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과 친구로 지내는 법
아침부터 유치원 아이들, 엄마들과 놀자고 밧줄을 설치했습니다. 긴 밧줄 열몇 동과 짧은 밧줄 열몇 동, 동아줄과 빨랫줄, 가랜드까지 설치한 꽤 큰 규모의 밧줄놀이였죠.
그런데, 설치할 때부터 살짝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말벌!
말벌집이 딱히 보이지는 않는데, 대왕참나무 한그루에 말벌 몇 마리가 계속 꼬이는 것이 문제였죠.
수업시간은 다가오는데, 줄을 설치하지 않을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조심조심 줄설치를 마치고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밧줄을 다 설치하고 나니 벌이 좀 덜 꼬이는 것이, 등산용 밧줄의 석유화합물냄새 때문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10시경부터 놀이를 시작해서, 참여수업에 참여하시는 엄마 아빠들, 아이들과 함께, 밧줄에 매달리고 밧줄을 넘고, 해먹을 타고, 장님 걷기에 줄다리기까지 하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1시쯤인가? 아마 11시 30분쯤, 벌이 다시 꼬이기 시작하더니, 두세 마리가 소리도 없이 나무에 붙어서 나무껍질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 새집을 짓기 위해서 펄프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앞에는 삼십 명 가까운 엄마와 아빠,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밧줄놀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수업을 중단할 수도 없고, 순간 어쩔까 0.1초 고민하다가
“자, 얘들아 말벌이 보이니?”
“네~ 저기 저기 날아다녀요”
“말벌에 쏘이면 어떻게 되지?”
“엄청 아프죠~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럼 말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했었는지 기억나요?”
“네, 두 손을 무릎에 대고 엉금엉금 도망가요~~”
“맞아 그러면 절대 말벌이 쏘지 않아요”
그렇게 우선 아이들과 말벌피하기 놀이를 하며 분위기를 환기하고 나서, 다시 말벌과 함께 안전하게 지내는 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얘들아, 말벌이 사람을 먹을 수 있을까?”
“아~뇨~!”
“그럼, 말벌이 우릴 무는 이유는 뭘까?”
“몰라요~”
“말벌은 우리가 무서워서 무는 거야. 특히 손을 휘두르며 공격하면 바로 문다, 정말 빠르게”
“와~우~!”
“그런데, 말벌도 공격만 하지 않으면 절대 물지 않아. 얼굴에 앉아있어도, 공격만 하지 않으면 잠깐 앉았다가 먹을 게 없으면 바로 날아가버린단다 “
“오~~”
엄마들 아빠들도 눈이 동그래져서 말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더군요. 그렇게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틈을 타서
“자, 이쪽으로 올라가서 한 바퀴 밧줄을 타고 돌아보자~~!!”
그렇게 스르륵 밧줄에 올려놓았더니, 또 재미나게 잘 놀더군요. 사람들이 올라타니 벌도 멀리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다, 밧줄에 매달려서 놀던 아이 중 한 명이
“어, 선생님. 저기 말벌! “
“어 그러네, 말벌 만나면 어쩌라고 했지?”
“천천히 도망가요”
“그래, 천천히 밧줄 타고 저~리로 도망가자”
“네~”
그렇게 오늘의 최대위기를 간신히 넘기며 무사히 수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수업하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천천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밧줄을 풀고 정리하는데 갑자기
“부우우웅 붕붕”
하며 말벌의 경고비행소리가 귓가에 울리더군요.
순간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멀리 뛰쳐나가면서 문득
‘아이들한테는 천천히 움직이라고 하고 말이야, 이건 아니잖아? “
순간 현타가 왔지만, 어쩌겠습니까? 모자란 건 연습하고 다시 채워 넣는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말벌이 다시 멀어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조심조심하며 줄을 풀고, 정리해서 차에 실은 후에
‘내일도 잘 부탁합니다. 말벌님들’
하고 잠시 기도를 드린 후,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