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낱말들이란, 화가에게 있어서는 팔레트 위에 짜놓은 물감과 같다. 그 낱말들의 수는 한이 없다. 그리고 늘 새로운 낱말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정말로 좋은 낱말은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나는 지난 70여 년 동안 새롭고 좋은 낱말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화가 역시 마음에 드는 물 담색이 무수히 많지는 않겠지만, 그 물감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차이와 그것들을 혼합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색깔은 셀 수 없이 많다.
- 헤르만 헤세 -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나만의 아름다운 팔레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화가는 각자만의 색감이 있고, 그 색감은 자신의 팔레트에서 비롯되죠. 그림은 결국 아름다운 색의 조합이니까요. 자신만의 가장 아름다운 색 리스트는 그런 이유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글쓰기에서도 낱말의 수집이 중요한지는 몰랐네요.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만의 아름다운 낱말 수집이 필요하군요.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떠오릅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쓰는 소품들을 모아두고, 늘 비슷한 소품들을 사용했었죠. 성냥갑, 빗, 낡은 오디오, 양복 등등. 주로 20세기 중반에 사용되었을 만한 물건들 중에서 아름다운 것들만 모아놓고 반복적으로 사용했었습니다. 그의 영화 대부분이 80년대 이후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이죠.
소품들뿐만 아니라, 배경음악, 배우들의 표정까지, 그의 영화는 1960년대 정도의 세상에 머물러있습니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일 수도 있겠네요. 그는 1960년대라는 물감이나 낱말들을 모아두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거나 작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