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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뻬뺑, 베르사이유의 로띠쉐(rôtisseur)

Roaster is the Chief of Royal kitchen


“어찌어찌 왕의 행렬을 따라 베르사이유까지 간 것, 그리고 안느의 푸줏간에서 일하면서 궁을 드나들게 된 것까진 말씀 드렸지요.”

“네. 궁에 드나들게 되었으니 이제 궁정인이 되는 것도 시간 문제였겠소만.”

“그럴리가요. 일개 외부업자의 고용인인 제가 오가며 얼굴 정도 익혔다고 쉽게 궁정의 고용인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담 또 어떤 능력을 발휘한 거요?”


선장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재촉해왔다.


“일단 궁에 오가게 된 것이 큰 기회는 맞았습니다. 어느날 메뜨르도뗄이신 미셸 바텔님과 딱 마주쳤지요. 그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렸어요. 궁에 사람이 필요하면 꼭 저를 써주십사,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지만 특히나 음식을 다루는 일은 자신이 있다고 말이지요.”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이요?”

“계속 드나든다고 뾰죽한 수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좀 당돌하게 보일 위험은 있지만 마주친 그 순간 바로 말씀을 드렸지요. 계획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뭐라시던가요?”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표정이셨습니다.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지만 어느날 납품을 하러 갔더니 쟈끄라는 주방 고용인이 말하더군요. 다음주부터 궁에서 일하도록 하라고요.”

어려서 겁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역시 원하던 생활을 눈앞에, 거의 손안에 만저볼 정도까지 다가갔는데 계속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히는 것같은 느낌을 단숨에 깨버리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달려든 보람이 있었군요.”

“네. 원래도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그날 이후로는 확실한 원칙이 생겼습니다.”

“어떤 원칙이지요?”

“해서 좋을지 아닐지 모를 때에는 해보고 후회하자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해보고 실패하면 실패도 공부가 되지만 그냥 있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말이지요.”


선장은 흐믓하게 웃었다. 막냇동생, 혹은 조카뻘 되는 나의 소년시절이 상상이 되는가 보다.


“그렇게 궁의 주방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급료도 거의 없는 일이었지요. 잘 먹고 입는 대신 받는 돈은 아마 이 배의 경력 선원 월급 정도를 연봉으로 받았을 겁니다. 그래도 여러가지로 파리의 빈민가 생활보다는 훨씬 나았거든요. 일단 배가 고픈 일은 없었지요. 배가 고프기는커녕 세상의 온갖 산해진미를 대궁밥으로나마 먹어볼 수 있고 온갖 향기로운 와인도 잔 밑에 남은 것이나마 부족하지 않게 마셔볼 수 있었지요.”

“그건 내가 들어도 부러운 이야기요.”


선장이 정말로 입맛을 다셨다. 음식을 다루는 사람은 직접 먹고마셔봐야 그 경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남은 음식과 술이라지만 베르사이유 바깥 세상의 사람들은 평생 돈을 주고도 누리지 못할 것들이 가득했다. 선장도 그걸 알기에 입맛을 다시는 것이리라.


“입성은 또 어떻고요. 접시를 나르고 설거지를 하는 저같은 소년도 비단과 레이스로 장식된 옷을 입는 것이 당연한 곳이지요. 태양왕 루이 14세 폐하의 궁정에서는 아무도 초라하거나 의기소침할 수 없었으니까요.

“미소년이 옷도 잘 입었다니, 그것참 볼만 했겠소.”

“하하, 인기가 제법 좋았던 시절입니다.”


궁안에 들어오고 여인네들의 관심이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녀들뿐 아니라 귀부인들도 슬쩍 나를 유혹하곤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궁안에 들어온 이 때는 못이기는 척 유혹에 넘어간 적도 많았다. 사실 그런 유혹을 거절할 나이도 아니었고,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오히려 귀부인내들의 눈에 밉보이면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참고로 왕이나 대귀족들의 하인, 시녀는 꼭 평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높은 지위의 귀족들도 상징적이나마 왕이나 공작의 시종, 시녀라는 직위를 영광스럽게 받곤 했다. 오죽하면 마담 뽕빠두르도 여후작이라는 정식 작위보다 여왕의 시녀로서 임명되었을 때 더 감격했다고 하니까. 마담 뽕빠두르로서는 은상보다도 여왕으로부터 일종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공인하는 직위이니 감개가 무량하긴 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귀족들의 시종, 시녀 역할은 허드렛일 하는 평민 하인들과는 별천지의 이야기다.


하지만 남녀관계는 남녀관계. 신분에 앞서는 강렬한 욕망이란 것이 있다. 특히나 궁에 들어온 귀족부인들은 불행한 결혼의 탈출구로서 시녀 생활을 택한 경우도 많아서 당시의 나같은 미소년 스타일이나 건장한 근위병들은 종종 이런 부인들의 유혹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 로맨스도 궁금하긴 하지만 역시 베르사이유의 수석요리사가 어떻게 되는지가 더 궁금하네요. 늙으면 연애놀음이란 게 다 시들해져서 말이오.”


