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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과 사랑에 빠지는 법

나만의 보물 같은 숲길을 고르는 knowhow

지난 글에서 숲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지난했던 개인사를 소개하며 숲의 아름다움을 뼈저리게 느낀다는 것이 녹녹치 않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글에 이어서, 오늘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 구체적인 노하우 중 첫 단추를 풀어볼까 합니다.


숲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참 많습니다. 우선, 숲에 자주 가야 합니다. 자주라고 하면 정기적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숲에 가야 합니다. 여기저기 명산대첩을 돌아다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에도 있죠 ‘자세히 봐야 예쁘다 ‘ 맞습니다. 자세히 봐야 예쁜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려면? 한 곳에 가는 게 훨씬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접근성이 좋아야겠죠? 그래서 가까운 숲엘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람이 적은 곳이 좋습니다. 어쩔 수 없다면 붐비더라도 가야겠지만, 가능하다면 조용한 산이 좋고, 가능하다면 비교적 자연스러운 느낌의 산이 좋습니다. 네, 맞습니다. 쉽지 않죠. 하지만 찾아야 합니다.


제가 추천해 드리는 루틴은 최소 2주에 한번, 가능하다면 매주 한번 정도 가기 너무 힘들지 않은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숲길을 걷는 것입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걸을만한 숲길이면 충분합니다. 가능하다면 계곡도 있어서 물이 흐르는 곳이라면 더 좋습니다. 길이 여러 갈래라서 그날그날 주어진 시간에 따라 코스를 정할 수 있으면 또 좋고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숲이라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차로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숲이 3~4곳이 있고, 그중 마음에 드는 숲이 둘, 주로 가는 숲은 한 군데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99%의 압도적인 비율로 주로 한 곳만 가고, 가끔 일이 있거나 할 때 다른 숲들도 가는 편입니다.


그런 길을 찾으셨다면 우선 걸어야죠. 걷는데, 후다 닥닥 걸어서는 안 됩니다. 숲을 샅샅이 흩으면서 걷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죠. 대부분 우리는 최단시간에 주어진 거리를 걷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걸어야 더 많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 어느 정도 천천히 가야 하냐고요? 제 속도를 말씀드리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따라잡는 정도의 속도입니다.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대부분 저를 앞질러 가시더군요. 오 분 정도 지나면 안 보일 정도로 멀어지는 그 정도의 속도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노하우는, 쓰레기봉투를 한두 개 가지고 걸으시라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그 플로깅처럼, 숲을 걸으며 숲길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줒어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뭔가 좋은 일을 한다는 기쁨과 자긍심이 생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뭔가 우쭐 해진다고나 할까요? 뭐 좀 유치하긴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고, 기분은 좋습니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정말 별의별 것들이 다 있지만, 보통은 사탕껍질, 과자봉지, 휴지, 병뚜껑, 유리조각, 담배꽁초 등이 주를 이룹니다. 아, 다 마신 소주병이나 막걸리병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 곳엔 또 과자봉지가 늘 함께하죠. 가끔 그런 폭탄지역을 지나가게 되면, 가져간 비닐봉지가 꽉 차버려서 난감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쓰레기를 좀 고르는 편입니다. 말하자면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스스로 삭지 않는 종류를 우선으로 줍는데, 최우선 순위는 당근 비닐과 플라스틱류입니다. 절대 썩지 않고, 아마 만년은 갈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보이는 대로 줍습니다. 그다음은 담배꽁초와 유리병입니다. 보기 흉하고 역시 잘 삭지 않는 종류들입니다. 그 외의 자잘한 쓰레기들은 그냥 놔둡니다. 땅에 깊이 박힌 비닐은 뽑다 보면 공사가 커지고 길이 망가져서 그냥 두는 편이고, 작은 유리조각 정도는 덤불에 던져놓습니다. 유리가 크게 자연을 해하지는 않으니까요. 미관상 거슬려서 치워두는 정도입니다.


