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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능 May 26. 2024

덴마크에서 한국인을 맡고 있습니다 (1)

한국인은 안 보이는데 한국문화 좋아하는 청년들은 많다!

20대 초반 엄마 아빠 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두 달간 했었다. 400만 원 정도를 후원받아 두 달간 여행하려니 조금 빠듯했었다. 프라하같이 저렴한 도시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며 거의 존버가 테마인 유럽 여행을 하는 중에 고등학생 시절 케이팝 좋아하는 펜팔 친구집에 무려 2주간 머물기로 한다...


그곳은 보훔(Bochum)이라는 독일의 소도시였고, 여행할 돈이 부족했던 나는 고등학교 시절 펜팔로 형성된 국제 우정 부스터로 무려 2주 동안 머물 수 있었다. 소도시에 3층짜리 빌라가 전부 부모님 집인 곳에서 한 층을 그 친구가 전부 쓰고 있어서 내가 머물 게스트 룸도 따로 있었다. 그 대신 나름의 암묵적 기브 앤 테이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 해주기. 한국 예능 같이 시청하기.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가사 해석 해주기. 나는 한국에서도 보지 않던 런닝맨이나 한국 드라마를 같이 봐야했고 그녀의 침실 모든 면에 가득 걸린 수십 개의 케이팝 앨범 장식도 뭔가 섬뜩했다. 그녀의 취향에 맞추어 한국인으로 소비되는 느낌이 점점 일처럼 느껴지고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 온다고 연차도 2주나 낸 친구에게 갑자기 얼리체크아웃한다고 하면 많이 서운해할 까봐 미안한 마음에 계속 머뭇거리다 결국 대충 일이 생겼다고 변명 한 다음 거의 도망치듯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우연히 그 근처 도시에 사는 유학생 언니랑 연락이 닿아 그곳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둘 다 매운 것을 좋아해서 캅사이신을 마구 넣은 닭볶음탕을 해 먹었다. 그곳에서 지낼 동안 쌓여 있었던 긴장감과 부담감들이 오랜만에 먹는 맛있게 매운 음식과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녹아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때가 약 10년 전이었다. 그때는 유럽에 케이팝 강성팬만 극 소수로만 있던 시절이었다. 반면에 10년 후인 지금 내가 덴마크에서 살면서 느끼는 건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거나 플레이리스트에 몇 곡은 케이팝인 젊은 친구가 많은 느낌. 한마디로 K-라이트 팬들이 많아졌다.


직접 담근 김치를 싸 온 귀여운 친구 ㅎ

일하는 곳에는 특히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많아서 나한테 김치 레시피를 물어보거나 내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음식점을 자주 물어본다. 어떤 친구는 나중에 '나 사실 케이팝 좋아하는데 너 부담될까 봐 지금 말한다'라고 고백하듯 본인의 취향을 밝히기도 했다.


아무튼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건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많은 소셜 포인트를 먹고 시작할 수 있다. 한국 관련된 얘기를 하면서 내가 대화를 주도하는 분위기도 쉽게 가져갈 수 있고 음식 하는 걸 좋아해서 항상 내가 무슨 도시락을 싸 오는지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주변에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친구들은 많은데 정작 한국인 친구들은 없다. 덴마크에는 약 500명 정도의 한국교민들이 산다고 한다. 베를린만 가도 흔하게 들리는 한국말이 코펜하겐에선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한국인 친구가 없으니 향수병에도 쉽게 걸린다. 한국인 친구 없는 타향살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한인교회라도 가야 하나 싶지만 단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 때문에 교회를 가는 것에 아직까지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자만추 서타일..)


어느 날 덴마크인 동료가 갑자기 헐레벌떡 나한테 뛰어와서 너 한국 사람이었어? 물었다. (중국인인 줄 알았단다.) 자기는 5년간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했고 연극학을 전공하면서 판소리에 매력을 느꼈다고 소개했다. 그 이후로 나를 볼 때마다 한국어로 몇 마디씩 말을 걸고 한국에 가서 자기가 했던 일이나 먹었던 음식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 못해서 대화를 이어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항상 뭔가를 가르쳐 줘야 한다 그리고 그걸 기대하는 눈치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 보면 나랑 친하게 지내는 타입과 좀 거리가 있는 느낌. 한국이라는 주제 하나로 형성된 빈약한 유대감에서 나는 다시 그때처럼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말로 열심히 말걸 때마다 구몬 선생님처럼 반응해 줘야 하는 것도 마치 서비스업을 하는 느낌이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우리 집에 편한 차림으로 와서 라면 끓여서 김치랑 와구와구 먹은 다음 실컷 한국말로 수다와 주접을 떨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어 공부하는 친구들 사귀는 게 훨씬 쉬운 나라에서 살다 보니 가끔 혼자 유튜브 노래방으로 발랄한 노래 부르다 지랄 맞게 눈물이 흐른다.


이제는 웃는 거야 smile ag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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