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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능 Jun 14. 2024

덴마크에서 한국인을 맡고 있습니다 (2)

한국에서 태어난 덴마크인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때 한 친구가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었다. 원래 이 학교 학생이었다가 1년 정도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케이스.


그렇다 보니 다들 그 친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직 완벽하게 헤어진 게 아니라서 애매한 관계로 '페이스북'으로 '영어'로 연락을 하고 있다는 '미국' 남자친구 이야기, 밤에 친구들끼리 '차를 타고' 호수에 가서 다 벗고 수영했다는 이야기, '프롬' 비슷한 학교 무도회에 드레스 입고 참여한 이야기, 각종 굉장히 이국적이고도 '미국' 스러운 이야기들..


입시에 찌들어 있던 여행과 연애는 사치였던 여고생들에게는 그 친구가 말해주던 모든 게 환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들렸다.


아무튼 우리는 친하게 지냈고 어느 날 그 친구가 미국에서 자기 친구가 온다고 했다. 외국인과 영어를 너무 해보고 싶었던 나는 당연히 같이 놀자고 졸랐던 것 같다. 그 미국에서 왔다는 친구는 한국입양아 출신이었고 그 친구 집에서 내 친구가 미국 사는 동안 홈스테이를 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엄청 짙은 미국식 화장 스타일에 한국어도 못하지만 매운걸 엄청 잘 먹었고 가리는 한식이 없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역시 한국인이구나 싶은 묘한 동질감도 느꼈던 것 같다.


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부러움이 있었던 나는 그 이후로 한국에 태어나 미국이나 다른 서양나라로 입양되는 상상을 해보기 시작했다. (자매품 - 아버지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 가는 상상)


'싱글맘이었던 우리 엄마는 결국 해외입양을 선택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외국에서 자라게 되고.. 가끔 정체성 혼란도 오며 힘들었을 테지만 대신 학원도 안 다니고 힘들게 영어 공부 안 해도 샬라샬라 할 수 있고 수능도 안 보고 외국 대학은 입학은 쉽다니까 지금 겪고 있는 입시 스트레스도 없었겠지?'









'한국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세요. 지금까지의 인생을 단 몇 페이지 안에 요약하는 건 쉽지 않지만 제가 어떻게 자라고 태어났는지에 대해 얘기해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우선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저는 여기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저희 행복과 더 나은 인생을 위해서 결정하신 것을 알아요.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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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는 홀트 아동 복지관에서 받았어요. 아직 확실하게 확인된 건 아니지만 입양 기관에서 친부모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했어요. 곧 한국에 방문하게 되면 뵙길 바라겠습니다.'








RE: Can you translate this letter for me?


Hej 로사, 네가 보내준 편지 잘 번역해서 문서 파일로 첨부했어. 네가 한국 부모님께 처음으로 쓴 편지를 내가 번역하게 되다니 영광이야. 앞으로 주고받을 편지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번역해 보도록 할게. 친부모 찾기로 한 거...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꼭 좋은 결과 있기를!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만난 한국 입양아 친구의 유년시절을 압축한 장문의 편지를 번역하게 되었다.


'로사.. 솔직히 다 까놓고 말해서 너는 진짜 진짜 부유하고 사랑이 가득한 양부모 밑에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돈 많이 드는 예체능 다 해보다가 정치 행정학으로 석사 공부까지 돈 걱정 없이 다니고.. (수능도 안 보고)


진짜 부럽다, 솔직히.'


그 이후 서너 건의 이메일을 번역했다. 얘기가 오고 갈수록 서로 알고 있는 정보들이 조금씩 달라서 친부모라는 확신에 대한 희망이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결국 친부모를 찾지 못했다.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던 가족들과 결국 만나기는 했지만 확인해 보니 친부모가 아니었고 친자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 가족들은 다시 떠올려야 하는 입양의 슬픔에 고통받고 싶지 않아 먼 북유럽에서부터 한국의 남쪽 바다 마을까지 용기있게 찾아온 그 친구를 따듯하게 맞이해 주는 대신 굉장히 냉소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친구는 결국 거기서 멈추기로 결심했다.


(참고로 로사는 가명입니다.)


'아마 우리 엄마는 싱글맘이었을지도 몰라. 한국은 싱글맘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다고 들었어. 만약 찾더라도 지금의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나를 보고 싶어도 거절할지도 모르지. 나도 이제 이십 대 중반이고 여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엄마로서의 마음이 이해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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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는 덴마크에 사는 한국 입양아들을 자연스럽게 조금씩 더 알게 됐다. 로사의 형제들도 다들 부모가 다른 한국 입양아였고 주변 사람들의 친척이나 배우자가 입양인인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어느 날 화장품을 사러 갔더니 매장 직원이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면서 자기 남자친구가 한국 입양아라고 하지 않나..


덴마크에는 대략 9000명의 한국인이 입양되었다고 한다.  


언제는 우연한 계기로 한 입양아를 알게 되었다. 보통 생후 5개월 전에 입양이 진행되는데 그분께서는 이미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을 정도로 컸을 시기에 덴마크에 입양됐다. 내가 부러워하던 로사의 사랑이 가득하고 능력 좋은 부모가 아닌 굉장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고 사랑이 부족한 양부모를 만나게 되어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입양 서류에도 생략된 정보도 너무 많고 틀린 부분도 많아. 내가 덴마크에 오기 전에 어떤 아기였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말을 뱉었는지 건강상태는 어땠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는 거에 대해 양부모로서의 자격지심 같은 걸 느끼시는 것 같아. 굉장히 싫어하셔.'


나에겐 너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그녀의 유년시절을 들으면서 우리 엄마가 심심하면 항상 하는 말들이 생각났다.


돌이 지났는데 아직 걸음마를 못 때서 걱정이 많았다는 둥.. 삼촌들이 다 모여서 내가 초록색 응가를 하는 걸 보면서 손뼉 치며 좋아했다는 둥.. 겨우 첫 걸음마를 하는데 7번 걷고 바로 넘어졌다는 둥..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지겹고 부끄러워서 그만 좀 말했으면 했던 것들이 아무나 해줄 수 없는 소중하고 감사한 주변 어른들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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