선장이 이야기를 재촉했다. 나도 이제와서 어린시절 로맨스를 들쳐서 자랑하거나 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접시를 닦고, 감자나 양파 껍질을 벗기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그렇게 허드렛일로 시작해서 여러가지 기술을 익히고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각종 기물과 도구의 사용법을 익혀간지 어언 10여년이 지났지요. 그렇게 어엿한 청년이 되고 주방에서도 당당히 한 몫을 하는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솜씨가 좋아 ‘신통한 오귀스뜨’라는 별명도 생겼습니다. 순조로운 생활이었지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또 큰 기회를 잡았습니다.”

“드디어 운이 트이는 시기가 온 모양이군요.”

“네 운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저만 잘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지요.”


운이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일찍이 로띠쉐(rôtisseur)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우선 궁정의 주방이 돌아가는 방식을 좀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연회를 한 번 한다면 수많은 요리가 만들어지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음식은 당연히 고기겠지요. 그것도 스튜나 염장한 것, 소시지 같은 가공한 고기가 아니라 잘 구운 생고기가 주인공이 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물론 고기를 굽는 일이됩니다. 고기는 어떤 연회나, 혹은 그저 일상적인 식사에서도 빠져서는 안 되는 식재료이며 식탁의 가장 중심이니까요. 따라서 고기를 굽는 일은 주방에서 가장 솜씨가 좋고 경험도 많은 사람이 담당하는 일입니다. 대개 실질적인 주방장은 고기굽는 로띠쉐가 맡지요.”


이제는 오븐이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지만 역시 고기는 직화에 구워야 맛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그러니 말할 것도 없는 것이 로띠쉐의 중요성이다.


“뻬뺑씨가 로띠쉐가 된 것이 몇 살 때였다고요?”

“궁에 들어간 지 10년 남짓이니 아직 서른도 되기 전이었습니다.”

“그건 과연 대단한 벼락출세라고 할만 하군요.” 

“명목상의 주방장은 궁재(宮宰)인 메뜨르도뗄(maître d'hôtel)입니다만 음식을 비롯해서 다른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음식은 연회에서, 또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 메뜨르도뗄은 대부분 훌륭한 요리사입니다만, 주방에 붙어서서 고기를 굽는 일 같은 것을 직접 할 수는 없는 직분이니까 로띠쉐가 주방장 대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처음 주방에 들어간 그때도 고기굽는 일은 20년째 그 일을 담당하는 로베르의 일이었다. 로배르는 특이하게 고기굽는 그 일만 담당했었다. 하긴, 세월이 감에 따라 눈도 침침하고(항상 불을 다루는 로띠셰들의 직업병이다) 미각은 제대로 남아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거동도 재빠르지 못해 노쇠한 티가 났었으니 사람들을 통솔하거나 하는 일은 척봐도 무리였다. 그런 로베르지만 고기만은 부위별로 폐하의 식성에 맞춰서 척척 구워냈다. 


“이 고기굽는 로띠쉐 일이 어려운 것은 나무마다 향이 다르고 타오르는 속도와 온도도 다르고 거기에 고기도 짐승과 부위마다 맛이 다 다르고 간이 된 상태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왕실의 궁정이라면 소나 돼지, 가금류 같은 고기만이 아니라 자주 있는 사냥에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짐승들을 잡아들이니까 이런 다양한 육류를 척척 손질하고 큐어링해서 구워내는 것은 매번 새로운 도전입니다. 이걸 제대로 구워내는 것은 생각하고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좀 해보면 어떤 감각이 생기는, 그런 타고난 천분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과연. 바다의 조류와 바람을 타는 것도 비슷하지요. 천변만화라 일일히 손잡고 가르쳐줄 수도 없고, 그때 상황에 맞추어서 대처하는 것은 경험과 더불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각의 문제도 있지요. 오래 했다고 꼭 잘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네 바로 그런 경우 같습니다. 게다가 루이 14세 폐하께서는 바다의 신 못지않게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주인이셨지요.”

“하지만 관대한 분이시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주방의 일개 스태프가 제법 번듯한 부르주아가 되어 궁을 나가는 경우도 드믈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의 루이 15세 폐하는 성품이 온화하신 편이라 음식을 가지고 타박을 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선대 루이 14세 폐하 때에는 고기 구운 것이나 다른 음식이 마음에 안 드시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반대로 음식이 마음에 드시는 날이면 반대로 보석이나 옷가지 같은 하사품들을 주시기도 하셨다. 


사실 불호령이 안 떨어지는 날이면 대개는 뭔가 관대한 선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실 하인들은 급료보다 이런 하사품에 목을 메달기는 귀족 하인이나 평민 하인이나 같은 입장이었다.


“베르사이유궁을 지으신 이유부터도 그렇지만 폐하에게 왕실의 연회란 단순히 먹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통치행위이며 국가기간산업을 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연회는 대충 맡기시지 않고 일일히 테이블에 어떤 음식이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를 그림으로 그려서 지시를 하실 정도였지요.”

