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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와 말벌에 관한 짧은 이야기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과의 와일드한 자연체험 이야기

30도가 넘는 더운 날이었습니다.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강렬했지만, 그늘에서는 또 꽤 시원한 느낌이 드는 전형적인 늦여름의 날씨였죠.


열심히 준비운동을 하고 대장을 뽑은 후에 가재를 잡으러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어제의 대장은 명호, 부대장은 주원이 였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가위바위보로 정했죠.


나침반을 주고 사용법을 함께 배우기는 했지만, 대장은 경험과 본능에 따라 느낌 가는 대로 걸어갔고, 금세 목적지인 배드민턴장 위쪽의 다리에 도달할 수 있었죠.


가는 내내 팀원들이 장난치며 “대장 스톱~ 대장 출발~”을 반복하고, "여기 아닌 것 같은데~“를 반복했지만 묵묵하게 팀을 이끌고 가서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니 친구들이 대장을 보는 눈빛이 금세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고참의 체면을 제대로 세웠죠.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돗자리를 깔고 가방을 풀어놓은 후에 바로 가재잡기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순영이가 커다란 가재를 잡아서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죠. 어제 순영이가 잡은 가재는, 그야말로 역대급, 네 살은 되어 보이는 다 자란 가재였는데 길이가 아이들 손바닥만 했습니다. 아이들도 신기하다며 한참을 쳐다보고 놀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가재를 잡다 보니 열 마리 남짓하게 다양한 크기의 가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살 정도되는 엄지손톱만 한 가재부터 아이들 손바닥만 한 가재들까지 크기도 다양했죠.


정호는 강도래 애벌레를 잡아서 채집통에 넣고 헤엄치는 것을 한참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 물 마시러 내려온 말벌 때문에 자리를 피해야 하기는 했지만, 그간 훈련한 대로 두 팔을 내리고 천천히 자리를 피하니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말벌들은 대게 혼자 다니고, 물가에 오는 말벌들은 대게 물만 마시고 날아가기 때문에 소동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죠.


그렇게 몰입해서 가재를 잡고, 중간중간 물장난도 치다가, 간식시간을 갖고 나니, 남은 시간이 50분 정도였습니다. 대략 주변에 있는 가재는 거의 다 잡아올린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놀까?“ 하고 물으니 대부분이 그러자고 하더군요.


놀이도구를 챙기고 주변을 정리한 후에 잡은 가재들은 모두 잡았던 곳에 놓아주기로 했습니다. 잡은 가재는 가지고 놀다가 나중에 다른 곳에서 풀어주면 어떻냐고 묻길래, 자연에서 잡은 것들은 잡았던 장소에 다시 놓아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며 이유를 설명해 주니 스스로 풀어주더군요.


가재들이 그곳에서 사는 각자의 이유가 있고, 가재들에게는 거기가 나고 자란 고향 같은 곳일 텐데, 같은 물줄기라도 아래쪽 계곡에 풀어주면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어서, 가재는 잡았던 바로 그곳에 풀어주는 것이 제일 좋답니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은 모두 평화롭게 가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하나씩 살던 곳으로 풀어주었는데, 유독 정호가 가져왔던 채집통에 물과 흙을 잔뜩 넣은 체 들고 있더군요. 당연히 아이들의 의심을 사게 되었고

“거기 가재 있지?”

“선생님 정호형이 가재를 안 풀어줘요”

“아냐~ 그냥 흙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보여줘 봐~!”

“싫어~!!”

아마도, 자신이 힘겹게 잡은 가재랑 더 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지만, 모두가 그런 마음을 누르고 가재를 위해 풀어준 것이었기 때문에 예외를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사도 가재면 풀어주라고 이야기했죠.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 벌이며 티격태격하다가, 더 이상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가만히 서서 씩씩대더니, 갑자기 통 안에 있던 내용물을 다 바닥에 쏟고 발로 밟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큰 가재가 한 마리 있었죠.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서 말릴 틈도 없었습니다. 그걸 지켜본 아이들 모두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았고요. 여태껏 함께 놀던 가재가 눈앞에서 죽어버리는 일은 충격적일 수 있죠.  


놀란 것은 밟은 정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올챙이를 가지고 놀고 벌레들을 가지고 놀면서 실수로 죽인 일이 몇 번 있었고, 교사가 가볍게 그러지 말라고는 했지만, 놀다가 실수로 그런 일이라 그냥 넘어갔었어서 그런지, 가재에 대한 모두의 반응에 정작 행위 당사자도 깜짝 놀랐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정호는 '내가 가지고 못 놀 바에는 너희도 어쩌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그랬을 것입니다.


