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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May 05. 2017

'어깨를 쫙쫙 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오늘은 어린이 날로 하루를 바쁘게 시작할 아버지들을 위해서...

'김PD의 인문학 여행' (47)


오늘은 어린이 날로 하루를 바쁘게 시작할
아버지들을 위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이것저것 조금은 중구난방으로 한 편 쓰려고 합니다.

첫 번째 제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영화 얘기부터 할까요?
한 5년 전쯤 집에서 아이들과 보았던 <리얼스틸>이란 영화입니다.

이 영화 로봇이 나오고 격투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정말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봤습니다.
아이들이 둘 다 아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런 영화를 좋아합니다.

사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죠. 다른 아버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팝콘 먹으면서
아이들과 집에서 봤던 영화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만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아빠가 주책없이 눈물을 펑펑 흘리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조금은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 대신 로봇이 복싱을 하는 지금보다 조금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챔피언에 도전했다가 패배하면서
슬럼프에 빠져 방황하는 왕년의 전직 복서였던
찰리(휴 잭맨)가 주인공입니다.

현재는 고물 로봇이나 조종하며 조금은
한심하게 삼류 인생을 살아가는 그런 주인공이죠.
그런데 어느 날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던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이모 손에서 거의 방치 상태로 자랐던
아들 맥스와 며칠 간의 동거가 시작되는 것이죠.
매사에 티격태격 하던 둘, 그래도 역시
피는 못 속이죠.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로봇 격투기 세계에 뛰어듭니다.
어디 고물 처리장에서 녹슨 로봇 하나를
주은 게 계기가 됩니다.

녹슨 로봇을 쓸고 닦은 보람이 있었던지
찰리와 맥스 부자의 로봇, 아톰은 다른 상대
로봇들을 물리치면 승승장구.
결국은 무적의 챔피언
제우스와 마지막 결전을 펼칩니다.

여기까지는 뭐 뻔한 내용입니다.
저도 팝콘 어기적 어기적 씹어 먹으면서
봤으니까요.

이제 마지막 제우스와 아톰의 마지막 결전을
남겨둔 상황.
영화의 배경이 2020년이니 뭐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도 그래서
일명 '쉐도우' 기법이라고 해서 주인이 하는
몸짓 그대로 로봇이 따라 하는 방식입니다.

1회전도 못 넘길 거라 예상했는데
아톰은 기적처럼 무려 5회전까지 버팁니다.
다만 조종이 안 될 정도로 망가졌다는 게
문제인 것이죠. 결국 앞에 말한 '쉐도우' 기법으로
아버지 찰리가 거인 로봇 제우스와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
아빠는 마치 왕년에 챔피언에 도전 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주먹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카메라는 시선을
아들 맥스의 1인칭 시점으로 전환합니다.
모두들 링 위에서 싸우고 있는 로봇을
지켜보고 있지만, 아들은 이제 더 이상
로봇의 대결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애들 앞에서 펑펑 울었던 건 바로
그 순간부터였습니다.

상업영화인데다 별로 주목도 받지는 못했던
영화이지만, 게다가 영화 속 주인공도 참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는 실패한 복서, 무능한 아버지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도대체 이유 뭐였을까...?

아마도 이 영화에는 무엇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 어떤 영화들보다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삼류가 됐든, 이류가 됐든,
실패자든 낙오자든, 당신은 스스로를
최고가 아니라 말할지 모르지만,
아들에겐 아버지가 최고입니다.

어린이 날인데 어린이 얘기는 안 하고
아버지 얘기나 했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아이들을 위해서는
깨어있는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저는 깨어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고대 그리스 돌덩이를 찾아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고대의 이야기들 속으로
헤매고 다녔던 이유도 어쩌면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뭐 좋은 아빠가 됐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영화 '애니'에서는 이런 멋진 대사 하나가 나옵니다.

(나쁜 놈들 때문에 다리 위로 도망친 애니가
간신히 난간을 잡고 떨어질 듯 위험한 상황에서)

누군가 헬리콥터에서 밧줄을 내려서
애니를 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손이 하나 모자라죠.
결국 애니 스스로 손을 뻗어서 도움의 손길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애니는 떨어질까 두려워서 이도저도 못하고
망설입니다.

“아저씨 못하겠어요......”

그때 손을 뻗은 남자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애니! 용기가 없는 아이는 말야...
밤하늘에 별이 없는 것과 같은 거야.”

캄캄한 밤하늘에 별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그냥 암흑이죠.
결국 아저씨의 말에 힘을 얻은 애니는
몸을 날려 아저씨의 구원의 손길을 붙잡습니다.

이건 평론가들은 별로 주목도 하지 않는
장면인데요. 전 무지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도 결국은 마지막 그 구원의 손길을
붙잡아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결국은 모든 기회와 선택은 아이들 스스로
해야 하는 것.
어쩌면 부모란 다리가 후덜거릴 정도로
두렵고 떨리는 난간에 선 애니에게 용기를 주었듯이 그렇게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존재가 아닐까...

아무튼 오늘은 다들 좀 바빠지시겠네요.
저도 오랜만에 아이들 만나러 갑니다.
아직은 어린이날 축하해줘야 할 아이가
하나 남았거든요.
석달 전에 보고 못 봤으니까
좀 많이 컸나 모르겠네요.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이런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어깨를 보고 큰다.'

어릴 적 저도 아버지의 어깨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어깨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움츠러 들고
작아지는 어깨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어깨 덕분에 남들만큼
먹고 배우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어깨를 못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네요.
아이들을 보러 간다니까
그 아버지의 어깨가 떠오른 건 또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내 어깨도 그렇고 당신의 어깨도 그렇고
누군가의 눈에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어깨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점점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어깨는
결코 아들을 슬프게 만들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날보다
어깨 쫙쫙 펴고 아이들과 놀아줄 생각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든든한 어깨가 돋보이는 영화 <리얼스틸>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 작가)





현재 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와인 바(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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