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왜 악(惡)이 되는가?
다시 말하지만 진보가 더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 어쩌면 개인적인 수준에서 도덕성은 보수가 더 나을지도 몰라. 보수당 지지하는 예의 바르고 자선사업하는 영국신사나 공화당은 지지하되(트럼프는 말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관대한 남부의 원리주의 백인 목장주님 같은 프로토타입을 떠올려보면 보수주의자도 상당히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이미지만 그렇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좋은 보수주의자의 프로토타입 같은 것이 있을까? 나는 떠오르는 게 없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총칼로 자국민을 학살하고, 정치적 반대자는 고문, 투옥하는 군인 정치인들. 팩트 무시하고 어거지 써서 여론조작하고, 그걸 공로라고 정치권에 입성하고 기업에서 뒷돈 받아먹는 언론인들. 세입자 권리 무시하고 생존권 짓밟고 엄동에도 쫓아내는 건물주들과 그 작전을 지휘하는 경찰 및 공무원들. 뭐 이런 사람들만 떠오르네.
한국의 보수는 경주 최부자나 찾는 수준, 아니면 민주주의고 시민의 권리고 닥치고 굴종하면서 밥은 먹고 살게 된 박정희 시절이나 회고하는 게 전부 아닌가?
진보는 그래도 백기완, 김근태 같이 자기 몸 부서져라, 말그대로 목숨걸고 싸운 민주투사들이 있지. 정말 목숨으로 무언가를 지키고 사죄하려 한 노무현, 노회찬 같은 사람들도 있고. 노동자, 농민, 여성들, 장애인, 동물과 환경을 위해 제도권 안팎에서, 거리에서, 인터넷으로 싸우고 여러가지 활동을 벌여온 많은 사람들이 있지. 다시 말하지만 자기 기득권 내려놓고 다른 존재들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은 악을 써서 저만 잘 살겠다는 인간과는 격이 다른 거거든.
그러니 진보와 보수의 구도가 도덕-비도덕의 구도를 띄게 된 것도 이해가 가지. 20세기 군부독재 시절에는 사실 진보라는 말도 별로 안 썼고, ‘양심’이라는 말을 많이 썼어. 양심수, 양심선언 같이 말이야.
사상과 주의 이전에, 정치적인 노선 이전에, 인간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져버리는 사람들과 그 후예들이 지금의 보수고 거기에 맞서 맨주먹 붉은피로, 언론에는 실리지도 않는 함성으로 로 군부독재의 무시무시한 폭력을 극복하고 여기에 이른 사람들이 진보인 거지.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87년 이전의 한국은 지금의 중국보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자유가 더 보장되던 시절은 아닌 것 같아. 중국이 지금은 세계2위 경제대국이지만 중국인이 되고싶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 먹고사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거지. 양심과 도덕, 그런 것에 가치를 두어야 자유와 민주가, 또 거기서 문화와 창의성이 자라나는 거고 그게 또 경제로 이어지는 선수환이 형성되는 거겠지.
진보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도덕적 우위는 필수품이야. 정치를 하든 상업을 하든, 어디서나 필수적인 자산이지. 총칼로 사람 짓밟고 재갈 물릴 재주가 없다면 말이야. 한국의 보수가 지금도 엉망진창에 탐욕을 드러내놓고 동력으로 삼는 것에 비해서 진보는 그래도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야. 그것만 해도 상대적으로 진화된 인류인 것은 인정해줘야겠지.
하지만 라떼는 도덕성이 지금도 먹히라는 보장은 없지. 세상은 달라졌고 도덕성의 기준도 훨씬 높아졌지. 그럼에도 자기가 도덕적이라고 믿는 이 사람들이 세상에 죄를 지을때, 그걸 지적하면 자꾸 다른 소리를 하지.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봤냐? 세상에 저렇게 큰 악이 있는데 지금 나에게 시비걸 때냐? 하는 식이거나, 뭐 더 심한 경우들도 많아.
요는 이 진보라는 인간들은 자기들이 잘못해놓고도 사과는커녕 오히려 똥뀐 놈이 성내는 식으로 나온다는 거지. 라떼는, 인간의 도리, 사회생할 하는 법, 이봐보야 너도 좋을 것 없다 등이 자주 쓰이는 레파토리지. 그래서 진보한테 당하면 피해는 내가 당했는데 지들이 더 큰소리를 치고 훈계를 하려 들어.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아주 사람을 쪼사놓는다니까.
내가 ‘진보는 왜 악이 되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그거야. 잘못해놓고 반성하기는 커녕 되려 피해자를 도덕적 열위에 몰아넣으려는 시도, 그 비열함과 뻔뻔함에 질리고 분해서야. 이걸 물리치고 극복하지 못하면 사회의 발전도 없다는 게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