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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폭풍속에서 존슨을 보내다

폭풍을 만난 범선이 대처하는 법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지던 속도도 며칠 지나자 적응이 되었고 오히려 순풍이 아닐 경우에 배가 느려지는 게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러다가 다시 순풍이 불 때에는 붕 떠서 달려나가는 것 같은 기분은 정말 최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뱃일에 익숙한 선원들도 순풍의 항해에는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나서 이제 사방 어디로 봐도 육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로 나왔다. 


무역풍이란 정말 고마운 바람이어서 대체로 일정한 방향으로 꾸준히 불어주니 돛을 조정하는 일 등 항해에 필요한 작업들도 연안항해보다 훨씬 적어지고, 선원들의 긴장감이 슬슬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배의 보급품으로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대개는 해 본 것 같아서 슬슬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우(선수) 쪽의 난간에 기대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지는 날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아지경에 잠시 빠졌다 나오면 나도 모르게 새로운 요리들의 구상이 끝나있는 것이다. 주방에 오면 저절로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과 조미료를 배합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도 놀라게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가 최면 같은 상태에 빠져있던 어느날, 마스트톱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렸다.


“전방에 검은 구름이다아!”


육안으로는 망망한 수평선에 푸른 하늘과 더 푸른 바다가 닿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시야에는 무언가가 감지된 것이다. 검은 구름이라면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물이 떨어졌을 때야 반가운 식수의 보급원이겠지만, 그보다는 자칫 허리케인의 가장자리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엄청난 고생이라서 순식간에 배의 분위기는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심상치 않군. 아무래도 피해갈 길이 없는 것 같은 걸.”


콜드웰 선장이 망원경으로 한참을 관찰하고 난 후에 내린 결론이다.


“어쩔 수 없지. 대서양을 건너면서 비구름 한 번 안 만나고 갈 수야 있나.”


선장이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혼잣말을 했지만 그 말속에도 가볍지 않은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선장님, 폭풍인가요? 제가 뭐 준비할 것은 없을까요?”

“허리케인이 부는 철은 아니지만 이런 큰 바다에서는 저런 정도 규모의 구름이라면 항해자의 입장에선 악몽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오. 어느 정도의 강도와 범위인지가 문제겠지요. 자칫 잘못 말려들면 대서양을 저 구름더미와 같이 건너거나, 아니면 저 구름 덕에 못 건너게 되는 수가 있다오.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고, 이럴 땐 든든히 잘 먹어두는 게 최고니까 언제나와 같이 선원들 식사를 잘 부탁합니다.”

“넵!”


꽤나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나는 반사적으로 갤리로 뛰어내려갔다. 선장도 항해사와 갑판장, 조타수를 불러모아 지시에 들어갔다.


“우선 돛을 내린다. 비구름의 진행방향을 파악할 때까지는 속도를 줄이고···.”

“선장님 닻을 내려보는 건 어떨까요?”


1등 항해사인 멜빈이 제안한다.


“글쎄, 이쯤이라면 수심이 깊어서 닻이 바닥에 닿을 것 같지는 않다. 괜히 헛수고를 하느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하자.”

“넵.”

“조타는 내가 직접 하겠다.”


선장이 브리지에서 배의 키를 직접 잡았다. 선장이 키를 잡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이렇게 장거리 항해를 하는 큰 배는 ‘헬름스맨(Helmsman, 조타수)’이라는 조타를 전문적으로 하는 선원이 따로 있고, 선장과 헬름스맨은 서로를 도와가며 교대로 일한다. 지금은 상황이 긴급하니만큼 선장이 키를 잡았지만 헬름스맨도 브리지를 떠나지 않고 옆에서 지키고 있다.


“돛을 접는다. 즉시!”


보선(Boatswain, 갑판장) 해먼드가 우렁차게 외치자 선원들이 마스트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돛을 내린다고 하지만 이 과정은 무슨 매듭 같은 것을 풀면 죽 내려오거나(그건 돛을 펼 때의 경우다) 혹은 윈치 같은 기계장치로 돌려서 감아올리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사람이 직접 기어올라가 돛을 말아서 묶어두는 것이다. 돛 한 조각의 크기는 대략 20미터 폭에 7미터 길이가 넘는다. 그러니 한 사람이 이 돛을 감아올릴 수는 없다. 매인마스트의 큰 돛은 돛대를 중심으로 좌로 3명, 우로 3명이 하는 작업이고 이걸 다시 상중하 3단에 걸쳐서 한다. 


위험하기로는 어쩌면 이 작업이 최고일 것 같다. 배 본체가 살짝 흔들린다고 해도 마스트 위에 오르면 그 흔들림은 엄청난 출렁임이 된다. 시계바늘의 중심부는 눈꼽만큼 움직여도 바늘의 끝은 훨씬 큰 움직임을 보이는 것같이 말이다. 


세인트 주드호의 경우 주돛대의 높이는 30미터가 넘는데, 거기를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타고 오르는 것이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무리 가벼운 경우라도 여기저기가 부러지는, 아니 대개는 목숨을 건지기 어려운 위험한 일이다. 그나마 지금은 본격적으로 비바람이 불기 전이니 망정이지 폭풍우 속에서라면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다. 천지사방 요동치는 배에서도 가장 흔들림이 큰 곳이 바로 마스트 위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돛을 편 상태에서 바람을 잔뜩 받으면 배의 무게중심이 높은 곳에 걸려서 배가 뒤집어지기 딱 좋다. 그러니 돛 접어올리기는 목숨을 걸고라도 반드시 해야하는 작업이다.


