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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어떻게 생성되는가

정보 약자들에 대하여

오래간만에 아들과 동네 도서관에 갔었다.


기분 좋게 로비로 들어서는데 응급처치를 배울 수 있는 부스가 있어서 한 번 들어가 봤다.


들어가자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어르신께서 안내를 시작해 주셨다. 여자분이셨는데 친절하게 심정지환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어떻게 하는지, 더미를 통해 가르쳐주셨다.

심장마사지를 위해 눌러야 할 부위의 대략적인 위치와 손모양을 안내해주시고, 직접 시연까지 보여주시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문제는 아들의 질문 이후부터였다.


“30번 누르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해요?”

“그럼 잠시 기다리면서 상태가 변하는지 보고, 별 변화가 없으면 다시 30번 해보면서 119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친절한 목소리와 태도를 통해 전달되었던 교육 내용은, 살짝 충격적이었다.

‘잠시 쉰다고??’


심장마사지는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지속되어야 하는데, 잠깐 상태를 지켜본다? 그 순간 이분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진난만한 눈으로 설명을 듣는 아들을 보며 ‘저 아이가 구조해야 할 대상이 만약 나라면?’ 식은땀이 흐르는 이야기다.


전문가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상식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시민대상 보건교육장에 서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니...

급한 마음에

“병원에 갈 때까지 쉬지 않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마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너무 세게 하면 가슴이 다쳐서 안돼요”

너무도 친절한 안내사의 답변과 미소... 순간 벽이 느껴졌다.


심장 마사지는, 기본적으로 심장이 마사지될 정도로 강하게 해야 한다.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5센티 정도로 충분히 들어가 줘야 하는데, 적십자 교육자 말에 따르면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라고... 말문이 막혔다.


아들에게 ‘그게 아니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쉬지 않고 2인 1조로 계속해서 심장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나를 손으로 밀치고, 아니라며 얼굴이 붉어지셨다.


참다못해

“혹시 응급구조자격증 있으신가요?”

“... 없는데요”

살짝 당황스러워하시는 모습이었다.

“저는 자격증이 있는데요, 기본적인 부분에서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그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 우리 부자는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도서관의 열람실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를 겪으며 열람실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태극기부대가 떠올랐다.


잘못된 정보를 근거랍시고, 길거리가 떠나가라 떠들어대는, 마치 나라를 구하겠다는 기세로 폭력까지 휘두르는 거친 모습의 어르신들이 오버랩되면서, 살짝 아찔했다.


어쩌면, 그들의 그러한 무지몽매함이,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화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나름의 자구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사나워지는 법이니까.


인터넷으로 검색 한 번만 해봐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내용도 숙지하지 않은 채, 아이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잘못된 구조요령을 알려주고 계셨던 그분의 친절한 태도와 고집스러운 표정이 과연 그분의 개인적인 잘못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출처: https://50plus.or.kr/org/detail.do?id=6490033


나의 부모세대라고 할 수 있는 70대 어르신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때만 해도 대학에 간다는 것 자체가 엘리트 계급으로의 진입코스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대학 나오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학교육이 일반화되다 못해 살짝 과잉인 느낌이 있고, 누구나 최소 고등학교까지는 다니기 때문에 상상이 안 가겠지만, 사실이다.

학교교육의 질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퀄이다. 요즘 초등학생 교과서만 대충 흩어봐도 그 엄청난 수준 차이가 느껴진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의 교과서를 요즘 교과서에 비교한다면, 교육교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허술했다.


대학원까지 나오시고 평생을 교육현장에 계셨던 나의 모친도 핸드폰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능력이 웬만한 초등학생만도 못한 것을 보면, 그리고 열렬한 국힘 지지자인 것을 보면... 대부분의 노인들이 얼마나 정보부족의 피폐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정보 불평등의 피혜자들을 한심하게 쳐다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구원의 손길을 제도화해야 한다.


요즘 노인들은 자식이 같이 살지 않으면 핸드폰 하나 맘 편히 사용하기 힘들어하신다. 괜히 동네 핸드폰가게 청년들만 고생이다. 주민센터에서 핸드폰사용에 관한 교육과정이 있지만,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는 보다 책임 있는 태도로 노인들의 정보불평등 문제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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