가재가 죽은 것을 교사가 확인하고, 풀숲에 던져주라고 한 뒤에 아이에게 한마디 해주려고 하는데, 그냥 도망가더군요. 자신의 잘못이 용서받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궁지에 몰려서 나름의 탈출구를 찾은 거겠죠.


가방도 던져두고 도망가는 아이여서 멀리 갈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멀리 가거나 하면 위험할 수 있어서, 대장과 아이들에게 가방과 다른 것들을 챙겨서 천천히 따라오라고 하고 아이를 따라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뛰쳐나가기는 했지만, 다리 근처에서 교사가 따라오는지 서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교사가 다리 위로 올라서니 또 도망가려고 했지만, 별로 도망가고 싶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모두의 비난에서 벗어나고는 싶었지만, 혼자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해도, 막상 교사가 다가오니 울면서 엄마에게 가겠다는 아이의 두 손을 붙잡고, 위험해서 안된다. 가도 아직 안 계셔서 큰일 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 그저 울기만 하며 안간힘을 썼죠. 그러는 사이 다른 아이들이 오고, 아이들은 다시 정호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호는 그저 울음을 겨우 참으며 교사 옆에 서있었고요.


물론 정호의 행동이 많이 잘못된 것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잘못된 행동을 바르게 고치기 위해 우리가 공부를 하고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고. 정호가 더 많이 배워서 행동을 고쳐나갈 수 있도록 다 함께 도와주자고 하니, 모두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옆에 있던 정호도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가방을 메고 머쓱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출발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줄 맞추어 아래쪽 계곡으로 가서 버들치를 잡으며 놀았습니다. 하지만 버들치를 잡기가 쉽지 않죠. 괜히 물만 흐려놓으며 자유롭게 놀고 있는데, 이번에는 정호가 뜰채로 말벌을 가둬서 잡아버렸습니다.


정호는 말벌을 잡았다고 좋아했고, 다른 아이들은 살짝 긴장해서 정호가 말벌을 잡았다고 떠들어댔죠. 하지만, 말벌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그렇게 말벌을 잡거나 말벌과 싸우는 일입니다. 말벌을 포함한 대부분의 집단생활을 하는 벌들은 페로몬이라는 의사소통 방법을 통해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거나 다량의 먹이를 발견했을 경우 빠르게 주변의 동료들을 불러 모으는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또, 한 마리만 다니는 것 같아도, 경험상 늘 바로 근처에 다른 한 마리가 있어서, 둘 중 하나에 무슨 일이 생기면 금방 다른 한 마리가 찾아와서 도와주거나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 같더군요. 어제도 말벌이 뜰채에 갇히고 오분도 되지 않아서 다른 말벌 한 마리가 찾아왔었습니다.


평소 말벌이 나오면 무조건 팔을 내리고 자리를 피하라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정호의 돌발행동으로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다급하게, 우선은 페로몬이 퍼지지 못하도록 물을 한 바가지 부은 후에 아이들에게 가방을 메고 다리 위로 올라가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벌들이 혹시라도 오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이 제일 좋으니까요.


그렇게, 서둘러서 자리를 뜨려고 정신없이 준비하는데, 다른 말벌 한 마리가 뜰채 옆으로 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말벌들은 도망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하지만, 혹시 몰라서 우선은 자리를 옮겨 공원 쪽 넓은 계곡으로 이동했죠. 다행히 벌들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콸콸콸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손과 발을 씻으며 신발로 배 띄우기 놀이도 하며 시원한 물에서 잠시 논 후에 공원에서 기다리시는 엄마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써 내려가다 보니, 일이 꽤 많았던 숲 놀이 시간이었네요. 하지만, 아이들 모두 교사의 지시에 잘 따르며 침착하게 움직여주어서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정호에게는 쉽지 않은 숲체험이었을 것 같네요.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노는데 필요한 규칙이나 소통 방식에 있어서는 서툰 부분이 많아서, 본인도 꽤나 힘들 것입니다.


정호에게는, 아무리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함부로 생명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과 아무리 화가 나거나 당황스럽더라도 폭력적인 행동이나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행히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순영이가 친누나이니, 엄마와 누나와 함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가재의 죽음이 의미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


- 글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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