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님으로 사는 것은 편안할까?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삶

예전엔 불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스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여유롭고, 삶의 수많은 고통을 피해 가는 길이겠다는 착각을 했었다.


그래서, 삶이 내게 고통을 줄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스님이 되면 마음이 좀 편하지 않을까? 어차피 먹여주고 재워주고’이런 헛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 새벽에 일어나서 두세 시간 동안 절하고 운동하고 달리고 기공하고 책을 읽은 후에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스님들의 삶이 새롭게 느껴진다.


매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절하고 일하며 산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평생. 웬만해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열심히 산다면, 못 할 일이 있을까 싶다.

불교란 어떤 것인가? 불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단 한 번도 절에 가서 어떤 등록을 해본 적이 없고, 평생 ‘무교’라고 써오면서 살았지만, 사실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종교는 불교였다.


늘 불교책을 끼고 살았고, 스님들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접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름 불교의 철학에 대해 나만의 생각들도 만들어지고, 나만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탈이니, 내생이니, 업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만의 이해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는 그렇게 불자 아닌 불자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고, 독경을 하고, 또 규칙적으로 운동과 기공을 한다. 어찌 보면 살짝 소림사 승려 같은 삶이다. 어쩌다 보니 머리도 빡빡이다. 그래서 도토리샘이라는 별명을 스스로 만들었다. 도토리도 빡빡, 나도 빡빡. ㅎ


그렇게 살면서 깨달은 불자로서의 삶은 다음과 같다


“불자로 산다는 것은, 삶의 모든 일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리 억울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알아차리고 판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그와 함께 사는 법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의 ‘자아’라는 환상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견제하며 저 깊은 심연 속의 참나가 말하는 바를 실천하며 사는 것.


무엇보다, 고통을 찾아다니며 고통의 정체를 알아내고, 죽을 때까지 고통과 함께하며 늘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스님의 삶이고 불자의 삶이기도 하다.


뇌과학적으로 보자면 ‘전측중심부 대상회피질’을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불자의 삶이다. 뇌의 이 부위는 ‘정말 하기 싫은 일만 골라서 꾸준히 할 때’ 활성화되고 커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부위는 우리의 ‘의지’를 담당하는 부위라고 한다


우리의 뇌는, 이 뇌라는 장기는 묘한 놈이다.


뇌는 기본적으로 움직임을 담당하는 장기다.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에게 뇌가 없고,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움직이지 않는 생물은 뇌를 사용하다가 스스로 먹어버리고 뇌 없이 살아간다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에 집중되어있기도 하다. 인간의 뇌가 특히 그렇다.


우리의 뇌는, 피곤하면 자라고 하고, 불안하면 가만있으라고 한다. 서있으면 앉으라고 하고, 앉으면 누워보라고 하는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이다. 또한 우리에게 ‘통증’이라는 것을 선사하는 놈이기도 하다. 뇌 없이 인간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이 또한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이다.


문제는, 이 뇌 때문에 우리의 모든 작심이 삼일 만에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뇌는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을 싫어한다. 스스로를 극복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뭔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우선 이 뇌를 지배해야 한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게으름, 나태함, 유약함, 지나치게 불안해함’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러한 뇌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좋은 연습이 바로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전측중심부 대상회피질’이 활성화되고 커지게 되며, 이는 의지력이 커지는 것과 비례한다.


즉, 하기 싫은 일을 해야 정말 하고 싶은 일, 목표, 삶의 지향점,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명상하고 염불 하고, 매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사시는 것이다. 물론 땡중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스님들은 이러한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가신다.

.

결국, 스님이란, 자신의 의지를 극대화하는 훈련을 통해, 본능적이고 어리석은 자아와의 싸움을 이겨나가는 삶을 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하는 삶의 형태라고 본다.


그리고, 나의 삶의 목표도 이와 비슷하다.


나의 삶의 목표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니 결과를 향해 나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의 루틴을 수행하고, 가능하다면 더 힘들게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가수 션의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데, 그가 한 말 한마디에 크게 공감하고, 그가 이끌어가고 있는 삶의 태도를 존경하게 된 말이 있다.


“어렵게 할 수 있는데, 왜 쉽게 해야 하지?”


그렇다. 이 한 문장에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삶은 어렵게 할수록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뇌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다.


게으름이나 욕망, 두려움은 모두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신체적 통증까지도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가깝다.


만약, 누군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나도 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면, 가능한 어렵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예를 들어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 한다면, 운전해서 가는 것보다는 걸어서, 가능하다면 뛰어서 가보세요. 물론 짐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쓴다면, 가능한 허리를 똑바로 펴고, 최대한 집중해서 자세를 유지하며 써보세요.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최대한 어렵게 써보세요. 힘들게. 가능하다면 서서 써보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가능한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많이 하세요. 아주 강한 강도는 아니더라도 부담이 될 정도의 양을 매일 꾸준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해 보세요.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