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주차장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 & 뒤끝작렬
아침부터 공원 나무들에 밧줄을 걸으며 밧줄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밧줄놀이터를 만드는 일은, 힘이 든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예쁘고 재밌고 안전하게 구성하느냐의 고민이 많은 일이죠. 건축디자인과 비슷한 일입니다.
숲에서 아이들과 간단하게 줄을 가지고 놀 때야 밧줄 몇 개 가져가서 대략 쳐놓고 놀다가 걷으면 그만이지만, 오늘처럼 유치원행사가 있는 날이면, 좀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가랜드도 치고 밧줄도 색색으로 더 예쁘게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니깐요.
그렇게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바로 옆의 도서관에 주차를 하고 짐을 꺼내서 한 시간 넘게 밧줄을 걸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차에서 가져올 것이 있어서 차로 가고 있는데, 어제 유치원 원감님이 위험요소를 표시하기 위해 설치해 놓았던 주차장 콘을 어떤 남자분이 가져가시더군요.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있었습니다. 유치원 물품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는 것인 줄 알고
“그거 왜 가져가시죠?”
“이걸 마음대로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
“그거 유치원에서 행사 때문에 설치하신 건데요?”
"아니, 이거 주차장에서 그냥 가져가면 어떻게 하냐고!"
벌써 반은 반말투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아저씨, 여기 종일 주차하면 안 돼요”
"아니, 여기 유치원 행사 때문에 세 시간 주차하는 건데요?"
"아니 그럼 유치원에다가 주차를 해야지, 왜 여기다 해요?"
“아니 여기 주차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여기 주차를 하면 어떻게 해요? 가뜩이나 차도 많은데, 아저씨 자꾸 그러면 견인시켜 버릴 거예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공공도서관주차장이라 누구나 언제든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인데, 견인이라니...
하지만, 유치원 선생님들이 행사준비로 오가며 바쁘게 일하고 있는 앞에서 그 아저씨와 싸울 수야 없었죠. 그저, '나는 여기 유치원 행사 주관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미안하지만, 어제 원감님이 그 콘을 가져다 놓으셔서 유치원 물품인 줄 알았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화를 삭여가며 말하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주차관리 관련 담당관인 것 같은 젊은 남자가 쓱 옆으로 오더니
“아,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는데요. 여기 주차 때문에 맨날 민원 오고 난리인데,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아니 나도 광명 시민인데, 여기 주차하면 안 되나요?”
“주차 민원이 많아서 도서관 이용객 아니면 주차하지 않는 게 좋아요. 오늘은 우선 알았으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세상에 도서관 주차를 아무나 하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계약직으로 주차관리를 하는 동네 아저씨도 아니고, 담당 공무원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 보는 눈도 많은 곳에서 그 양반들과 시비를 가리고 싸울 수는 없어서 그냥 돌아섰고, 마음을 다스리며 밧줄을 설치하고, 주어진 일을 세 시간 동안 마무리 하였다. 수업은 즐거웠고, 행사도 잘 진행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함께 일하신 숲선생님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에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원장님이 함께 식사하기를 원하셔서 잠시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원장님, 원감님과 담소를 나누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진 후에 집으로 돌아갔는데, 운전하는 중에 다시, 아침의 일이 떠오르며 분한 마음이 가슴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분한 일이었지만, 화를 내는 것은 내손해요,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불자의 자세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주차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생각을 돌려놨었다.
그러나,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나오려는데, 가슴속의 화가 훅, 하고 밀려오더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건 고쳐야 할 문제야. 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고 나서, 도서관에 전화를 하고, 담당 주무관을 찾아서 통화를 했다.
아침에 만난 담당자는 없었지만,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자신에게 이야기해도 좋다고 하길래
“도서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자격요건이 있을까요?”
“아뇨. 없는데요”
“그런데 아침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면, 해당 직원들이 권한도 없이 제 차를 견인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네요?”
“죄송합니다. 주차장 민원이 많다 보니, 직원들이 실수를 한 것 같네요.'
"민원이 많다고 주민의 정당한 행위에 대해, 마치 자신들의 사유지인양 견인을 하겠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실수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것 같은데요"
"네,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교육하도록 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대략 요약하면 그런 대화였다는 것이지만, 오분 넘게 통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만들고 사과를 받아내고, 나름은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로 서로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 선에서 민원을 제기하고 끊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러고 나니 화가 좀 풀리더군요. 뭐, 화풀이죠. 어떻게든 제게 그런 짓을 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애초에 서로의 오해로 시작된 일이고, 사는 게 힘들다 보니 도서관 주차정리자리에 뽑힐 자격이 될 정도의,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성질을 좀 낸다고 거기에 시비를 가릴 일이었나 싶네요. 그 옆의 공무원도 주차관리업무를 하는 것을 보면, 근근이 공무원 월급으로 살기 위해 수많은 민원을 견뎌내야 하는 그런 평범한 하급공무원이자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일 텐데,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을 괜히 다시 끄집어냈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지나간 일이죠. 사실, 거기서 일하느라 꼼짝 못 하는 사람에게 견인을 하겠다는 협박은, 좀 심하긴 했습니다. 제대로 일을 벌여서 징계를 먹거나 아예 일을 못하게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찌 되었건 발단이 제게 있었고, 제 안의 모난 부분이 또 나를 괴롭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네요. 다음부턴 더 조심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