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후한 대우와 복지의 이면

장례식 예포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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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와 비구름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었지만 결이 조금 달랐다. 행운이었다. 콜드웰 선장은 배의 진로를 약간 더 남쪽으로 틀어서 비구름의 가장자리를 최대한 바깥쪽으로 통과하는 길을 택했다.


“여기서 더 틀어버리면 무역풍도 놓치고 표류할 수도 있소. 바다에서 폭풍보다 무서운 것이 무풍이라오. 그리고 이 철의 바다는 큰 폭풍을 일으키기엔 물이 차서 엄청난 허리케인은 없을 거요. 하지만 잘못해서 비구름 중심에 들어가서 대서양을 건너는 몇 주간을 계속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며 시달리는 것도 큰 일이니까 되도록 피해가야지요.”


배는 나로서는 이제껏 겪어본 적이 없을만큼 흔들리고 있다. 멀미가 안 나는 것은 순전히 제대로 긴장을 탄 덕분인 것 같다. 비도 유럽의 기준으로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지만 선장도, 다른 선원들도 어느 정도 침착을 되찾은 것이 느껴진다. 아마 이런 정도의 비바람은 항해에서 제법 겪어본 베테랑 선장과 선원들이라 그런가 보다.


아직도 브릿지에서 직접 키를 잡고 있는 선장에게 따뜻한 밀크티를 한 잔 건네러 올라갔다.


“이제까진 순풍이라서 몰랐는데 역시 항해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군요. 비구름을 피한다고 능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가서도 안 되고···”

“그렇소. 대양항해란 의외로 섬세한 일이라오. 이 거대한 바다가 무질서한 것이 아니고 다 바람과 해류의 결이 있고 계절에 따른 변화의 규칙이 있지요. 그나마 수많은 배들이 오가며 기록한 해도가 있어서 그런 섬세함도 가능한 거요. 이제 바람과 조류의 대략의 주기라든지 방향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알고 있으니 말이요.”


뱃사람에게는 해도와 항해일지가 있다. 요리사에게는 레시피가 있는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그 레시피만 붙들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고 상황상황에 맞추어 응용을 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이 뱃사람들도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는 것도 같다. 어쩌면 세상일이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오르려면 다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고맙습니다. 존슨은 뻬뺑씨가 잘 수습해주셨다고 들었소.”

“수습이랄 건 없고 그냥 지하 선창에 옮겨두었습니다.”


부대자루에 싸서 외양간 자리에 둔 것을 생각하면 잘 수습했다는 선장의 말에 오히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아니오, 다들 정신이 없을 때인데 큰 도움이 되었소.”

“시신은 잘 씻어서 옷이라도 갈아입히려고요. 지금은 피범벅이라서, 아무래도 가는 길에는 좀 단정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고마운 일이요. 그렇게 해주시면 비구름을 벗어나고 나서 적당한 때에 장례를 치뤄주도록 하지요.”


그 정도는 되어야 치사를 받을 자격이 있겠지.


요리사란 어차피 죽은 생물의 살과 뼈, 피를 다루는 직업이다. 시신을 말끔히 정돈해주는 일 정도는 해본 적은 없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사람의 시신이라니, 그것도 몇 주간이나 같은 배를 탔던 아는 사람의 시신이라니. 소나 돼지의 배를 가르고 뼈를 발라내고 하는 일은 아무 느낌 없이 하겠지만 사람의 시신을 염하고 단장하는 것은 그렇게 거친일도 아니건만 어딘가 어두운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바람은 이제 한결 잦아들어서 안도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긴장이 풀어지니 오히려 멀미가 올라오려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선장은 아직도 직접 키를 잡고 있었고 이제 잘 시간이 되었지만 선원들 아무도 잠들지 않고 있었다.


하긴 바다 날씨의 변덕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닐 것이다. 멀미를 토해낼 때도 아니고. 폭풍속의 배 위라도 아직 로코코의 궁정인의 우아함을 포기하지 않고 있단 말이다.


화재 위험이 있는 갤리에는 불씨만 보관하고 모든 불을 다 끄도록 했고 선실과 선창의 등불도 다 끄도록 했다. 비가 억수로 퍼부으니까 큰 화재가 날 일은 없을 것 같아도 배의 선창에는 독한 증류주며 화약이며 인화물질이 많아서 이런 조심은 지나친 것이 아니다.


자정을 지나자 바람이 잦아들고 빗방울도 쏟아붇는 것 같던 것이 투둑투둑 굵고도 성긴 빗줄기로 바뀌었다.

칠흙 같은 어둠속이라 이제 깨어있어야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게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선 모양이라서 당번 선원들 빼고는 전부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해먹에 몸을 파묻으며 생각해보니 이건 참 파란만장한 하루였구나. 무엇보다도 존슨의 울컥울컥 토해내던 피와 비현실적으로 평온한 죽은 얼굴이 떠올랐다. 평소 말을 섞거나 친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왠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비가 눈물이라면, 굵은 사나이의 눈물이다.




선장의 판단은 옳았다. 비구름은 심각한 폭풍은 아니었고 진행방향도 서북서 정도로 우리와는 달랐다. 진로를 살짝 남쪽으로 잡는 것 만으로도 비구름의 바깥쪽 궤도를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로 벗어날 수 있었다. 비구름이 확실히 사라지고 난 후에는 궤도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시 살짝 북으로 선수를 잡았다.


존슨의 장례는 비구름을 벗어나 항로를 변침한 벗어난 바로 다음날 치러졌다.