“이래서 술들 좀 작작 먹으랬더니···”


선원 하나가 눈에 띄게 동작이 굼뜨고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는 갑판장 해먼드가 혀를 찼다. 그 사이에 먹구름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범위 안에 들어왔고 바람이 거칠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 큰 배라도 전복될 수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실감이 사람을 확 덮쳤다.


이럴 때일수록 내 할 일을 잘 해야지 패닉해봐야 소용이 없다.


비바람이 불면 추워질 것을 대비해서 달걀과 닭뼈로 따끈한 스프를 끓일 준비를 하고 고기는 아직은 남아있는 신선한 채소들과 볶아서 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배 아래의 갤리에서는 거센 바람도 느껴지지 않고 파도의 흔들림도 견딜만 한 정도였다. 헌데...


갑판 위로 천둥이 치는 것같은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인가?’


나도 다른 주방 선원들도 반사적으로 계단을 달려 갑판 위로 달려나갔다.


배의 갑판 중간 정도에는 사람이, 말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그 취해서 비틀거리며 마스트를 오르던 선원이다. 몸의 사지가 기괴하게 뒤틀린 채 말이다. 갑판의 튀어나온 무엇 위에라도 떨어졌는지 흉곽은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와 있고 뒤통수로도 이미 피가 흥건했다. 아직 숨은 헐떡이고 있었으나 그 숨을 타고 피가 꿀럭꿀럭 입으로 나오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아 젠장, 정말 술 좀 작작 마시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해먼드는 가련한 선원의 운명보다는 자기 충고를 따르지 않은 것이 더 괘씸하다는 듯이 되뇌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고, 오히려 선원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해먼드는 무지막지하게 거칠기는 해도 그렇게 비정한 사람은 아니니까. 


단지 선원들은 살갑게 말하는 법을 모른다. 혹여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게 사람을 대하다가는 계집애 취급받아 무시당하고 놀림받기 딱 좋은 것이 선원들의 문화니까. 나도 초기에 배에서 몸개그 한 번 했다가 톡톡히 겪은 바다.


그야 어쨌든, 해먼드가 망연자실해 있는 나와 부하 선원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빼뼁씨, 미안하지만 시신 수습을 좀 부탁합니다. 돛을 내리는 것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으니 말이오.”

“네···? 넵..”


어안이 벙벙하지만 이런 비상 상황에서 한 배를 탄 입장으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할 생각도 없었고.


“페드로! 빈 푸대자루를 몇 장 들고 와!”


무작정 등 뒤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는데 페드로가 이미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이 재빨리 자루를 들고 뛰어올라왔다.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지 쯔쯪.”


페드로도 짠 듯이 같은 말을 지껄인다. 술에 절어 있기는 다들 비슷하면서 말이다.


“일단 시신을 수습하자. 갑판은 어지러우니까 자루에 싣고 지하 선창으로 내려가자.”


페드로와 나는 자루에 시신을 올렸다. 기괴하게 뒤틀린 몸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지만 둘이 각각 팔 두쪽과 다리 두 쪽을 잡아서 올렸다. 피는 제대로 닦지도 못해서 내 옷에도 페드로의 옷에고 범벅이 되고 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페드로가 자루의 앞에, 내가 뒤에 서서 좌우 귀퉁이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고 드니 작달막한 키에 비교적 마른 편인 선원의 몸은 거뜬히 들렸다. 숨은 마지막 몇 번을 더 쉬면 꺼질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 아무 치료도 없이 죽음의 준비를 시켜야 한다는 것에 순간 마음이 저렸다.


“일단 닭장 옆으로 가자, 셰프.”

“그래야겠지.”


닭장 옆은 소들의 자리이기도 했다. 이미 오염된 그 곳이 이 피투성이의 시신, 아니 아직은 아니지만, 어쨌든 시신이 될 것이 확실한 이 몸뚱이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불편하게 할 곳일 것이다. 


‘무우~’


시신의 피냄새를 맡았는지, 배의 격렬한 흔들림 때문인지 소가 곱지 않은 소리를 내었다. 


“존슨. 잘 가라.”


소의 반응은 무시하고, 그래도 최대한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자루 들것을 내리며 페드로가 중얼거렸다. 사내는 이제는 정말 시신이 된 것 같았다. 꿀럭거리던 피의 내뿜음은 이제 멈춰 있었다.


“뱃사람이 죽을 때 가장 억울한 것은 최후의 유언 한 마디 없이 죽는 거지.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보통은 그래도 뭐라도 한 마디 할 시간은 있는 법인데···.”


나는 뭐라고 할 말도 없고 말을 해야하는 건지도 몰라서 잠시 멍해있다가 존슨이라는 이 선원을 위해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페드로도 같이 고개를 숙이더니 나보다 먼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다시 올라가지. 다들 제 몫을 안 하면 이 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유언 한 마디 없이 가야할 수도 있으니 우리도 우리 일을 해야지.”


바람은 점점 거칠어지고 배의 흔들림도 커지고 있었다. 페드로의 말이 맞다.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의 일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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