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숲에서 노는 법, 복장, 노하우
오늘처럼 종일 시간당 10~30미리 정도의 비가 내리는 날에 숲에 간다고 하면 대부분의 어머님들은 걱정부터 하십니다. 그 걱정이 설렘으로 바뀌기까지 보통 일 년은 걸리는 것 같더군요. 우선은 교사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하고, 아이들의 피드백도 좋아야 하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돌아오는 횟수가 어느 정도 쌓여야 가능한 이야기 같습니다.
사실, 웬만큼 숲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비 오는 날 산에 가지는 않죠. 날이 맑아도 평생 몇 번 가지 않는 것이 산인데, 굳이 비 오는 날 왜 산에 가겠습니까. 일반적인 삼사십 대 엄마들에게 비 오는 숲이란, 어쩌면 위험천만한 정글 같은 곳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죠. 아이들에게 비는 곧 놀잇감이거든요. 비뿐만 아니라, 눈, 얼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면 엄마들도 굳게 마음먹고 아이들을 숲으로 보냅니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얼음이 꽝꽝 얼어있는, 생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그런 숲이지만, 아이들이 원한다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내죠. 그래야 합니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의 인생이니까요. 어른이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에게서 삶의 기쁨을 뺏을 수는 없죠.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네요. ㅎ 암튼, 비 오는 숲에 가는 것은 재밌습니다. 오죽하면 소설가 김훈 씨는 ‘비가 내린다 싶으면 앞뒤 안 가리고 짐 챙겨서 산으로 들어갔었다’고 하시겠습니까? 저도 김훈 작가의 그 마음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비 내리는 숲, 생각만 해도 가슴이 자르르르 울리는 일이죠. 90년대 중반 이후 아무 곳에서나 텐트를 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디든 터만 좋으면 텐트를 쳐놓고 숲에서 밤을 보내며, 라면도 끓여 먹고 음악도 듣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꽤나 그렇게 하고 다녔죠. 친구들과 인수봉 아래 구조대 근처에 텐트를 쳐놓고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밥딜런을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던 어린 시절 추억들, 아직도 가슴속에 곱게 남아있답니다.
비가 내리면 더 좋은 이유는, 밤새 방수포에 떨어지는 그 빗방울소리들이, 그 바람소리들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혼자가 아니고 친구와 함께라면 더욱더 행복해지죠. 그리고, 둘보다는 셋이 좋고요. 4~5인용 텐트 속에 장정 셋이 따듯한 국물과 소주, 크~ 거기에 잔잔한 음악까지 흐르면 그냥 낙원입니다. 그립네요. ㅎ
물론 아이들과 이런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선 텐트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그전에 아이들의 복장이나 배낭 속의 준비물도 제대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비 오는 날 복장과 준비물에 관해서 조금 써보려고 합니다.
우산, 당연히 우산이 필요하죠. 우산은 가벼울수록 좋겠지만, 아이들이라면 살 끝이 둥그렇게 코팅된 어린이용 안전우산이 제일 좋습니다. 다닥다닥 붙어서 걷다 보면 다른 아이 얼굴을 찌를 수도 있거든요. 그럴 위험이 없다면 접는 우산이 더 편합니다.
일반적으로,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산에 가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제 경험으로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빗속에서 몸 쓰는 일을 한다거나, 군인이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으로 숲길을 걷거나 자연을 관찰하는 데에는 우산이 훨씬 편하고 비도 덜 맡습니다.
우비가 비를 어느 정도 막아준다고는 하지만, 웬만큼 두꺼운 우비가 아니라면 그 안의 옷도 젖게 되기 때문에 비추입니다. 또, 여름이면 사우나가 따로 없습니다. 안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면, 비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땀으로 온몸이 젖어버릴 거예요. 그래서 고어텍스가 좋죠. 하지만, 한여름에 고어텍스를 입어봤자 땀이 흐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렇게든 저렇게든 몸이 젖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산을 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우리 모두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듯이, 우산만 써도 대부분의 빗방울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깨나 발이 조금 젖을 뿐이죠. 비가 잠시 멈추면 우산을 접어서 가방에 꽂아 놓으면 되니 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우산이 좋습니다.
그리고 장화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방수등산화도 있고 고어텍스 등산화도 잘 나오지만, 그래도, 비를 막는 데에 고무장화만 한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가의 고어텍스 등산화라고 해도 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있기 마련이고, 진흙바닥 위를 삼십 분만 걸어도 신발은 조금씩 젖어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신발이 젖는 것이야 조금 불쾌할 뿐이지만, 산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그대로 놔두면, 진흙 속에 있던 미생물들 때문에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죠. 그래서, 흙에 빠지거나 계곡에 빠졌던 신발류는 깨끗하게 빨아서 완전히 건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신발의 틈새에 이물질이 껴있을 수 있기 때문에, 솔로 틈새를 꼼꼼하게 긁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고무장화는! 그냥 한번 쓱 물로 헹구면 끝입니다. 물론 고무장화에도 흙이나 풀이 끼기는 합니다. 그래서, 고무장화를 고를 때에는 통으로 되어있는 장화가 좋습니다. 착용감을 위해서 두 가지 고무가 붙여져 있는 고무장화도 있는데, 역시 그 사이에 이물질이 껴서 관리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저는 바윗길을 걷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고무장화를 신습니다. 조금 위험한 길을 간다면, 갯바위용 고무장화가 딱이죠. 바닥에 스파이크가 튀어나와 있어서 바위 위에서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거리 산행을 해야 한다면 바닥이 딱딱한 비브람이 최고입니다. 암릉을 따라 걷는다면 릿지화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 최고고요. 일반적인 산보형 등산일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등산모자가 하나 있다면, 시야확보에 조금 더 유리해서 좋습니다. 빗물이 챙의 끝을 따라 떨어지기 때문에 얼굴에 닿지 않아서 좋죠.
여기에 얇고 방수가 되는 윈드재킷이 하나 있다면 더 좋습니다. 윈드재킷은 잠바 안쪽에 망사가 덧대어져 있는 형태의 재킷이 좋습니다. 사실, 윈드재킷이라면 당연히 안에 망사가 있어서 비가 몸에 닿거나, 땀이 잠바표면에 묻는 것을 막아줘야 하는데, 요즘은 홑겹의 얇은 윈드재킷이 대부분 이더군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대략 이 정도만 갖추고 있다면, 빗속에서 몇 시간을 걸어도 옷이 지나치게 젖지 않으면서 비 오는 숲의 고요한 모습을 마음껏, 안전하게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