“아니 군주께서 직접 그런 것까지 지시를 한단 말씀이오?” 


그렇다 마다. 폐하의 요리에 대한 이해와 애정은 그 정도였다. 사실 프랑스의, 나아가 유럽의 연회 스타일에 중요한 혁신 한 가지는 분명 루이 14세 폐하께 공을 돌려야 한다.


“추운 나라의 야만인 취급을 받던 러시아 스타일을 과감히 도입하신 것도 루이14세 폐하 때입니다. 한 상에 가득 차려내는 - 그래서 그림까지 그려서 배치를 지시하신 거지요 - 프랑스식은 음식을 가장 적합한 상태에서 즐길 수 없다고 하시며, 러시아식으로 하나씩 순서대로 내오는 방식으로 바꾸라 하신 것이지요. 프랑스 왕실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한 이후로 코스식 연회는 유럽의 표준방식이 된 것이고요.”

“아, 그러게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코스요리란 것이 없었는데, 그게 프랑스 왕실로부터, 아니 러시아로부터 온 유행이었군요.”


선장이 어렸던 때분 아니라 지금도 코스요리란 상류사회 전용 습관이다. 음식을 순서대로 내간다는 것은 한번에 차려내는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대규모 스태프가 상주하는 대귀족의 집안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도로 요리에 신경을 쓰셨던 폐하시니만큼 요리인들을 아끼는 마음은 단지 아랫사람을 자애롭게 대하는 수준이 아니었지요. 물론 기대에 못 맞추는 사람들에겐 엄격하셨지만요. 고기구이라면 오직 로베르만이 폐하의 까다로운 취향을 맞출 수 있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베르사이유의 로띠셰 자리에 있었던 거지요. 이런저런 은상으로 돈도 많이 벌었을 겁니다. 그걸 양껏 써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뻬뺑씨는 그 로베르의 후임이 된 거겠소?”

“그렇습니다. 그 로베르가 어느날인가 정말 두 손을 들어버렸거든요. 갑자기 불 앞에서 쓰러지더니 그 다음날부턴 주방에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죽지는 않았지만 혼자는 거동도 힘들다고 하더군요. 나이도 나이인데 매일 연기를 맡으며 뜨거운 불앞에 있으니 시력이 상한 지는 오래 되었고 밭은 기침을 하는 경우도 잦았지만 늘 거기에 있는 사람이라 모두들 특별한 걱정을 안 했던 것뿐이지요. 하지만 로베르에게는 하루하루가 모든 힘을 다 쏟아붓는 힘든 여정이었던 걸 그제야들 모두 깨달았습니다.”

“이제까지 버티느라 회복할 기력 같은 것도 남겨지지 않았던 모양이지요. 어찌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최후까지 힘을 다 쏟아서 일을 한다는 것도.”


글쎄, 나로서는 그게 왜 부러운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면 쉬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길도 내주고, 그런 게 나이든 사람의 권리이자 역할 아닐까? 


그야 어쨌든, 로베르는 바로 다음날 궁 밖으로 내쳐졌다. 냉정하지만 로베르 같이 중한 병이든 자는 궁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 규칙이다. 


“이제 로베르는 더 일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 바로 그 순간부터 주방에서 어느 정도 실력이 있고 연차가 된다는 사람들은 다들 로베르의 후임 자리를 노렸습니다. 하룻밤 연회를 잘 치르면 금화나 다이아몬드가 하사되는 자리니까 다들 이 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갈까, 유력하다는 당사자들뿐 아니라 드나드는 시녀들과 공급업자들까지도 입방아를 찧으며 한두 마디씩 보태며 궁금하고 있던 차였지요.”

“뻬뺑씨도 유력한 후보였겠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십대에 로띠쉐가 되었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서 저는 꿈도 아 꾸고 있었고 사람들도 저를 가지고 이야기거리로 삼진 않았습니다.”

“그럼 그 예상밖의 인선은 어떻게 된 겁니까?”


결국 이 자리를 임명하는 것은 메뜨르도뗄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미셸 바텔님은 로베르가 궁을 나간 바로 다음날 한 사람을 지명했다.


“고기 굽는 능력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야, 타고 나야지. 오귀스뜨, 너는 이제껏 채소와 과일을다듬는 법을 배웠다. 소와 송아지, 양과 돼지, 닭과 오리, 거기에 온갖 사냥감들을 손질하는 법을 배웠고 소금과 향신료, 과일과 소스로 채우고 간하는 법도 배웠다. 이제부터는 고기를 굽도록 해라. 신이 주신 감각을 타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사 기도를 올리려므나.”


미셸 바텔님이 따뜻하게 말씀해주신 그 때의 행복감과 멍한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보다 회상해보는 지금 더 짜릿한 느낌이랄까.


“아직도 그 얼떨떨한 기분이 생생합니다. 저만 아니고 다들 한동안 멍해 있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모든 주방 스태프들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런 박수소리는 그 후로도 들은 적이 없었지요. 뭐 속으론 질시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취임식을 치룬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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