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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May 10. 2017

여행을 떠나려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

여행자의 수호신 '성 크리스토퍼 메달'에 관하여...

   '김PD의 인문학 여행' (48)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자기. <타임스>에 전화해요. 아무데나. 그래서 브라질 갑부 남자 50명의 명단을 받아줘요. 농담 아니에요. 50대 재산가 목록. 인종도 피부색도 상관없어요. 부탁 하나 더. 내 아파트를 뒤져서 자기가 줬던 메달 찾아줘요. 그 성 크리스토퍼 메달. 여행을 위해선 그게 필요하니까"

- 트루먼 카포티, <티파니에서 아침을> 중에서


   누구나 여행에는 즐거움이 있고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여행의 목적지가 있는 편이 여행을 하는 순간순간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목적지를 중심으로 시작과 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즐기려는 자들에게 목적지는 하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순간이 된다.


   하지만 외로움 자체를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숨가쁘게 바쁜 도시의 삶 속에서 무조건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려는 욕망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외로움이야말로 훌륭한 여행의 테마다. 그리고 그렇게 외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시작했던 여행은 누구나에게 긴장감을 준다.


   트루먼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등장하는 성 크리스토퍼 메달이 궁금했던 이유도 결국엔 여행에 대한 오랜 관심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른 새벽 맨해튼의 티파니 보석상 앞에서 크로와상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들고 유심히 값비싼 목걸이를 바라보던 홀리(오드리 햅번)에게는 부유한 남자들을 통해서 신분 상승을 꿈꾸던 한 여인의 애잔한 허영과 미래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장면이 이유 없이 늘 좋았다. 그 안에서 여행은 공간적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과 운명, 주인공 홀리는 그 시간의 격차를 단숨에 뛰어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갖고 있는 허영은 결국엔 종착지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배회하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외로움이 담겨 있다.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이 잘 드러나고 있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오프닝 씬


   사실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찾았던 성 크리스토퍼 메달은 여행자의 수호신이다. 여행이 단지 즐거움이나 안락과는 거리가 멀던 시절, 여행자에겐 여행 자체가 곧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간절하게 자신들의 여행이 안전하게 끝나기를 기원했다. 그런 바람을 성 크리스토퍼 메달에 담았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 홀리가 간절히 찾았던 것도 어쩌면 신분상승이라는 무모한 여행을 든든하게 지켜줄 버팀목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크리스토퍼(Christopher)는 가나안 땅에서 강을 건너게 해주는 직업을 가졌던 한 인물과 관련이 있다. 요즘처럼 배나 다리가 없어서 강을 건너기가 마땅치 않던 시절, 강을 건너려는 사람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강 건너편까지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거인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키가 2미터가 넘고 생김새도 조금은 흉칙했던 모양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자기보다 힘센 사람을 만나면 그를 신으로 섬기겠노라 말했다.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강을 건너가기 위해 그 거인을 찾았다. 거인에게 어린아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깨에 아이를 올려놓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갈수록 발이 점점 물속 깊숙이 잠기기 시작했다. 거인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작은 어린아이 한 명을 어깨에 메고 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왜 몸이 점점 물속으로 잠기고 발을 내딛기도 힘들어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인은 힘겨운 표정으로 아이를 올려 보며 넋두리를 했다.


   "너는 나를 지금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만들고 있구나. 세상을 어깨에 짊어진다 해도 너처럼 무겁지는 않겠다."


   거인의 말이 끝나마자 어린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너는 지금 세상뿐만 아니라 그 세상을 만든 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네가 찾던 왕, 그리스도이다."


   그 말과 함께 어린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거인은 운명적인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계기로 기독교도가 된다. 결국 크리스토퍼(Christopher)라는 말은 '예수를 품다', '예수를 옮기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Christ-beare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의 전통 속에서는 이렇듯 삶과 인생의 주제에 따라 마음을 다독이고 지켜주는 다양한 '성물'이 존재한다. 생활 속에 십자가가 있다면, 여행자에겐 성 크리스토 메달이 존재한다. 멀리 떠나는 자식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의 안전한 귀한을 바라며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성 크리스토퍼 메달을 선물한다.

                                       여행자의 수호신 성 크리스토퍼 메달과 성화


   역설적이지만 신앙과 믿음을 위해 탄생했던 성물들이 이제는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을 다독거려주는 정신적인 성물이 되어가고 있다. 작은 메달 하나가 낯선 곳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나침반보다 더 명쾌한 방향타 역할을 해준다. 마음이 든든한 자는 어느 곳을 가도 두려움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 크리스토퍼 메달을 손에 쥔 여행자는 외롭지 않다. 누군가 그를 지켜준다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거친 황무지를 걸어갈 수 있다.


   성 크리스토퍼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부터 이제 여행자에게는 뭔가 묵직한 동료애가 생겨난다.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한 든든함.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이 메달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론 그래서일까. 성 크리스토퍼 메달은 여행자들에겐 십자가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도시인들의 삶 속에서도 성 크리스토퍼의 메달은 필요하다. 길을 잃어버릴 염료조차 없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삶, 너무 익숙한 길 위에서조차도 성 크리스토퍼의 메달은 빛날 때가 있다. 그것이 도시인에게 필요한 성스러운 순간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일상이 무료하다. 그런 단순한 삶 속에서는 영원조차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 무거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가야 하는 오늘과 내일, 하지만 어쩌면 메달 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새로운 장소로 이동시켜줄지 모른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삶을 벗어나려는 용기를 주는 신성한 존재가 된다. 성 크리스토퍼 메달은 그래서 여행자에게 용기를 주는 아킬레우스의 검이다. 두려움에 떨며 웅크리던 자들에게 무릎 꿇지 말라 일깨우는 날카로운 칼날이다.


   지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낯선 여행의 목적지를 찾아 방황하고 있는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마시면 여행 가방을 싸고 있는 당신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이 곧 성 크리스토퍼 메달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여행의 길에서 우리는 홀로 가야 하는 존재들. 어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고, 야수가 으르렁 거리는 숲 속의 풀숲 가득한 '가지 않은 길'도 걸어가야 하겠지만, 그때마다 힘이 되는 작은 메달 하나가 있다. 당신은 그 길 위에서 크리스토퍼의 메달을 목에 건 자들과 만나야 한다. 그가 당신과 함께 낯선 곳을 향해 걸어가는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와인 바(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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