훌륭하게 성과를 입증해왔소. 바다 위에서 수십년, 내가 선장을 맡은 배에서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선원들은 언제나 충성스러웠소. 몇 달을 표류해서 식량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도, 해적을 만나서 격투 끝에 선원의 반이 죽고 배의 메인 마스트가 부러졌을 때에도 선원들의 반란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소. 무리한 일정 때문에 큰 사고를 겪은 적도 물론 없고. 그게 다 잭 콜드웰 선장의 배는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까지 선원들의 생활이며 처우를 보면 약속을 지킨다는 것의 가치는 족히 이해가 간다.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선원들도 행복하고 투자자들도 결국 돈을 더 버는데 왜 다른 배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콜드웰 선장이 잠시 입술을 축였다.

“그러게 말이오. 인간이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오. 바로 눈 앞의 것밖에 보지 못하는. 하나 둘 셋 정도의 경우는 생각해 보고 움직이면 좋으련만.”

“하나 둘 셋이요?”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할지, 또  그에 따라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이런 정도만 미리 생각해봐도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욕심을 부리진 않을텐데 말이오."

"하긴 사람은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는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법이라는 건 어려운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지요..” 

"물론 내가 잘 한다고 상대방이 나에게 잘 하는 것은 아니오. 오히려 그걸 이용하려는 녀석들이 더 많은 게 세상이지요."


하긴 그렇다. 하지만 이쪽의 호의가 꼭 호의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렇군요. 저만해도 어릴 때부터 속고 빼앗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남에게 잘 하려는 것보다도 피해를 안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 되었습니다만. 선장님도 그런 경우를 많이 겪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호의를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서 그런 방식은 너무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그런 경우들 때문에라도 세 수는 짚어봐야 하는 겁니다.”


나도 파리의 밑바닥에서부터 베르사이유궁에서 최고 요리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몇 번이나 뒷통수를 맞은 기억이 난다.뒷통수를 맞는 것은 국왕 폐하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니까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뒷통수 얘기를 하니 말인데, 도대체 파올로 이 녀석은 내 납치 사건과 무슨 관계였을까? 혹시 납치범의 끄나풀 역할이라도 한 것일지··· 그만큼이나 믿음을 주고 가르쳤는데 만약 그렇다면 참 씁쓸한 일이다. 꼭 그렇다는 증거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라는 확신도 들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눈이라는 것도 필요한 거고요.”

“하지만 사람을 몇 번 보고 속을 어떻게 안답니까?”

“그렇지. 사람 마음속은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들여다볼 재주가 없으니 말이오. 차라리 바다에서 바람을 예측하는 게 쉽소.”


콜드웰 선장이 조금은 허탈하게, 하지만 쾌활하게 웃었다.


“그래서 사람 하나하나 성격을 보는 게 아니라 상황과 살아온 인생을 보는 거요. 저어도 선장과 선원의 관계에서는 이런 정보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요.”

“상황과 성격··· 말입니까?”

“우리 배의 선원들 중에는 새파랗게 젊은 10대는 없소. 나이가 어느 정도는 들고 결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가족이란 것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훨씬 믿을만 하다오.”


말할 것도 없다. 나만해도 그리운 가족들을 다시 보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렸으니.


“그 심정은 저도 이해가 갑니다.”

“아직 철이 덜 든 새파란 젊은이들이나 결혼을 했더라도 자포자기한 인간들은 직업인으로서도 여러가지 위험이 있다오. 우리는 급료를 잘 주는 배이니만큼 사람을 가려 뽑을 수 있지요. 우리가 새로 선원을 받을 때 보는 것들은 기술과 경험 이상으로 그런 책임감이라오. 우리는 대신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충분한 급료와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지요. 물론 안전이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 만일의 경우 보험금의 일부는 선원들의 몫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오. 이 정도면 죽어도 이 배에서 죽는 게 낫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지요.”


‘죽어도 이 배에서 죽는다.’ 앞뒤로 곰곰히 털어봐도 역시 그랬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단순히 카리스마 같은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는 ‘대가’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돈으로만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 세버렸군요. 그야 어쨌든, 이제 나는 뱃사람으로서든 가장으로서든 무엇으로든 더 증명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건 없는 상태입니다. 그냥 바다가 좋고 항해가 좋아서 내 삶이 허락하는 한 배를 타려고 하는 거지요. 선원들의 생활과 미래를 책임지고 투자자들에게 적절한 수익을 안겨주는 정도가 무겁게 생각하는 책임이요. 나 자신도 투자자이기도 하고. 이렇게 몇 번 더 대서양을 건너고, 그러다보면 이제 항해는 못 이길 나이가 되거나 혹은 병이 걸리거나 하겠지요. 흘러가다가 스러지는 게 삶이란 거니까.”


선장은 쓸쓸한 소리를 하면서도 얼굴은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나로서는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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