죽은이의 몸은 경직되어서 옷을 벗겨낼 수 없어서 칼로 찢어내야 했다. 온몸을 깨끗이 닦고 부러진 뼈를 대충이라도 맞추어 놓고 하는 작업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멍한 기분으로 힘들고도 험한 일을 마치고는 깨끗한 아마포로 몸을 감아서 얼굴만 내놓았다.


이렇게 정돈된 시신에 선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작별인사를 하고는 바다에 수장하는 것이다. 다들 크게 슬퍼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눈물을 쏟아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없다. 존슨이란 사내가 사람들 사이에 평판이 좋지 않거나 해서는 아니고, 이럴 때 슬픔을 드러내는 것을 나약함으로 보는 뱃사람들의 문화 때문인 것같다.


베르사이유의 궁정에서라면 필생의 정적이 죽어서 속으로는 춤을 추고 있을지라도 겉으로는 친척이라도 돌아간 것 같은 애도를 표하는 능력이 필수인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문화다.


존슨의 가는 길은 어쨌든 외롭지 않았다. 콜드웰 선장은 특별히 예포도 발사해서 보내주었으니까. 일반 상선이고 군함이고, 예포를 쏘는 것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장례 때, 혹은 여러 명의 합동 장례를 치를 때 정도이다. 그만큼 콜드웰 선장의 선원들에 대한 복지는 장례에서도 소홀한 면이 없었다. 존슨의 죽음에 대한 보험금과 미지급된 급료도 영국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확실히 전달될 것이다.


“누가 죽고나면 산 사람 입장에서는 다 끝이 아닐까요. 죽어서 천국에 간들, 지옥에 간들, 그건 이 세상의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마련이니까, 이 예포 한 발은 그들에 대한 메시지기도 하지요. 걱정마라.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끝까지 챙기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전하는 거지요.”


장례가 산 사람들에 대한 메시지라는 것은 궁정에서도 숱하게 보아왔다. 여기 배에서와 궁정에서의 차이라면 궁정에서는 모두가 자기 역할을 알고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 욕망의 메시지를 발산하지만, 그래서 온갖 음모와 암투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지만, 여기 배에서는 선장만이 그런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해주고 있달까. 그러고보면 역시 궁정이란 피곤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도 죽음도 단순한 뱃사람들의 세계는 분명 그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런가하면 궁정의 하인만도 못한 대우를 맏으며 목숨까지 바치는 선원들에게는 애잔한 마음도 들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힘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그래서인지 머리속에 계속 맴도는 생각.


‘결국 사람의 목숨도 기꺼이 바치게 하기 위한 복지란 말인가···.’




존슨을 보냈던 폭풍우 말고는 딱히 큰 문제가 없는 순항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한 달 가까이 지난 항해는 전체적으로는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 브리스톨에서 마데이라를 갈 때도 그랬지만 대서양 횡단도 이제까지는 기록적인 순항이라고 한다.


“내 생애 이렇게 빨리 대서양을 건넌 건 처음인 것 같군요. 배가 좋은 탓도 있겠지만 정말 신이 입김이라도 불어주는 느낌이요.”


순풍의 항해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빨리 항구로 들어갈수록 좋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전한 항해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바다에 적게 머물수록 사건, 사고를 겪을 확률이 줄어든다. 폭풍우, 질병, 해적, 그야말로 바다는 위험의 도가니다.


선장이든 선원이든 일단 바다에 나오면 하루라도 빨리 다음 기항지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선원들의 반란이 일어나는 주요한 이유도 대부분 일정이나 이익에 쫓긴 선장이 눈앞의 기항지를 패스하고 지나려고 할 때가 포인트가 된다는 것도 배웠다.


일단 안전하게 항해를 마치고 나면 모든 사람의 우선적 관심사가 되는 금전 문제에 있어서도 순항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선 빨리 움직이면 선원들에게 지급하는 급료가 줄어든다. 보급품의 소비도 줄어들고, 일부 잉여 보급품은 팔아서 수익을 남길 수도 있다. 특히 와인이나 맥주는 아메리카에서 비싸게 팔린다.


물론 대서양무역의 이익에 비하면 이런 돈이야 소소한 것이지만, 바로 그 소소함 때문에 선장들이 선심을 쓸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콜드웰 선장은 남은 물자의 처분 이익은 선원들의 보너스로 남겨주는 것을 방침으로 하고 있다. 빠른 항해로 급료가 적어지는 면도 있으니 그에 대한 벌충의 의미도 있다. 급료를 더 받기 위해서 바다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선원도 없지만, 그래도 항해를 빨리 마치고 나면 역시 예상보다 줄어든 수입에 섭섭함이 있는 게 사람이다. 그런 섭섭함까지도 긁어주는 정책인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세인트주드호와 같은 조건으로 일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선원들이 만족을 넘어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같이 생활하면서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대우와 조건들을 챙겨주는 것이라면, 글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니 배의 고용인이 아니라 손님이나 친구 같이 대해주는 콜드웰 선장의 처우도 왠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목숨을 같이 건 이 운명공동체에서 어쩐지 나만 겉도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렇다고 좋은 대우를 받았으니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감마저 드는 것이다. 사람이란 목숨을 바쳐서 이뤄야할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투자자의 이익 같은 것은 아닐 것인데, 달콤한 대우에 끌려서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입밖으로 내는 것은 어쩐지 해서는 안 될 일 같았다. 로코코의 가식과 음모에 익숙한 궁정인이 아니라 단순명쾌한 선원의 기준으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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