아, 그리고 스티로폼. 너무 크지만 않다면 가능한 줏어옵니다. 요즘 흔한 스티로폼 박스들, 산에 있으면 부서지고 가루가 되면서 정말 지저분합니다. 계곡에라도 흘러들어 가면 계곡을 타고 부서지며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죠. 가끔 보면 ‘돌맹인가?’ 하고 집어보다가 스티로폼인 경우가 꽤 됩니다. 생각해 보면 스티로폼이 최악이네요. 그런데, 또 동네 어르신들이 방석으로 아주 애용하셔서, 참 난감합니다. 다음에 또 쓰실 계획이신지 잘 치우지 않으시고 고이 돌멩이까지 얹어서 놓으시면, 가져가기도 또 좀 그렇기도 합니다.


쓰레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ㅎ 죄송합니다. 제가 쓰레기 관련해서 좀 할 말이 많은 편이라 그랬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쓰레기를 줍다 보면 산길에 대한 애정도 많이 늘어납니다. 마치 나만의 정원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모두의 정원이지만, 가꾸는 사람이 나라면 왠지 내 정원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렇게 사시는 곳 주변, 버스로 30분 정도 거리의 숲을 몇 군데 찾아보세요. 하나도 충분하지만, 아쉬우시면 한두 군데 더 찾아놓고 다녀보세요. 그렇게 한 일 년 정도 다녀보시다 보면, 결국 한 군데만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시게 될 거예요. 사람이란 것이, 그렇더군요. 사람도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음식도 먹는 음식만 먹게 되듯이 숲길도 그렇습니다. 자신과 잘 맞는 숲길 하나가 결국 곁에 남게 되더군요.


그렇게 숲길이 정해지면, 말씀드린 것처럼 가능한 자주, 최소한 이주에 한번 정도는 그 길을 정성껏 살피며 걸어보세요. 길가의 풀, 흙, 나무들을 하나하나 잘 살피면서 걸어보세요. 좀 심심한 듯하다면 좋은 음악을 귀에 꽂고 걷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숲에서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으니, 골전도 이어폰을 쓰시거나 한쪽에만 이어폰을 꽂고 걸으시는 것을 권해드려요. 그렇게 좀 잔잔한, 명상음악이나 조용한 피아노음악, 숲길 산책을 사랑했다는 브람스의 음악도 좋고 명상을 위한 종소리를 무한반복하는 그런 음악도 좋습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몇 해가 지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변화하는 모든 모습들이 반갑게 느껴진답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에 피었던 아카시아꽃이 올해도 또 피어나는 모습이 반갑고, 작년에 바글거렸던 올챙이들이 올해 또 바글거리는 모습이 또 참 귀엽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얼었던 흙이 다시 녹는 것도, 녹았던 흙이 다시 어는 것도 못지않게 반가워지는 그런 시기가 온답니다. 그쯤 되면, 이미 숲과의 사랑이 시작된 거겠죠. 깊은 사랑은 아닐지라도, 시작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쯤 되면, 숲의 작은 변화도 금방금방 알아채게 됩니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것인지 새나 다람쥐에 흔들리는 것인지도 구분이 금방 가고, 특히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구분이 금세금세 갑니다. 말하자면 쓰레기 찾는 데는 도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쓰레기만큼 숨어있는 벌레나 다람쥐, 새, 물고기도 금방금방 보이죠. 자세히 보니 더 많이 보이고, 그러다 보니 즐길거리가 늘어난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숲길을 걷는 것이 왠지 즐겁고 경건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몇 해가 지나가고 나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몇 해, 네 맞아요 시간이 좀 걸립니다. 길을 걸으며 스치는 풀꽃들을 바라보며 미소가 지어질 정도가 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어떤 숲을 어떻게 걷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풀어봤네요. 쓰다 보니 또 두서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군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접고, 다음에는 ‘숲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의 그림 그리기’를 좀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제 핵심 노하우 중 하나인데, 뭐 별건 아니지만, 알려드리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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