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왜 악(惡)이 되는가?
이 소설은 그 일이 있던 가을 추석 때 2박3일 북스테이 여행을 하면서 쓴 것이다. 이것과 또 하나 어이없는 인간상을 만난 것에 대한 단편 소설 두 편이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그래도 2박3일에 두 편이라는 대단한 생산성이 나온 건 순전히 몸으로 직접 겪은 실화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쓴 글을 ‘그’가 볼 수 있게 차근차근 연재를 하려고 한다. 내가 이 글을 연재하는 세 개의 채널 중 최소 하나는 SNS의 ‘친구’ 관계가 맺어져있으니 어떻게든 보게되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에게는 별 거 아닌 일인 모양이니까, 모양이라기보다 별 거 아닌 걸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훈계까지 받은 참이니까, 연재를 한들 상관없겠지? 차근차근 연재하다보면 본인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렇게 별 거 아닌 일로 흘러갈지 어떨지는 좀 봐야겠다. 궁금하다. 그의 반응이.
그러니까 그에게서 다짜고짜 좀 만날 수 있겠냐는 연락이 온 것은, 내가 한창 차비도 없어서 밖에 못 나간다는 그런 상황을 겪던 때이다. 서울 근교의 ㄱ시에서 술집, 그것도 한주(韓酒) 전문점을 운영하던 그를 SNS를 통해서 알고는 있었다. 그 도시에는 나의 지인들도 여럿 살고 있었고, 내가 한주 맛을 들여놓은 분들이 또 여럿이었다. 그들은 이미 그 집의 단골이 아니면 곧 그렇게 될 팔자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도시에는 한주를 제대로 마시려면 다른 선택은 없는 상황이니까.
한주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그를 응원하는 건 개인적인 관계나 지인들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한주 불모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에게 술을 소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언제나 선제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느날 메시지를 통해서 나를 보자고 한 것이다. 그것도 거두절미 당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시계를 넘나드는 여행을 해서 말이다. 나야 밖에 나가자면 차비라도 벌어야 할 판인데 그 도시로부터 내 사는 곳까지 찾아와서 뭔가 의논을 하겠다는 그가 달갑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외식업 컨설턴트를 자처하기 시작해서 뭔가 일거리가 없을까 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가망고객인 그를 만나면 뭔가 일이 생길 가능성도 크니까, 그가 오라고 했다면 내가 사는 건물의 관리인 아저씨에게서 만 원짜리 한 장 빚을 내서라도 찾아갔을 것이다.
인상은 말 그대로 ‘얼굴책’인 SNS의 프로필 사진을 봐왔으니만큼 낯설지 않았다. 이제 개업한 지 일 년 좀 지난, 초보티도 다 못 벗은 장사꾼이지만, 나름 가게 매출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과하지 않은 자신감이 안정적인 느낌을 만들어 주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라 말도 조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우리나라에서도 손꼽는 시민운동단체에서 일을 했다고도 했다. 전국민이 다 아는 시민운동단체의 활동가, 그거 쉬운 거 아닌 것을 나도 잘 안다. 박봉에 시달리며 말 많고 탈 많은 시민운동가들과 일을 하는 것도 어렵고, 사법 당국은 꺼뻑하면 범죄자 취급하고 실제로 잡혀가거나 벌금형 같은 것을 물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그가 일했던 시민운동단체 정도 되면 언론 노출도 잘 되고 사회적 영향력도 있는 편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이 사람도 힘과 땀을 제법 보탰겠구나 싶어 애틋한 마음마져 일었다. 그런 사람이 같이 뭔가 할 일을 모색해보자고 찾아온 것이다.
요는 처음 시작한 한주전문점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니까 확장을 하고 싶다. 2호점을 곧 낼 계획이고 장차 큰 프랜차이즈도 구상하고 있고, 지금 업장의 성격과는 좀 다른 고급 업장을 시내 모처에 구상하고 있기도 하다. 투자자도 있어서 일을 곧 벌리게 될 것 같다 등의 얘기 끝에 같이 해보자, 힘을 보태달라 그런 요지의 이야기였다.
이때까지는 구체적으로 뭔가 제안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컨설팅 한다고 나서면 이래저래 돈 안 되는 미팅이 훨씬 많은 법이다. 그래도 완전히 날로 먹으려는 인간들 아니면 예의를 지켜서 성의껏 대하는 것이 영업방침이기도 하고, 그래도 시민운동가 출신의 사람이라니까, 함께 아는 지인들도 많으니까, 한주 전문점을 하는 사람이니까 등의 호감 요소가 덧붙여져서 길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서기 전에 그가 말했다.
“아직은 선생님과 무슨 일을 어떻게 같이 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언젠가 같이 일을 해보도록 하지요.”
아이고, 그럼요. 당장 일이 성사가 안 된 것은 섭섭하지만, 뭐 영업이 하루아침에 되는 경우가 세상 어디 있나. 술과 음식에 대한 마인드도 건전한 것 같고, 일하던 시민운동의 조직과 정보를 이용해서 전국구로 좋은 식재료나 음식을 구해다가 사업을 해보겠다니, 내대로도 구축한 그런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시너지가 날 것같다는생각도 들었다. 그 외에 사업적으로는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어차피 그가 날 경영자로 모셔갈 것 같지도 않고, 프리랜서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드리는 사람이라는 자세가 이미 내면화 되어있는 나로서는 그저 어서 빨리 저에게 일거리를 주시길 바랄 뿐이었다.
그로서는 나에게 기대를 불어넣고 관심을 끄는 성과는 충분히 달성하고 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